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1 장
5
김일이 눈을 뜬것은 혜산에 있는 도병원 소생실이였다.
그는 도당위원회 일군들로부터 자기가 어떻게 도병원 소생실에 오게 되였는가를 알고 눈시울이 쩌릿이 젖어오름을 어쩔수 없었다.
어쩌면
그는 병원에서 며칠간 안정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도당위원회 일군들과 의사들의 권고를 단호히 일축하고 승용차에 올랐다.
《가자구, 대기념비건설장에…》
운전사는 퀭해서 눈만 껌벅이였다. 이 간고한 장거리강행군이 건설장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는가?
건설장실태료해야 내각의 책임적인 일군을 내려보낼수도 있지 않는가. 또 전화로도 알아볼수 있고 굳이 1부수상이, 그것도 불편한 몸으로 천리가 넘는 길을 꼭 와야 하는가. 그로서는 리해하기 어려운 일이였다.
승용차는 탑건설장입구에서 멎어섰다.
황유탁이 허겁지겁 황급히 달려와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허나 김일의 눈길은 저쪽에 있는 표말에 못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글자가 퇴색되여 볼품이 없는 《인민영웅탑건설장》이라는 해묵은 표말이 한쪽으로 기울어져있었다.
김일은 황유탁이며 건설지휘부일군들과 함께 진창길로 허청걸음을 놓았다. 황유탁이 김일의 화석처럼 굳어진 무표정한 얼굴에서 벌써부터 한풀 꺾이여 짧은 다리를 재게 놀리며 숨가삐 떠듬거렸다.
《량강도당위원회에서 시, 군들에 과업을 주어 륜전기재들을 보충해주겠다고는 했는데 아직…》
김일은 울컥하는 욕설을 애써 참는듯 헛기침 한번없이 씨엉씨엉 내처 걸었다.
뜨락또르 1대와 화물자동차 3대, 기중기 1대뿐인 한산한 건설장을 보는 김일의 관자노리가 푸들푸들 뛰였다.
김일의 뒤를 따르는 황유탁은 금시 벼락이 떨어질것만 같아 허옇게 마른 입술을 감빨며 언제든지 쥐구멍으로 뛰여들 자세로 긴장해있었건만 김일은 종시 아무말도 없었다. 평소에 잠수함으로 불리우는 김일의 성미를 잘 알고있는 황유탁은 지금 느릿한 걸음만 옮기며 침묵을 지키는 이 잠수함이 언제 느닷없이 어뢰를 발사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했다.
김일은 평시에 내각과 성, 중앙기관일군들의 모임에서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손톱눈 곪는줄은 알면서두 왜 염통곪는건 몰라!》
그런데 오늘 보니
1937년 6월 4일. 력사적인 그날의 기관총사수인 자기가 보천보전투승리를 기념하여 세우는 탑건설장이 말뚝을 박은지도 이제는 적잖은 시일이 흘렀는데 이 모양인줄 감감 모르고있었으니 그게 염통곪는줄 모르고있은것과 무엇이 다른가. 오중흡이며 김세옥이, 마국화… 그들을 다 잊고 살아왔다는 죄책감이 더 가슴을 허비였다.
건설장의 실태를 속속들이 료해하고 평양에 올라오자바람으로 김일은 내각회의실에서 기념탑건설문제를 놓고 성, 중앙기관일군들의 비상회의를 련 이틀동안 진행하였다. 2일째되는 날 회의는 심각한 사상투쟁의 분위기로 바뀌여 밤늦게까지 계속되였다. 애초에 김일이 의도한것은 아니였지만 저도모르게 그쪽으로 분위기가 돌아갔기때문이였다.
《기계공업상, 동문 혜산에 내려가봤소?》
연탁에 나와 고개를 떨군채 손수건으로 목덜미를 훔치는 기계공업상을 보며 김일이 다우쳐물었다.
《기계공업성에서 혜산에 륜전기재를 보낸게 있소? 이제부터 동무가 돌격대로 내려가 삽질도 하구 등짐으로 버럭을 날라보오.》
김일이 좌중을 둘러보다가 손을 들어 누군가를 가리켰다.
《림업상, 동문 어제 회의때 기념비건설은 량강도가 맡아한다기에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래 동문 어떻게 되여 상자리에 앉아 승용차까지 타? 그 차가 제발 림업상이 돼주소 하구 동무한테 준 차요? 지금두 왜놈들이 살판치는 세상이라면 쪽박을 차구 동냥살이하는 방랑객이 됐을게 아닌가!》
김일은 혈압이 오르는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가쁜숨을 몰아쉬며 터갈라진 두툼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피기없이 꺼멓게 탄 그의 관자노리가 경련을 일으키며 푸들거렸다.
《우리
김일은 해방후 시인 조기천이 백두산을 돌아보고 와서 하던 말을 상기했다. 그때 조기천은 김책이며 김일 등 항일투사들을 만난 자리에서
보천보의 총성은 백두산의 뢰성이였다고 하면서
김일이 낮으나 격하여 웨쳤다.
모두 자기 심장에 손을 대고 생각해보라, 자기 심장과 조기천의 심장이 같은가? 만약 동무네도 조기천의 심장이였다면 기념탑건설을 두고 발편잠을 잤겠는가? 방금 비판되였지만 지금껏 대기념비건설에 삽자루 하나 보내지 않은 성, 중앙기관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 천 몇천m나 비료 몇백t을 생산하는 일과 대기념비건설을 대비나 할수 있는가? 결국 나나 동무넨 다 제 염통이 곪아터지는줄도 모르고 살아오지 않았는가, 염통이!…
회의에서는 이제부터는 기념탑건설의 설비와 자재를 내각이 틀어쥐고 보장하며 그 집행여부를 일별, 주별, 월별로 장악하고 총화지을데 대하여 심각히 론의되였다.
비상협의회가 끝난 후 김일은 쏘파에 몸을 잠근채 눈을 감고 담배연기만 날리고있었다. 서기가 밤이 깊었는데 어서 퇴근할것을 간청했지만 김일은 굳어진 조각처럼 묵묵부답이였다. 김일이 거치른 황소숨을 톺으며 담배를 비벼끄고 두팔을 깍지끼는데 문기척소리가 울렸다. 김일은 서기가 또 들어온것으로 알고 눈을 감은채 투박스레 내쏘았다.
《동문 퇴근하오, 운전사도 보내고…》
정적이 깃든 방안에서 발걸음소리가 울리더니 쏘파옆의 창문이 열렸다.
《오늘 밤엔 저와 함께 퇴근합시다.》
뜻밖의 부드러운 음성에 김일이 흠칠 놀라며 눈을 떴다.
《아니?!…》
《이런… 난 우리 서기인줄 알고…》
《식사도 제때에 드시지 않고 이렇게 담배하고만 씨름질하면 어떻게 합니까?
김일은 한동안 한숨만 내뿜더니 고개를 수굿했다.
《혜산에 갔다오길 정말 잘했습니다. 글쎄 대기념비건설장이란게 보천보로인이 편지에 썼듯이 나간 집처럼… 에익…》
《그 얘긴 서기동무를 통해 다 들었습니다.》
《륜전기재도 그래, 로력문제도 량강도당에만 맡겨서는 통… 그래서 이젠 내각이 틀어쥐고…》
《김일동지, 대기념비건설이 지금껏 앉은뱅이처럼 주저앉은것은 륜전기재나 로력문제가 아닌것같습니다.》
《?…》
《대기념비건립에 대한 관점문제, 찍어말하면 사상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일은 예리한 그 무엇에 찔린듯 흠칠하며
《대기념비건립실태를
김일은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는 격정에 쏘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