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1 장

7

 

중부산악지대 산골군의 삼복리는 읍에서도 거의 백리나 떨어진 산골중의 심심산골이였다. 예로부터 올망졸망한 뙈기밭에 피나 조를 심어 가까스로 목숨을 연명해가던 리가 해방후부터 차차 기름이 돌더니 몇해전 수령님께서 현지지도하시며 산간지대 농사를 의논해주신 다음부터는 군적으로 눈길을 모으는 농장이 되였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세가지 재앙을 안고있다고 《삼화리》로 불리우던 마을이름도 화를 복으로 만들어 잘살게 한다는 의미에서 삼복리로 고쳐부르도록 하시였다.

삼복리관리위원장 리만길은 군이나 도에서 농사와 관련한 회의때면 례외없이 주석단에 올랐고 경험토론을 했다.

대를 물려가며 이 고장에 태를 묻고 살아온 리만길의 가정은 그의 할아버지대에 더욱 소문이 났다. 해방전 포수였던 리만길의 할아버지가 영덕산 깊은 골짜기에 큰 함정을 파놓고 소만한 곰을 잡았던것이다. 그 일로 하여 이 아근에서는 《곰서방》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곰을 잡은것이 그만 화가 되여 왜놈경찰서에 끌려가 옥고를 치른 후 병에 걸려 사망하였다. 잡은 곰을 고스란히 바치지 않은것으로 하여 보름동안이나 경찰서류치장에서 구두발에 채우다보니 종신병을 얻었던것이다.

리만길은 할아버지의 피를 곧바로 이어받아 뼈대가 굵직굵직하고 쩍 버그러진 어깨에서 흘러내린 팔이 허리아래로 한참이나 드리운것이 어느모로 보나 힘꼴이 센 농군이였다.

훤칠한 키에 앞이마가 시원스레 벗겨진 리만길은 머리우에서 흔들거리는 전등갓을 바로 잡아놓고 뙤약볕에 고동색으로 탄 긴 목을 슬슬 문지르며 책상우에 펴놓은 전경도들을 굽어보고있었다.

《땡

벽에 걸린 시계가 아홉점을 때리며 오늘은 생일인데 어서 퇴근하라고 독촉했다. 그러나 리만길은 다시 독한 엽초를 말아붙여 탐나게 들이키며 사무실을 오락가락했다. 그의 눈길은 책상우에 주런이 펴놓은 석장의 전경도에서 떠날줄 몰랐다.

《무도장》, 《오작교》, 《삼화정》이란 글발들이 씌여진 전경도들을 보는 리만길의 귀전에는 북소리, 꽹과리소리, 노래소리가 금시라도 들려오는듯싶었다.

이 전경도들은 오늘 군에 올라가 중앙에서 내려왔다는 《향토꾸리기 10개년계획》지도소조에서 받아온것들이였다. 왼쪽 눈섭우에 팥알만한 김이 박힌 지도소조 책임자는 삼복리가 군적으로 농사에서도 첫자리기에 《향토꾸리기》에서 전국의 본보기가 되게 내세우려 한다고 엄지손가락까지 흔들며 장담했다.

《관리위원장동무도 해방전엔 지주놈네 집에서 머슴살일 했다지요?》

《외양간에서 황소와 함께 새우잠을 잤지요. 소눈치를 보면서 구유통에서 콩알을 주어먹으며

《고생이 오죽했겠습니까. 헌데 지금 자라나는 새세대 청년들은 그런 고생을 못했으니 오늘의 행복을 응당한것으로 안단 말입니다. 그들에게 피눈물나는 지난날을 잊지 않게 애국심을 키워주려구 향토꾸리기를 하는겁니다. 참, 해방전엔 그 고장을 세가지 화를 등에 지고난 마을이라고 했다면서요?》

옛날에 지세를 척 보기만 해도 고장의 길흉화복을 척척 알아맞힌다는 풍수쟁이가 마을을 지나다 산밑의 바위에 앉아 산천경개를 살피며 여기는 지세를 보니 세가지 화를 숙명으로 타고난 고장이니 《삼화촌》이라 불러라 했다는 말이 전설처럼 전해지고있었다.

풍수쟁이가 말한 세가지 화란 우선 가파롭고 위태위태한 산이 있어 산사태를 피할수 없을것이요, 강이 있으니 홍수피해요, 땅은 척박하기 그지없으니 흉년을 면하지 못한다는 뜻에서 못박은 《삼화촌》이였다.

리만길이 《삼화촌》의 래력을 설명하자 상대방은 상당히 감흥을 받은듯싶었다. 아니나다를가 중앙에서 내려온 그 책임자는 자기 말이 끝난지도 한참인데 아무말없이 두눈만 슴뻑이다가 안경을 벗어 닦았다.

《보십시오. 그 세가지 화로 지지리도 못살던 삼화촌의 력사를 마을청년들이 마음속에 늘 새기고 살면 애국심이 스스로 생길게 아닙니까? 그 풍수가 앉았다던 바위근방에 삼화정을 세우고 그 말을 비석으로 새깁시다. 백번 듣는것보다 삼화정을 한번 보기만 해도 마음속에선 향토에 대한 사랑이 저절로 부글부글 끓을거란 말입니다.》

고향땅의 유래에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앞에서 리만길은 가책되는바가 자못 컸다. 해방전엔 그렇게도 귀에 익었던 삼화촌이라는 이름을 흐르는 세월속에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것이다.

《또 그 옛날의 삼화촌 청년들이 무도장에서 춤추며 노래하고 오작교를 거닐면서 사랑을 속삭인다면 타고장이나 외국사람들이 와서 볼 때 얼마나 부러워하겠습니까? 옛날 장고를 퉁탕거리며 부르던 노래에도 있지 않습니까? 나비쌍쌍 날아간다

《향토꾸리기》 지도소조 책임자는 책상모서리에 대고 손가락장단을 두드리면서 요란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일욕심이 많고 승벽심이 강한 리만길을 신비스러운 련쇄반응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했다.

평양의 대동강변에 우뚝 솟은 련광정을 방불케 청기와를 얹은 《삼화정》, 칠색무지개를 펼친듯 꽃테프들이 늘어선 무도장에서 장고를 두드리며 너울너울 춤을 추는 청춘남녀들, 쟁반같은 보름달이 금빛을 뿌리는 밤 오작교를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는 청년들

금시 산골리의 복판에 하늘에서 희한한 도시가 내려와앉은듯한 환각이 리만길의 마음을 동지날 팥죽가마처럼 끓게 했다.

《정말 그 향토꾸리기만 해놓으면 여간 희한하지 않겠습니다. 더구나 군이나 도적인 시범도 아니고 전국적인 본보기로 꾸린다니 어깨가 무거워지는데 거 딱한게 있수다.》

《뭐가 딱합니까?》

지도소조 책임자의 물음에 리만길은 꺼슬꺼슬한 턱을 슬슬 문지르며 난색을 지었다.

《거 절기로 보면 부지깽이도 뛰는 바쁜 농사철이 코앞에 온데다가 벌려놓은 다락밭공사가 아직 끝을 못맺었지, 당장 뚝딱거리자고 해도 세멘트요 목재요 자재들도 문제고

《로력과 자재는 걱정마시오. 도시가 농촌을 돕는건 응당한 일이 아닙니까? 군안의 공장, 기업소들에 과업을 주어 지원하도록 비상대책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렇다면야 이거,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이제 삼복리 향토꾸리기가 끝나면 전국적인 방식상학을 거기서 하려고 합니다. 그땐 관리위원장동무가 척 나서서 향토꾸리기가 청년들에게 향토애를 키워주는데서 얼마나 중요한 사상사업인가를 두고 경험토론도 하십시오. 참, 그 풍수쟁이의 이름은 모릅니까?》

《그거야 어떻게 알겠습니까? 실지 있은 일인지 누가 꾸며냈는지도 모를 이야기인데

지도소조 책임자는 앞으로 삼복리의 《향토사》도 써야 하는데 거기에 삼화촌의 이름래력도 꼭 밝히라고 하면서 《삼화정》에는 풍수가 했다는 말을 새긴 비석같은것도 세우면 좋을것이라고 곱씹어 그루를 박았다.

전경도들을 이윽히 보는 리만길은 마음이 여간 흥그럽지 않았다. 작은 산골마을이지만 지지리도 못살던 과거와 행복한 오늘의 생활이 자연계의 춘하추동 대조처럼 뚜렷하게 안겨오지 않는가.

리만길이 구미를 돋구는 음식그릇을 대하듯 닭알침까지 꿀꺽하며 다시 《삼화정》전경도를 흐뭇한 심정으로 굽어보는데 다부진 몸매의 처녀가 파란 모자를 쓰고 뛰여들어왔다. 기계화작업반의 선동원이며 뜨락또르운전수인 차성희였다.

리만길은 얼른 전경도들을 둘둘 말아서 철궤속에 넣고 쇠를 절컥 잠그었다. 아직은 공개하지 않고있다가 건설이 시작되면서 눈들이 휘둥그래지게 내걸자는 심사에서였다.

《관리위원장동지, 우리 청년들이 이제부터 돌격대를 뭇고 다락밭공사를 와닥닥 끝내려고 해요. 올해농사를 계획대로 새 다락밭에서 지어야지요?》

기분이 한껏 좋아진 리만길은 《장하구나, 장해. 너희들이 우리 삼복리의 이름을 또 한번 날리겠구나.》 하고 차성희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알겠어요.》

《이제 군적으로 아니, 전국적으로 우리 삼복리가 또 통장훈을 부르게 될게다.》

《무슨 일때문에요?》

《아, 그건 후에 알 일이구 좌우간 다락밭공사에 전념해라. 그러면 낟알소출이 쑥 올라갈테지. 그땐 아마 우리 삼복리가 군적으로가 아니라 도적으로도 제일 소출이 높은 농장으로 될게다.》

《걱정마세요.》

차성희가 나가려다가 생각난듯 돌아서며 봉투 하나를 내놓았다.

《리당위원장동지한테 온 편지인데

리당위원장은 군당에서 소집한 회의에 가고 없었다.

리만길은 편지겉봉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당력사연구소에선 무슨 연고로 편지를 보냈나?》

사연은 알수 없으나 어쨌든 삼복리가 여기저기로 소문나는것이 은근히 기뻤다. 편지봉투를 책상서랍에 넣고 다시 전경도들을 찾아드는 리만길의 눈앞에는 《삼화정》이며 무도장, 오작교에서 장고를 두드리며 춤을 추는 농장 청년들의 모습이 금시런듯 선히 떠올랐다.

그가 책상서랍에 넣어둔 당력사연구소의 편지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이 일대에서 투쟁하다가 희생된 리철이란 유격대정치공작원의 시신이 안장된 장소를 찾는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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