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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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봉선화사건》은 동유럽의 어느 사회주의나라를 방문한 외무성대표단의 과장 차성준이 연회때 해방전가요 《봉선화》를 부른것으로 하여 문제시된 사건이였다.
귀국한 외무성대표단의 사업정형을 보고받은 당중앙위원회 국제부장 박용국이 사상투쟁을 벌리게 하고 자기가 직접 회의지도를 했다. 성적인 사상투쟁회의에서는 먼저 대표단 단장으로 간 명부국장이 자기 비판토론을 했다.
그는 모든 잘못은 대표단 단장으로 간
회의지도를 나온 박용국은 사람좋게 웃으며 오른손 장지가락으로 피아노의 건반을 때리듯 앞탁을 가락맞게 두드렸다.
《저렇다니까. 동무네 연회에서 부른 노래 한곡을 두고 왜 이렇게 벅적 떠드는가 할수 있는데 이건 사회주의나라들속에서 우리가 한가마밥을 먹는가, 아니면 외토리가 되는가 하는 심각한 문제요.
외교사업이란 예민하거던. 발언 하나때문에 외교관계가 단절되는가 하면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는게 외교무대란 말이요. 헌데, 이번에 파견된 대표단은 〈봉선화〉로 해서 상대방의 비위를 잡쳐놓았단 말이요. 그 사람들의 감정이 좋았겠는가. 차성준이 누구요?》
몇해전 유럽나라들에 당대표단 단장으로 갔던 박용국은 통역은 아예 제쳐놓고 연회때는 물론 일반대화에서도 그 나라말을 베아링 굴리듯 해서 상대방의 호감을 자아냈을뿐 아니라 지방참관으로 꼴호즈로 나갔을 때에는 그 나라 민요를 불러 꼴호즈원들의 재청까지 받았었다.
허담이 그 사실을 상기하며 깊은 상념에 잠겼는데 뒤좌석에서 첫눈에도 학자풍인 얘리얘리한 젊은이가 안경을 추스르며 일어섰다. 얼굴이 사내라기보다 처녀처럼 갸름하고 해말쑥한 과장 차성준이였다.
《동문 지도원도 아니고 과장인데 왜 정치적각성이 없이 〈봉선화〉를 불렀소, 엉? 워드까 몇잔에 뻥뻥해서 친구네 잔치집인가 했나? 동무, 어느 나라에서 류학했나?》
차성준이 대답을 찾지 못하고 긴 목을 왼손으로 쓸며 바재이는데 허담이 앞질러 대답했다.
《류학생출신이 아닙니다. 우리 외국어대학을 졸업했는데 다섯개 나라 말을 합니다.》
《다섯개든 여섯개든 그건 필요없구, 동무 쏘련공산당략사를 연구했나? 외교관들인 경우 제 나라는 몰라도 세계는 알아야 한단 말이요. 땅덩이도 작고 인구도 적은 우리가 사회주의라는 대가정에서 외토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
지금 가뜩이나 중쏘분쟁으로 사회주의진영이 갈라져있는판인데 한쪽에서는 우리보구 어느 편이냐, 립장을 밝히라 하고 한쪽에서는 절충주의를 한다고 걸고드는데 이런 복잡한 때일수록 외교관이라는 사람이 신축성있고 령활해야지 않겠나? 언행부터 촌티를 벗구 개명해야지 그게 뭐야…》
허담은 박용국이가 웃으며 하는 훈시질을 두고 생각이 깊어졌다. 외교사업에 대한 당정책적지도를 담당한 부장이 공식석상에서 쏘련공산당략사를 거들고 신축성이요 령활성이요 하며 떠들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려는것인가? 더구나 박용국의 역설에 대바른 말 한마디 못하는 차성준의 섬약한 처사에 주먹까지 불끈 쥐게 되였다.
허담은 차성준이가 비바람에 처량하게 떨고있는 울밑의 봉선화를 방불케 하여 자리를 차며 일어나 울컥 한마디 했다.
《차성준동무, 동문 언제까지 울밑의 봉선화가 되겠소?》
박용국은 허담의 예리한 질문에 이번엔 한수 늦추며 책상우에 놓은 사업일지를 번졌다.
《류학물을 먹지 못했으니 그럴수 있지. 세계를 보는 안목은 집안에 앉아서 번지는 책장의 글줄에서 트이는것이 아니요. 외교사업을 하자면 류학물을 먹어야 돼. 저 동문 외국어에도 능하다니 교육부문에 보내서 교원이나 시키는게 맞춤하겠소.》
허담은 차성준을 장차 외무성의 기둥감이 될수 있다고 믿어왔었다. 그만큼 명석한 두뇌를 지닌 외교일군이였다. 외무성에선 그를 《총각과장》이라 사랑을 담아 부르며 저저마다 칭찬을 아끼지 앉았다.
허담은 이 사실을
그날
《국제부는 그 사람이 외국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문제시했는데 난 견해를 달리합니다. 물론 우리 사람들도 외국에 나가 그 나라 노래를 부를수 있지요. 문제는 어떤 립장에서 부르는가가 중요한것입니다. 비굴하게 누구의 비위를 맞추느라 부르는건 제 얼굴에 먹칠하는 너절한짓이 아닙니까.
자기의 존엄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주저없이 외토리가 될것이며 눈치밥먹는 행랑살이는 하지 않을것입니다!
문제는 조선노래를 부른데 있는것이 아니라 〈봉선화〉를 부른데 있습니다. 그 노래는 불러서 안되는 노래는 아니지만 그 동무의 경우 그 자리에서는 부르지 말았어야 할 노래입니다. 〈봉선화〉는 나라없는 설음에 몸부림친 탄식의 노래가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조국이 없습니까? 미일 두 제국주의를 타승한 조선인데 뭣때문에 오늘까지도 국제무대에 나가 그런 설음젖은 노래를 불러야 합니까?
부상동지는 그 동무를 〈울밑에 선 봉선화〉라고 욕했다는데 난 봉선화가 아니라 부평초라고 말하고싶습니다.》…
미제가 침략전쟁을 일으키자 류학생들은 전선에 탄원하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지금 누구를 추종하고 무엇을 하고있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당의 원칙이며 립장이 아닌가.
그때 우리 당의 원칙적립장을 당당히 선언하고 돌아온 김일이
윁남당대표단은 호지명
유모아적인데가 다분한 이야기였지만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오랜 활동가인 호지명도 그렇듯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