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1 장
4
(1)
이것은 너무도 뜻밖의 《벼락지령》이였다. 오늘과 같은 장거리출장인 경우에는 한주일전 미리 준비과업이 떨어지군 했다. 급박한 경우에도 2~3일전에는 운전사에게 예령이 울리군 했다. 그러나 오늘은 2시간전에 출발명령이 내려졌다. 그것도 천수백리길을 오늘중으로 닿아야 한다는…
말보다 손발이 앞서는 내각 제1부수상 김일의 운전사는 복닥소동을 피우며 출장준비를 서둘렀다. 맨처음으로 관심한것은 약이였다. 김일은 중환자나 다름없기때문이였다.
(아니, 약만 가지고는 이 먼길을 갈수 없다.)
운전사는 서기에게 의사와 간호원이 같이 가는것이 안전할것같다고 제기했다. 그러나 그 제기는 즉석에서 거절당했다. 서기가 이미 그런 의향을 1부수상에게 제기하였으나 김일이 아예 도리질했다는것이다.
운전사는 구급약들과 도중식사만을 준비할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부터 그는 운전사이며 동시에 담당의사까지 겸해야 했던것이다. 사실 내각 제1부수상으로서 어느곳에 가든지 의례히 식사 한두끼쯤 대접받을수 있었지만 김일은 아래단위에 나가서 식사하는 일이 전혀 없었다. 공장, 기업소나 농촌에 나가 체류하는 경우에도 그곳 일군들과 동석식사를 한적은 한번도 없고 려관에서 일반손님과 꼭같은 식사를 했으며 떠날 때에는 식비청산을 제대로 했는지 운전사에게 잊지 않고 따져묻는 김일의 고지식한 성미를 너무도 잘 알고있는 운전사였다.
서둘러 오후 첫시간에 평양을 떠난 승용차는 함흥을 지나면서 어둠과 맞다들렸다. 게다가 북서풍이 몰아온 검은구름장에서는 비방울을 떨구기 시작했다. 함흥을 지나칠 때 운전사가 저녁식사소리를 했지만 김일은 지그시 눈을 감은채 묵묵부답이더니 신포의 바다기슭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운전사더러 식사를 하라고 하고는 자기는 바다가 너럭바위에서 후둑후둑 떨어지는 비방울을 맞으며 줄담배를 피웠다. 김일의 뒤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며 운전사는 자기도 식사를 단념하고 차의 정비상태를 다시한번 확인했다. 차발동소리가 들리자 너럭바위에서 일어선 김일이 다시 차안으로 들어섰다.
신포-북청-덕성까지는 그런대로 도로가 괜찮았는데 구름우에 치솟은 아스라한 령이 시창앞을 꽉 메우면서는 길이 여간 험하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방울까지 점점 굵어지자 운전사는 속도를 늦추었다.
시창을 때리는 비방울소리는 굽이굽이 돌고도는 산길을 더 을씨년스럽게 했다. 깊은 밤이라 오가는 길손들은 물론 달리는 차들도 없다. 이따금 비바람에 태질하는 숲속에서 짐승의 앙칼진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옛날에는 대낮에도 무리를 지어서야 넘었다는 심심산골, 홍범도의 의병들이 골짜기마다에 진을 치고 왜놈들을 족친 험산이 바로 이 후치령이다. 산세는 오를수록 더 가파로왔다. 운전사는 자주 앞거울을 통해 조각처럼 굳어져있는 김일을 살폈지만 그가 평양을 떠난지 한시간도 못되여 허리에 심한 동통을 느끼고있다는것을, 그것을 지금껏 가까스로 참고견디고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후치령고개를 오르면서 차가 들추기 시작하자 아픔은 갑절 더해졌다. 솥뚜껑같은 손으로 허리를 꽉 누르며 애써 진통을 참고있지만 뼈마디는 예리한 칼날로 저미는듯 하여 저도 모르게 이마에는 진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김일은 어제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신인하로부터
김일은 그런 사태를 왜 내각에 알리지 않았느냐고 고함쳤다. 도당에서는 공사가 내각으로부터 당선전부로 넘어왔기때문에 여러번 김도만부장에게 보고했지만 그때마다 《향토꾸리기 10개년계획》수행정형만 추궁할뿐 대기념비건설에 대해서는 아무 대책도 없었다는것이였다.
김일은 송수화기를 내친 다음 담배를 거퍼 두대나 피우고서 김도만을 찾으려고 송수화기를 다시 드는데 서기가 들어와
김일은 지금껏 이런 일을 모르고 지낸
운전사가 차를 세우고 물병을 내밀었다.
《1부수상동지, 식사도 안하셨는데 물이라도 좀 마시십시오.》
대답대신 머리만 가볍게 흔드는 김일의 호수같은 커다란 눈엔 절절한것이 가득 고여 일렁이고있었다.
《그럼 조금이라도 쉬고…》
나직하나 엄한 음성이 운전사의 말을 부스러뜨리듯 눌러버렸다.
《가자구.》
《저, 여기 후치령고개길은 너무 험해서…》
《가자는데, 빨리!》
검실검실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하게 박힌 김일의 걸걸한 음성이 다소 높아졌다. 웬간해서는 큰소리로 욕질하는 일이 없는 김일이 어성을 높이는것으로 보아 마음속에도 이밤의 하늘처럼 검은구름장이 비꼈다는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운전사는 한숨을 내쉬였다. 옆을 보면 아찔한 낭떠러지이다. 차가 한번씩 들출 때마다 손발이 저려들었다. 간난신고끝에 마침내 차가 후치령고개를 넘어 읍거리에 들어섰을 때에야 운전사는 등줄기로 땀이 줄지어내리는것을 느끼며 후유- 하는 긴숨을 내쉬였다. 여기저기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는 순간 운전사는 마치 제집뜨락에라도 들어선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굽이굽이 험한 후치령을 무사히 넘었다는 안도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김일에게 잠시라도 휴식을 할수 있는 기회가 생긴것이 더없이 기뻤다. 운전사는 내심 단호한 결심을 내리고 차를 세웠다.
《여기 려관에서 쉬고 아침에 떠나면 안되겠습니까? 식사도 하시고 군병원 의사들도 불러서 치료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배고프면 먹소, 차안에서.》
운전사더러 차안에서 식사하라는것은 려관이나 병원소리는 당초에 입밖에 내지 말라는 엄한 신호이기도 했다.
《1부수상동지… 제발…》
말꼬리를 여물구지 못하는 운전사의 눈에서 물기가 글썽이였다.
《안됩니다. 이대로 가시다간 도중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김일은 말없이 오른손을 앞의자턱에 놓으며 두번 흔들었다. 이제 또 청을 들였다간 아예 문을 차고 나가 걸어가겠다고 할 김일이다.
한번 아니하면 벽이 되고마는 김일의 성미를 너무도 잘 알고있는 운전사는 하는수없이 제동변을 풀었다. 그는 1부수상의 차를 몰면서 언제나 가슴에 재를 얹군 했다. 운전사이면서 의사, 간호원이 돼야 했고 장거리출장을 갈 때면 료리사의 임무도 착실히 해야 했다.
그것은
《김일동지의 운전사는 담당의사도 되여야 하고 료리사도 되여 김일동지의 건강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건 무슨 고기요? 꿩고기완자? 두번다시 이따위 놀음하면 운전사를 교체하겠소. 명심하오, 우리
《저…》
《백두산나물이요.》
그때부터 《만능식품》으로 가지고다니는것은 토장에 풋고추뿐이였다. 풋고추철이 아닐 땐 된장이나 간장에 절인 고추였다. 장기환자를 간호하느라면 반의사가 된다고 이젠 약에 대해서도 웬만한 의사못지 않았지만 김일의 치료엔 별로 효과가 없었다. 치료란 약과 함께 안정이 필수적인데 도대체 안정은 없으니 어떤때는 자기가 제1부수상을 대신하여 앓았으면 얼마나 좋으랴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밤은 그 생각이 더더욱 간절했고 차라리 이렇게 고통스러울바에야 운전사를 교체해줬으면 하는 생각까지 울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