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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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무리속에서 자기의 금빛자태를 자랑하며 빛나던 쟁반같은 보름달도 기나긴 밤에 지쳤는지 구름속으로 스며들며 단잠에 든 깊은 밤이였다.
당중앙위원회청사 계단을 오르고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인기척소리에 무춤 서시며 고개를
드시였다.
복도에 흐르는 불빛으로 계단벽에 그림자를 그리며 주춤거리는 사람은 선전선동부 부부장 신인하였다. 목이 밭고 체격이 우람한 신인하는
박달이라고 할 정도로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사무용가방을 들고내려오던 신인하는 계단을 오르시는 그이를 뵈옵자 벽쪽으로
비켜드리며 조용히 서있었다.
해방전 신인하의 가정은 째지게 가난한 집안이였다. 여덟형제중에서 네형제가 굶어죽어야 했던 오막살이에서 겨우 생명을 부지한 신인하는 해방후
구성농업학교가 중학교로 개편되자 학교민청위원장으로 사업하면서 입당하고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였다. 전쟁이 일어나자 전선에 탄원한 신인하는 제1군관학교에서 단기강습을 마치고 기관총소대장이 되였다. 전후에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그는 27살의 나이에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지도원이 되였고 과장으로 사업하다가
자강도당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조동되였다. 신인하는 자강도당위원회에서도 손탁이 세고 내밀성있는 일군으로 평판이 좋았다.
지금은 부부장으로 사업하고있다. 그는 사업과 생활의 경계가 명백하고 모든 일에 주도세밀한 신중한 일군이였다.
그이께서는 계단을 오르시며 어딘가 침중한 표정으로 서있는 신인하를 유심히 보시였다.
《왜 이제야 퇴근하십니까?》
신인하는 아무 말도 없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오히려 묻는듯한 시선을 그이께 돌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표정에서 이밤에 집무를 보시려 청사로 나오시는 자신앞에
늦어진 퇴근길이지만 선뜻 걸음을 떼기 힘들어하는 심중을 포착하시였다.
《예술영화촬영소에서 오는 길입니다.》
《그런데 왜 퇴근하시지 않고…》
《내 걱정은 말고 어서 가십시오. 영화문학창작사에서 가져온 문학들을 보아야겠기에 곧추 왔습니다.》
신인하는 가벼운 한숨을 내그으며 여전히 계단을 내리지 못하고 오른손의 가방을 왼손으로 옮겨쥐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부장이 자신때문에 선뜻 걸음을 떼지
못하고있다는것을 헤아리시고 가볍게 웃으시였다.
《어서 가십시오.》
계단을 오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잔기침을 하며 주밋거리는 신인하를 다시 돌아보시였다.
부부장의 퇴근걸음이 몹시 무겁다는것을 감촉하시였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돌아서 신인하의 팔을 잡으시고 청사계단을 내리시며 물으시였다.
《혜산에 건설하는 대기념비말입니다. 건설이 어느 정도 진척되고있는지 보고된 자료는 있습니까?》
그이를 따라 계단을 내리던 신인하는 다소 당황해하며 나직이 말씀드렸다.
《그 건설은 김도만부장이 박금철부위원장의 지시를 받으며 직접 주관하기때문에 저에게는 보고되는것이 없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청사현관을 나서자 멈춰서시며 신인하를 마주보시였다.
《내가 알아본데 의하면 기초공사도 채 못한것같습니다.》
그이께서는 현관계단을 내리시며 멀리 하늘가에 떠있는 달을 바라보시였다.
《래년이 보천보전투승리 30돐이 되는 해인데…》
김정일동지의 심려에 눈길을 떨구는 신인하의 입에서 거치른 숨소리가 울려나왔다.
《시급히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더구나 이 며칠동안은 〈향토꾸리기〉때문에
협의회들을 하도 하다보니 관심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언제부터 마음속에 품고계시던 일을 신인하가 꺼내니 물으시였다.
《한번 만나서 묻고싶었는데 〈향토꾸리기 10개년계획〉이라는것은
원래부터 부서에서 안을 가지고있었던것입니까?》
《아닙니다. 부서에서는 수령님께서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을 많이 할데 대한 교시를 주신 다음 그 집행대책을
토의하더랬는데 김도만부장이 갑자기 사회주의애국주의교양은 〈향토꾸리기 10개년계획〉으로
작성하여 집행대책안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먼저 전국적인 시범단위를 꾸려 방식상학을 진행하고 모든 도, 시, 군들에서 따라하도록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특히 당중앙위원회 부장들이 한개 도씩 맡아서 사상사업을 강화할데 대한 수령님의 교시가 계시자 평북도를 담당해가지고
더 극성을 부립니다. 오늘은 다른 도들에서 잘 집행되지 않는다고 담당은 아니지만 다른 도의 어느 한개 리를 자기가 직접 맡아 시범을 보이겠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그 문제를 토의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선전선동부에서 평안북도를 전국적인 《향토꾸리기》 시범단위로 한다면서
전화통과 씨름질하는것을 여러번 목격하시였다. 김도만이 직접 해방전 향토시인 김소월의 고향인 곽산과 그가 다닌 오산중학교가 있던 정주에 가서
틀고앉았었고 도당선전부장들의 회의에서는 김소월의 시 《초혼》을 읊으며 《향토꾸리기》를 다그어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늘이 짙게 드리운 신인하의 얼굴에서 그의 마음속고충을 꿰뚫어보시며
미소를 피워올리시였다.
《이거 이야기가 너무 길어진것같습니다. 어서 퇴근하십시오.》
그이께서는 자신께서 빨리 자리를 뜨셔야 부부장의 걸음이 다소 가벼워질것이라고 생각되시여
현관쪽으로 바삐 가시였다. 현관문으로 들어가시려던 그이께서는 다시 뒤를 돌아보시였다. 신인하의 모습이 어둠속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신듯 현관계단을 다시 내리여 정원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정원길에 들어서니 푸른 빛이 청청한 바늘잎나무들이 싱그러운 숲향기를 풍겼다. 밤바람에 송진냄새가 상쾌하게 실려와 여간 감미롭지 않았다.
정원의 검푸른 나무우듬지들에도, 그밑에 보드라운 주단처럼 깔린 잔디밭에도 교교한 달빛이 쏟아져내려 은빛으로 번뜩이고있었다. 청신하고 고요한
달밤이였다.
그이께 정적이 깃든 이런 밤은 산책하며 사색하시기 참으로 좋은 시간이였다. 키높이 자란 소나무며 전나무, 잣나무들이
정렬한 대오마냥 서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기시니 백두밀림속을 거니는것만 같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두손을 뒤로 모아쥐시고 사색의 심연을 헤치기 시작하시였다.
혜산에 건립하는 대기념비는 강건너 불보듯 하면서 《향토꾸리기》라는 사업은 《10개년계획》이요 뭐요 하며 분주탕을 피우는 사태는
그이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첫 시기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시였다.
그때에는 청사로 드나드는 길이 외통길이였다. 하여 수령님께서 내각에 계시다가 당중앙위원회로 나오실 때에는
당중앙위원회일군들이 다니는 길로 오군 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을 모실 길은 따로 내는것이 전사로서의
의리와 도덕이라고 결심하시고 이 문제를 당세포에 제기하시였다. 그이의 제의에 세포당원들이 한결같이 떨쳐나섰다.
당중앙위원회일군들은 청사옆의 잡초들을 뽑고 수령님을 모실 길을 새로 닦는 건설전투를 벌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느날 일군들과 함께 깊이 뿌리내리고 자란 잡초를 뽑으며
말씀하시였다. 잡초는 뿌리채 뽑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 솟구쳐오르게 된다.
그때 하신 말씀은 한갖 여담이 아니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밤 혜산대기념비건설과
《향토꾸리기》라는 사업을 놓고 자신께서 하셨던 그 말씀을 다시금 음미하시였다. 혜산의 대기념비건설에는 등을 돌려대고
보천군 의화리에 내리는 뿌리.
김정일동지께서는 끝없는 사색에 잠기시였다.
조선혁명이 피를 바쳐 세대와 세대를 이어 지켜야 할 뿌리는 무엇이며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수호하기 위하여 잔뿌리마저 송두리채 뽑아버려야
할것은 무엇인가.
이 길이 엄혹하고 준엄할수 있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이며 또 자신께서 개척하셔야 할 길이였다.
그이의 뇌리에서는 보천보의 목천복로인이 보낸 편지구절들이 울리고있었다.
《…처음엔 부글부글 끓던 건설장이 지금은 나간 집처럼 한적하기 짝이 없으니 명년도에 당장
보천보전투 30돐인데 우에서 탑건설을 책임졌다는 어른들은 도무지 셈판이 있는것같지 않소이다.
게다가 들려오는 말인즉 보천보전투승리를 기념하는 탑에다가 갑산동맹, 길주농조까지 다 합쳐서 인민영웅탑으로 세운다 하는데 세상에 엎어말이도
분수가 있지 이런 엎어말이가 어디 있소이까.
누구나 짓눌려살던 그 세월에 백두산에서 울리는 김일성장군님빨찌산의 총소리가 높아 우리
갑산땅의 화전농, 처서군들이 동맹을 뭇고 길주의 농군들도 들고일어났던것이지 저 의화리집 주인어른네나 길주명천의 어떤 어른네가 해방의 총소리를
불러온것은 아니지 않소이까.
상고하고 또 상고해볼수록 이 나라는 백성이 영웅이 돼서 구원한것이 아니라 하늘이 낸 영웅 김일성장군님께서
구원하시였은즉 탑의 이름도 기왕지사 영웅탑으로 할것같으면 인민영웅탑이 아니라 김일성장군영웅탑으로
세워야 리치에 마땅하다고 생각하오이다.
생각할수록 잘되는 일같지 않아 밤잠도 못자고 궁싯거리던차에 10년전 길없는 밀림을 헤치며 김일성장군빨찌산의
자취를 따르시던 비범한 학생분께서 오늘은 존경하는 웃분으로 추앙받으시며 우리 당중앙에서 김일성장군님
항일빨찌산영화를 만드는것을 직접 지도하신다는 희한한 소식을 듣고 무딘 글월로나마 소견을 아뢰오니 부디 바로잡아주시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