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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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혁은 거북스러워하며 옹색해하는 상룡의 등을 밀며 차에 올랐다. 정복입은 안전군관의 옆에 앉은 유상룡으로서는 그 무슨 사건수사가 진행되는가 하여 조마조마한 심정이리라는것을 유명혁은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상룡의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려고 생각은 했으나 화기애애한 화제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차안에는 따분한 공기가 흐르고 두사람의 잔기침소리만이 간간이 침묵을 깨고있었다. 승용차가 옥류교밑을 에돌아 대동문앞을 지날 때 유명혁이 먼저 참지 못하고 운전사에게 눈짓을 보냈다. 차는 대동문앞 강안도로에서 멎어섰다.

아직 긴장을 풀지 못한 유상룡이 어름어름하며 차에서 내렸다. 유명혁은 그와 함께 대동문옆의 계단을 내려 유보도에 들어섰다. 유보도에는 여기저기에 낚시군들이 많았다. 태반이 로인들인 낚시군들이 불빛이 어린 대동강물결우에 낚시대를 드리우고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유명혁은 지금껏 잠그었던 자물쇠를 열었다.

《편성원동무가 왕우구출신이라기에 뭘 좀 알고픈게 있어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유상룡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유명혁의 뒤를 따랐다.

《내가 알기엔 편성원동무가 어렸을 때 화룡현 양지주네 집에서 머슴살일 했다던데요?》

《예, 말상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던 지주놈네집에서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틀림없는 아들이였다. 양지주놈의 생김새까지 어쩌면 신통히 같은가. 유명혁의 심장은 세괃게 박동했다. 금시 《상룡아, 넌 내 아들이다!》하고 와락 껴안고싶은 충동이 화산처럼 터져올랐다. 하지만 큰숨을 몰아쉬며 애써 자제했다. 설사 아들이라는것이 확인되여도 오늘은 아버지라는 말을 하지 말자고 자신의 흥분된 마음을 다잡고있는 유명혁이였다.

《그 양가놈이 화룡에서 살다가 이사를 갔다는 얘길 들었는데 사실이요?》

《사실입니다. 그 집을 동생에게 주고 남경에 가서 식당을 차렸습니다.》

유명혁은 이것으로 오늘의 대화를 마치고 자리를 뜨려고 결심했다.

《잘 알았습니다.》

작별인사를 나눈 그는 제법 호기있게 몇발자국 걸어갔다. 그러나 종시 발길은 멈춰섰다.

돌아선 유명혁은 가늘게 경련을 일으키는 손으로 천천히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다소 갈린 음성으로 물었다.

《혹시 어렸을 때 나를 본 기억이 없습니까?》

유상룡은 사슴처럼 어질게 생긴 눈을 슴뻑이며 유명혁을 보다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전, 전혀… 본 기억이 없습니다.》

하긴 너무 어릴 때 헤여진 아버지여서 얼굴을 기억 못할수도 있다. 수십년세월이 흘렀으니 내 모색도 많이 변했을것이고 항일대전의 포연탄우로부터 조국해방전쟁… 겪어오고 헤쳐온 시련의 고비들과 판가리결전의 언덕들이 일순 눈앞으로 흘러갔다. 그렇다면 혹시?…

유명혁은 저으기 긴장해지는것을 누르며 다음말을 던졌다.

《참, 내가 자기 이름을 소개 안했구만. 내 이름은 유명혁이요.》

《예.》

아버지의 이름을 들으면 어떤 반응이 있을줄 알았는데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하긴 그 어린 나이에 아버지이름을 잊었을수도 있다.

《양지주네 집에 머슴으로 갈 때 아버지가 손목을 잡고…》

이번에는 말을 맺기도 전에 유상룡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 양지주가 양아들로 삼겠다고 하며 끌고가서는 머슴으로 부렸습니다.》

《양아들로?》

유상룡은 두살때 부모를 잃었다고 했다. 마음씨 고운 중국인녀인이 친부모를 대신하여 그를 키웠다는것이다. 상룡이가 다섯살 잡히던 해에 그 중국인녀인마저 병으로 사망하였다. 의지가지할데 없는 그를 양지주놈이 큰 은총이라도 베풀듯 양자로 삼겠다며 끌고가서는 머슴으로 부렸다. 남경으로 가면서는 동생놈에게 머슴으로 부리라고 돌덩이 던지듯 하고 꽁무닐 사렸다. 결국 상룡은 양가네 형제밑에서 중국이 해방될 때까지 갖은 곤욕을 다 치르며 머슴살이를 했다.

《저에게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도 없습니다. 두살때 저를 맡아서 키운 중국인어머니는 동동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애기라는 뜻이지 이름이 아니였습니다.》

《그럼 유상룡이란 이름은?》

《양지주놈 집에서 저보다 먼저 머슴살다가 1년만에 병에 걸려 죽은 애의 이름이 유상룡이였답니다. 그래서 지주놈이 그 애의 이름을 나에게 달아 유상룡이라고 했습니다. 어릴적부터 그렇게 불리우다보니 나는 귀국할 때도 그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왔고 공민증에도 그렇게 올렸습니다.》

유명혁의 얼굴이 삽시에 하얗게 변했다.

《그럼 진짜 유상룡이는 죽었단 말이지요?》

《예, 그 애는 일곱살에 죽었습니다.》

대답을 하고 유명혁의 얼굴을 마주보고서야 유상룡은 양지주놈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다가 병에 걸려 죽은 진짜 유상룡이가 이 부국장의 아들일것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유명혁-유상룡…

결국 이 시안전국 부국장은 어떤 사건수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들을 찾기 위해 어려운 걸음을 했으며 이렇게 해저문 강변으로 자기를 이끌며 말꼭지를 떼기 힘들어했던것이다. 아들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소식을 듣고 절망에 잠긴 유명혁을 어떻게 위로할지 몰라 유상룡도 안절부절못하며 손가방만 매만지였다.

유명혁은 너무도 심한 정신적타격에 눈앞은 뽀얗게 흐려오고 하늘과 땅이 맞붙어 빙글빙글 돌아가는듯 했다. 졸지에 쓰러질것만 같아 터져라 입술을 옥물며 눈을 감았다. 한동안 허탈에 빠져드는 자신을 수습하고난 유명혁은 애써 어줍은 미소를 지으며 유상룡에게 안됐다고, 어서 집으로 가보라고 등을 밀었다. 그리고는 짙어가는 어둠속으로 허청 걸음을 옮겼다.

무거운 마음을 안은 두사람의 감정과는 상반되게 강안에 들어선 아빠트들에서 흘러나오는 밝은 불빛으로 대동강유보도는 랑만과 애정으로만 꽉 차있는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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