(제 17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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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 땅이 내뿜는듯한 습윤한 허연 안개발이 서리서리 엉켜드는 산기슭으로 김정일동지께서는 깊은 명상에 잠기시여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늘 시간을 내여 지방실태를 료해하시려 이른새벽에 떠나신 길에 나라의 동서를 련결하는 도로가 굽이굽이 휘돌아간 중부산악지대의 삼복리 첫 어구에 차를 세우시고 관문처럼 우뚝 서있는 영덕산기슭으로 오르시였다.

이름모를 잡관목들이 꽉 들어찬 기슭으로는 싱그러운 새벽바람이 그이를 마중하며 파도쳐오는듯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그이의 안광에 흰점들이 비껴들었다. 엷은 안개발사이로 선연히 드러나는 산비둘기들이였다. 푸르른 전야를 휘감으며 날아예다가는 강기슭의 이끼푸른 바위우에 앉더니 이어 나래를 퍼덕이며 강우로 원을 그려간다. 강기슭의 아스라한 풀밭에서는 어미염소가 깡충거리며 재롱을 부리는 두마리의 새끼를 뒤에 달고 이슬먹은 풀을 맛나게 뜯는다. 강 웃쪽에선 누런 황소가 《음메-》하고 영각하며 맑은 물로 목을 추기고있었다.

산촌의 이 새벽을 관망하시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불현듯 시상이 떠오르시였고 오선지에 연필을 달리고싶으신 충동 역시 강렬하시였지만 지금 산촌의 새벽을 부감하실 시간도, 갈마드시는 시상을 마음속에 새기실 여유도 없으시였다. 그것은 이 새벽 승용차안에서 들썩하게 코를 골며 자고있는 허담이 꾸바대사와 나누었다는 면담내용이 아직도 마음속에 맴돌고있었기때문이였다.

꾸바혁명이 승리한 후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에서 반동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아바나를 떠났다. 그는 피델과의 작별에서 에스빠냐어로 번역된 우리 나라의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보며 국제유격대를 조직하여 싸우겠다고 하였다. 그것은 그가 꾸바경제대표단 단장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후 귀국하면서 가지고 간 도서였다.

꾸바대사는 체 게바라가 지금 조선의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를 정신적량식으로 삼고 사생결단의 전장에 나섰다고 하면서 이 사실을 위대한 수령님께 꼭 보고드려달라고 당부하였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계곡으로 오르시여 청신한 푸른 가지를 부채살처럼 활짝 편 소나무밑 이끼덮인 바위우에 앉으시며 보천보의 목천복로인이 보내온 편지구절들을 다시 새겨보시였다.

목천복로인의 청원은 그이께 그 로인 한사람만이 아닌 온 나라 인민의 념원으로 감수되시였다. 보천보에 태를 묻은 로인, 보천보시가전의 그 불길속에서 수령님을 우러러 감격의 눈물흘리며 만세를 부른 인민의 심장의 목소리를 두고 김정일동지께서는 깊은 사색을 이어가시였다.

보천보! 그 이름만 뇌여도 심장의 피가 끓어오르고 가슴엔 열정이 솟구친다. 백두의 향기를 한껏 발산하는 아름답고 유서깊은 고장 보천보. 이 나라 북변 산기슭의 자그마한 고장으로 지도에서도 그 이름을 찾기 어려웠던 땅이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밑뿌리채 흔들어놓은 력사의 땅으로 떠올랐다.

보천보혁명전적지를 눈앞에 그려보시며 계곡을 내리신 그이께서는 휘우듬히 굽이진 산기슭으로 걸음을 이어가시는데 깊은 사색을 깨며 청년들의 노래소리가 울려왔다.

 

    우리는 자랑찬 사회주의건설자

    천리마 타고서 번개처럼 달린다

    …

 

산굽이를 돌아오는 뜨락또르적재함에서 청년들이 손을 흔들며 목청을 뽑는데 웬만한 합창단 못지 않았다.

처녀운전수가 그이의 옆에서 뜨락또르를 세우며 소리쳤다.

《동지, 우리 마을로 가시면 타세요. 어디서 오시나요?》

첫눈에도 인정미가 샘처럼 솟구치고 활달한 그 성미가 대뜸 심신을 휘여잡는 처녀의 모습에 눈길을 박으시며 그이께서는 미소를 피워올리시였다. 갸름한 얼굴에 오똑한 코며 상긋이 웃는 리지적인 눈빛은 춘삼월의 청제비와 같은 인상이다. 어딘가 낯이 익어보이는 처녀.

《평양에서 오오. 동무넨 어데로 가오?》

적재함우에 있던 청년들이 흥이 나서 목청을 뽑았다.

《비탈밭을 다락밭으로 개간하는 야간전투를 하고 마을로 들어갑니다. 저기 보이지요? 저 비탈밭들을 다 다락밭으로 만들면 알곡소출에서 우리 농장은 도적으로 단연 1등이 될수 있답니다.》

《대단하구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비탈밭을 다락밭으로 만들라구 교시하셨답니다!》

청년들의 기세넘친 대답에서 그이께서는 방금전까지 연추를 매단듯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끼시였다. 거기에다 처음보는 이 뜨락또르운전수처녀가 어째서 무척 낯익어보였는지 깨달으시였다.

《야간전투장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발표모임도 하겠지, 응? 선동원 차성희동무!》

《어마나! 나를 어떻게 아세요?》

그이께서는 딱 알아맞힌것이 자못 유쾌하시여 목소리를 높이시였다.

《며칠전 신문에 사진까지 받쳐서 나지 않았소. 삼복리의 종달새 선동원 차성희! 맞지?》

《야! 우리 성희동무가 대단한데?! 평양사람들두 알지 않나!》

《왜 평양사람들만이겠소? 온 나라 청년들이 알지!》

그러자 청년들은 와- 환성을 지르며 박수까지 쳤다.

그런데 얼굴이 새빨개졌던 차성희는 볼부은 어조로 투덜거리였다.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새 권이 나왔다고 해서 며칠전에 군책방에 가보니 그 책은 출판부수가 너무 적어서 리에까지는 배포 못한대요. 그래서 한 제목이라두 베껴오려구 군도서관에 갔더니 거기서두 부수가 적어서 줄을 섰지요 뭐.》

그이의 안색이 금시 흐려지시였다.

《출판부수가 적어서 받지 못했다?》

《예. 목민심서라는 책은 간부들의 필독도서라면서 매장에 쌓여있던데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는 왜 그만큼 많이 찍지 못하나요? 종이가 없어서 그러나요?》

그 물음에 그이께서는 두팔을 가슴에 모두어 얹으시며 산기슭쪽으로 눈길을 돌리시였다.

《목민심서》. 김도만이 간부들의 필독도서로 그 구절구절까지 외우도록 하는 옛날 책자. 그이께서 대학시절에 그 책에 씌여진 《애국》이요, 《애민》이요 하는 문구들은 성경책에도 있다고, 문구가 현란하다고 하여 거기에 매혹되여서는 안되며 로동계급의 립장에서 그 반동성을 가려보아야 한다고 학급동무들에게 강조하시던 실학자 정약용의 책이였다.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출판은 손시려하고 《목민심서》엔 성수가 나서 돌아가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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