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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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앞으로 흐르는 강기슭을 거닐고계시였다. 물기를 머금은 축축한 땅에서 시크무레한 냄새가 풍기는 기슭을 가로질러 강뚝에 오르신 그이께서는 연록색의 잎새를 흐느적이는 버드나무에서 날려오는 싱그러운 훈향을 페부로 느끼시면서 달빛이 아롱진 물이랑들을 깊은 사색에 잠겨 바라보시였다.

그이께서는 금방 예술영화 《유격대의 오형제》제작을 위해 촬영소에서 준비하고있는 군복이며 총, 작식대의 생활도구들을 보고 나오시는 길이였다. 예술영화촬영소의 일군들은 배우들의 의상이며 소도구로서 총과 식기, 숟가락들을 쥐고 보았지만 그것을 보시는 그이의 사색은 달랐다.

그이께서는 항일의 전구들에 그날의 귀틀집들을 일떠세우고 거기에 당시의 유물들도 찾아서 놓아야겠다는 강렬한 충동을 금할길 없으시였다. 그 유적유물들이야말로 억만금에도 비길수 없는 조선혁명의 만년재부라고 생각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예술영화 《유격대의 오형제》 제작을 결심하신것은 영화예술부문의 침체를 가시고 영화혁명의 새시대를 펼치기 위한 장쾌한 투쟁인 동시에 몇년간 품을 들여 창작하는 이 영화의 제작을 통하여 항일혁명투쟁의 력사자료들을 고증하고 확보하여 백두밀림에서 창조된 혁명전통의 뿌리를 억년 드놀지 않을 조선혁명의 혈통으로 순결하게 이으시려는 원대한 리상의 선언이기도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강기슭을 떠나 촬영소구내로 들어오시는데 중년에 때이른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다부진 몸매의 부총장이 헐썩거리며 다급히 다가왔다. 그는 만수대창작사 조각가 리석이 그이를 뵈옵자고 방금 왔다고 알려드렸다.

《어디 있습니까?》

부총장이 배우단청사 정문앞 계단쪽에 서있는 젊은 청년을 가리켰다.

며칠전 그이께서는 혜산에 보천보전투승리를 기념하여 건립하는 대기념비의 창작정형을 료해하시다가 아무리 보아도 형성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여 형성안창작조의 기둥조각가인 리석을 찾으시였다. 그런데 리석은 혜산에 출장을 갔다고 하였다.

리석은 수령님께서 지금도 잊지 못해 추억하시는 항일유격대 정치공작원 리철의 아들이였다. 리철은 조국해방작전을 앞두고 전민항쟁을 위한 무장소조 조직임무를 받고 국내깊이에 파견되여 활동하였다. 그는 청년들과 함께 경찰서를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한 후 추격하는 놈들과의 격전끝에 희생되였다.

해방후 혁명가유자녀로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 안겨자란 리철의 아들 리석은 김정일동지께서 각근한 관심을 가지고계시는 재능있는 조각가였다. 혜산에 출장을 갔다면 대기념비창작때문에 갔을것이라고 생각하신 그이께서는 리석이 올라오면 자신께서 한번 만나보겠다고 하시였던것이다.

단단하고 탄력있는 몸매는 조각가라기보다 체육선수를 방불케 하지만 기름한 얼굴에 날이 선 코며 짙은 눈섭밑의 리지적이면서도 예리한 눈빛은 사색형, 재능형이라는것이 대뜸 알리였다.

리석은 그 얼굴생김새처럼 갓 서른살의 혈기왕성한 나이였으나 말이 적고 심중하면서도 재능이 남다른 창작가였다. 내성적인 그의 얼굴에서 웃음을 보기란 쉽지 않았고 더우기 유모아나 롱담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서북풍이 일면서 구름장들이 한겹, 두겹 밀려들더니 실오리같은 비줄기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김정일동지께서 보슬비내리는 배우단청사옆의 구내길로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시였다.

《출장길에 수고가 많았겠습니다. 대기념비건설은 어느 정도 진척되고있습니까?》

리석은 두손을 맞잡고 바재이다가 혀아래소리로 더듬거리였다.

《저 기념비건설장은 차를 타고 지나면서 얼핏 봤는데 아직 기초굴착도 채 안되였고 일하는 사람들도 얼마 없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대기념비건설이 앉은걸음을 하고있다는데 대하여 이미 알고계시였다. 리석의 말을 통하여 그것이 사실이라는것을 확증하신 그이께서는 뭔가 마음속에 짚이는것이 있으시여 다시 물으시였다.

《대기념비건설장에 가지 않았다면 혜산엔 무슨 일로 갔댔습니까?》

《혜산에 내려서 곧장 보천군 의화리에 갔댔습니다.》

《의화리에?》

보천군 의화리. 바로 거기에 그 누구의 《생가》라는것을 꾸려놓고 보천보전투혁명전적지 참관로정에 포함시키려고까지 한다는것을 알고계시는 그이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리석은 눈길을 떨구며 잦아드는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기념비건립중앙상무 책임자가 가자고 해서…》

《그건 내각에서 조직한 상무입니까?》

《아닙니다. 당선전부에서 조직했는데 총책임자는 김도만부장이라고 했습니다.》

리석이 혜산까지의 긴 렬차려행에 이어 승용차를 타고간 보천군의 의화리란 곳은 난생 처음보는 깊디깊은 산골이였다. 렬차에서도 지쳤지만 자동차를 타고가는 일도 여간 베차지 않았다. 보천군은 백두고원에 자리잡은 지대로서 북포태산, 남포태산, 관계봉, 정하봉, 아무산, 누른봉 등 높은 산들로 둘러싸였는데 대부분지역은 신생대 화산분출암에 뒤덮여있었다.

차창밖으로 표백성갈매토양의 산지에 뿌리내린 이깔나무, 전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들이 웬 불청객들이냐는듯 시창을 후려칠듯 다가들었다가는 가뭇없이 사라지군 했다. 밤색골덴제낀깃양복에 줄무늬가 유표한 푸른색샤쯔를 받쳐입은 상무책임자 황유탁을 따라 가산리의 사득평옆에 자리잡은 의화리에 간 리석은 요란한 울타리를 한 기와집으로 들어가게 되였다.

황유탁은 짐짓 감개에 젖어 집안의 여기저기를 눈주어 살피며 중얼거렸다.

《이제 이 방안에 그때의 가구들도 유물로 가져다 전시하게 되오. 지금 그 사업도 본격적으로 진척되고있소. 양복장, 책상, 가마와 식기까지도

당중앙위원회 부장 김도만의 지시로 이제 이 집을 사적건물의 체모에 어울리게 보수를 진행하며 그에 걸맞게 구내도로도 정갈하게 뽑고 꽃밭과 수목원도 조성한다는것이였다.

《그래 의화리에 가서 뭘 했습니까?》

노기가 서린듯한 그이의 음성에 리석은 가슴속에서 무엇이 덜컥 떨어지는것같은감이 들며 어쩐지 께름직했던 그 일이 온몸에 전률을 쭉 끼쳤다.

그때 황유탁은 실주름이 엉킨 눈에 웃음발을 피워올리며 양복안주머니에서 하얀 종이에 싸기까지 한 사진을 꺼내여 내밀었었다.

《이분이 동무가 조각해야 할 사모님이시오. 우에서 특별히 중시하는 일인데 한번 솜씨를 보이오.

김도만부장동지가 시간을 내서 동물 직접 만나겠다고 했소. 리석동무한테 호박이 넝쿨채로 떨어지는것같애.》

리석은 당중앙위원회 부장이 직접 준 과업이라기에 가타부타 말이 없이 사진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자기도 모를 묘연한 감정이 리석의 마음속에 굼닐었다.

《부인의 동상은 여기 마당에 세워야 합니까?》

《사모님이시라는데!》

황유탁은 리석의 옆구리를 쿡 찌른 후 자라목을 뽑고 마당을 휘둘러보았다.

《사모님동상이야 마당에 세워야지. 어디가 좋겠는지는 동무가 결심해보오. 내 생각엔 이왕이면 동상을 전신상으로 모셨으면 좋겠는데 우에서는 겸손하게도 반신상으로 하라니까 그렇게 하오.》

쐐기풀들이 여기저기에서 여긴 내 땅이다 하듯이 키높이 돋은 마당주위를 살피던 황유탁은 오늘 밤은 의화리합숙에서 쉬고 래일 떠나자며 리석을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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