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6 회)
제 5 장
사랑의 힘
10
(1)
정의성의 발걸음은 집이 아니라 호수가로 향해졌다.
집에 들어가도 잠들것같지 못했다.
달빛밝은 이밤 쌓이고쌓인 괴로운 마음을 호수가에 터놓고싶었다. 그의 마음을 달래이듯 상쾌한 가을바람이 그의 옷자락에 매달려 어리광치듯 가벼웁게 날려주었다.
어느덧 호수가방뚝에 올라선 그는 드넓은 호수를 둘러보았다. 기쁘고 즐거워도, 힘들고 괴로와도 고향집처럼 찾게 되는 호수가였다.
굴지의 오리고기생산기지를 탄생시킨 대자연호수, 주체가금업의 새 력사가 아로새겨진 호수가의 달밤이 그 어느때보다 유정하게 안겨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오리의 울음소리… 달빛어린 호수가를 너도 보고 나도 보자 몸체를 번쩍이며 경쟁하듯 뛰여오르는 물고기들…
방뚝아래켠에 낚시줄을 드리우고 앉은 낚시군의 모습이 보였다. 이따금 머리우로 번쩍거리는 그 무엇이 팔매선을 그리기도 한다.
정의성의 눈앞에는 문득 지난해 여름 공장창립절에 있었던 일들이 사진처럼 안겨왔다.
…
그날 공장에서는 소학교운동장에서 체육오락경기를 조직하였다.
두개의 종금직장과 가공직장, 알깨우기직장은 지배인의 팀으로서 1조였고 청년직장을 비롯한 생산직장들은 당비서의 팀인 2조였다. 3조는 배합먹이직장을 모체로 운수직장과 기술준비소, 편의봉사부문으로 무어진 기사장의 팀이였다.
체육오락경기는 처음부터 치렬하였다.
공장직맹
그러나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지배인이 먼저 웃옷을 벗어던지고 운동장에 뛰여들었다. 젊은 시절 대학축구팀 주장으로 활약하였던 그는 나이가 많아도 축구라면 팔다리가 근질거려 앉아있지 못했다.
축구경기가 시작되자 지배인은 아예 운동복차림으로 꼴문대앞에 뒤짐지고 척 나섰다. 아직 문지기쯤은
꼴문대앞에 서있는 지배인을 본 1조종업원들은 사기충천하여 둥둥둥 북소리를 크게 울리였다.
운동장은 응원자들의 함성과 북소리, 노래소리로 들썩하였다.
김춘근당비서도 자기 팀이 수세에 몰린듯 하자 안절부절하더니 사람들속에 묻혀 뛰여다녔다. 청년직장과 생산직장의 몸매 날씬한 관리공처녀들은 꽃수건을 흔들고 손벽을 치며 멋지게 팀의 선수들을 응원하였다.
그러나 1조와 2조가 아무리 날고뛰여도 3조와는 아예 상대가 못되는것같았다. 축구에서는 비록 지배인의 팀에 졌지만 배구와 롱구는 물론 윷놀이와 장기를 비롯한 오락경기에서는 압도적인 우승을 기록했기때문이다.
송영숙은 팀의 상징인 푸른색운동모자를 척 쓰고 응원자들앞에 서서 흥취를 돋구는 멋진 률동으로 선수들의 응원을 지휘하였다. 그리고 공안고달리기종목에 선수로 참가하여 주로를 따라 힘껏 달리기도 하였다.
그날 정의성은 머리도 쉬울겸 한켠에 앉아 구경만 하고있었다.
대학시절에는 곧잘 운동장에 뛰여들어 날파람있는 동작으로 인기를 독점했던 그였으나 지금은 별로 의욕이 없었다. 그런데 배구경기에 참가할 선수들이 입장할무렵 송영숙이 그에게로 달려왔다.
《정동문 왜 그러구있어요? 동무야 배구를 잘하지 않나요. 빨리 나와요! 어서요!》
그는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기사장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배합먹이직장장이 다가서서 덮치듯 그의 옷을 와락와락 잡아벗기였다.
《빨리! 빨리! 자, 다리를 들라니까. 제길…》
배합먹이직장장은 바지가랭이를 잡아당기며 제켠에서 툴툴거렸다.
정의성은 그때 또 누가 자기에게 푸른색운동복을 입혔던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가 운동복을 입고 일어섰을 때 송영숙은 《한번 본때를 보이세요.》하며 주먹까지 흔들어보였다.
송영숙의 얼굴과 온몸은 생의 활력과 열정으로 충만되여있었다.
정의성에게는 자기의 젊은 시절을 추억해주며 경기장으로 이끄는 그가 무척 고마왔다. 닭공장에서 휴식날이나 명절날마다 진행되군 하던 로동자들과 소조원들의 배구경기에서 정의성이 언제나 기둥선수였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송영숙이뿐이였다.
그것을 오늘까지 잊지 않고있는 송영숙에 대한 고마움을 안고 경기에 나선 그는 멋진 타격솜씨와 맵짠 내려까기로 팀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배구는 물론 바줄당기기에서도 3조를 당할 팀이 없었다.
하여 그날 경기에서 3조는 당당히 1등의 시상대에 올라섰다.
체육오락경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배합먹이마대를 다루는 배합먹이직장의 힘장사들한텐 두손을 들었다고 머리를 저었다. 어떤 사람들은 3조에 기술준비소가 속해있기때문에 전략전술적으로, 기술적으로 이겼다고 말하면서 즐겁게 웃었다.
깊은 인상을 남겨준것은 그날 저녁이였다.
공장에서는 휴식날의 피로도 풀겸 직장별로 호수가에서 저녁식사를 조직하였다.
여름날 저녁의 호수가는 참으로 좋았다. 삼복의 무더운 날씨에도 호수가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