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7 회)
제 5 장
사랑의 힘
10
(2)
푸른 하늘, 푸른 숲, 푸른 호수…
메고치의 솔숲에 때아닌 함박눈이 내린듯 수백마리의 백로들이 하얗게 내려앉아 호수가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있었다. 물우에서 쌍쌍이 헤염치는 물오리들에게 자기들의 낚시솜씨를 자랑하듯 길다란 부리로 물고기 한마리를 쪼아물고 유유히 솔숲으로 날아가는 백로들도 보였다.
끼륵끼륵 백로들의 울음소리도 유정하게 들려오는 호수가…
종업원들은 호수가 곳곳에 좋은 위치를 골라잡고앉아 오락회도 하고 특식도 준비하면서 저녁시간을 즐기였다.
어디서나 녀인들의 칼도마소리도 정다웁게 들려왔다.
젊은 축들은 호수에 뛰여들어 수영도 하고 물장구를 치며 웃고 떠들었다.
어떤 직장에서는 가족들까지 데리고나와 저녁시간을 즐기는지 깔깔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호수 한가운데로 쪽배를 몰고나가 거기에서 기타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 청년들은 어느 직장 젊은이들인지…
온 호수가 그대로 웃음바다, 노래바다였다.
기술준비소에서는 배양액을 끓이던 큰 가마를 손달구지에 싣고 호수가로 나왔다. 유상훈박사가 발기한대로 어죽을 끓이려는것이였다.
호수의 조개와 물고기는 특별히 맛있고 영양가높은 보약이라면서 박사는 불고기대신 어죽을 끓이자는 안을 내놓았던것이다.
삼복철에 땀을 뻘뻘 흘리며 더운 어죽을 먹는 맛도 별맛일것이다.
식사당번인 서정옥의 요구대로 기술준비소의 젊은이들은 방뚝아래 안침진 곳에 큰 가마를 걸어놓았다. 그리고 호수건너편 골방고치쪽에까지 헤염쳐가서 조개를 한구럭씩 건져왔다. 몇사람은 반두와 낚시로 물고기를 잡았다.
정의성도 아이들의 심정이 되여 물속에서 헤염치며 조개를 건져왔다. 호수에는 물고기뿐 아니라 손바닥보다 더 큰 조개도 많았다.
정옥은 봄순이와 분석공처녀를 데리고 젊은이들이 잡아온 물고기며 조개를 받아 부지런히 손질하였다.
어느덧 호수가에 노을이 피여났다.
노을비낀 호수가는 더없이 아름다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의 희열과 앞날에 대한 꿈을 안겨주며 자기의 붉은색으로 누리를 채색해주는 노을은 또 얼마나 좋은가…
정옥이네가 씻은 쌀과 조개며 물고기를 큰 가마에 안치자 유상훈박사는 점화례식이라도 거행하듯 길다란 종이말이에 불을 달아 손수 아궁이에 지피였다.
잠시후 벌렁벌렁 어죽끓는 소리가 기분좋게 들려왔다. 구수한 어죽냄새가 위벽을 자극하면서 입안에 핑그르- 군침이 돌게 했다.
사람들은 가마주위에 빙 둘러앉았다.
배합먹이직장사람들과 자리를 같이하였던 송영숙이 서정옥이와 리봄순의 손에 끌려 기술준비소사람들에게로 왔다.
그는 유상훈박사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윽고 정옥은 봄순이와 함께 어죽을 퍼담았다. 사람들은 김이 오르는 죽그릇들을 즐겁게 받아들었다.
젊은이들은 잊지 않고 호수가물속에 잠그었던 맥주병들을 꺼내왔다. 맥주병마개들이 축포마냥 팡팡 소리를 내며 머리우로 튀여올랐다.
송영숙의 손에도 부그그 거품이 오르는 맥주고뿌가 쥐여졌다.
《무엇을 위해 들겠습니까?》
유상훈박사가 맥주고뿌를 들고 곁에 앉은 기사장에게 물었다. 좌석의 의미를 보다 뜻깊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송영숙은 밝게 웃었다.
《우리 공장의 번영을 위해 들어야지요. 우리의 힘과 열정으로 더 훌륭하구 아름답게 번영해갈 공장의 래일을 위해 들자요. 어때요?》
모두가 그의 말에 호응했다.
드디여 첨가제생산실의 젊은이가 큰소리로 선창을 뗐다.
《공장의 번영을 위하여 축배!》
《축배!》
모두가 더욱더 아름다울 호수가의 래일을 축복하며 축배를 들었다. …
정의성의 귀전에서는 지금도 송영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의 힘과 열정으로 더 훌륭하고 아름답게 번영해갈 공장의 래일을 위하여…》
문득 《우리 함께 공동연구를 하는게 어때요? … 우리 두사람의 힘과 지혜를 합친다면 하나의 크고 훌륭한 열매를 딸게 아니나요?》하고 묻던 처녀시절 송영숙의 목소리도 떠올랐다. 열정적이면서도 순진한 마음이 어려있는 새별같은 그 눈동자와 함께…
다음순간 채찍과도 같은 목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동문 아직두 네것과 내것을 놓고 타산하는가요? …》
차수정의 목소리였다. 찌르는듯한 그의 눈빛도 상기되였다.
또다시 엄습해오는 아픔, 아픔…
정의성은 머리를 떨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수정의 말이 백번천번 지당하다는것을 인정하였다.
(그렇다! 영숙동문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충실했다. 조국에 대한 불보다 뜨거운 그 사랑으로 지금껏 우리를 위해 모든걸 다 바쳤다. 자기의 소중한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쳐가며 이 땅을 열렬히 사랑했다. 그런데 나는…)
정의성은 호흡이 절박한듯 반쯤 벌려진 입으로 공기를 들이켰다.
(수정동무의 말대로 나는 지금껏 오로지 나의 발전과 명예만을 위해 살아왔다. 사랑도 생활도 연구사업까지도 철저히 《나의것》을 기준으로 타산하였고 또 그 타산에 모든걸 복종시켜왔다. …)
정의성의 입가에서는 흐느낌과 흡사한 한숨소리가 새여나왔다. 그는 뼈아픈 자책에 겨워 오래도록 호수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