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6 회)
제 5 장
사랑의 힘
4
(2)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누구나 전쟁로병 영예군인인 전 공장지배인을 추억하면서 묵묵히 앉아있었다.
지금껏 뻣뻣한 자세로 앉아있던 서정관도 아버지의 말이 나오자 머리를 푹 수그리며 자책어린 한숨을 내불었다.
그날 회의에서는 상급당조직과 토의하여 서정관에게 당분간 생산부기사장사업을 중지하고 배합먹이직장 창고작업반에서 일할데 대하여 결정하였다.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서정관은 온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그의 귀전에서는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던 비판의 목소리들이 그냥 울리였다.
오십고개를 넘도록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는 뼈아픈 비판이였다.
실력이나 실무는 어려도 지금껏 이쪽저쪽 잘 둘러맞추고 웃사람들의 기분과 감정을 제때에 포착하여 잘 받들어주는것으로 한몫 보아온 그였다.
언제부터인지 공장사람들속에서는 기회주의와 요령주의적으로 생활하고있는 서정관을 두고 《명관》이라고 불렀다. 그에 대해 말할 때마다 《정관은 확실히 명관이야.》라는 말로 매듭짓군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명관인줄 알고 부르기까지 했다.
안해를 통해 이 말을 전해들은 서정관은 대범한척 호걸스럽게 어깨를 들썩거리며 껄껄거렸다.
《거 뭐 듣기 싫지 않구만. 엉?》
사실 남다른 촉각으로 어렵고 책임이 중한 일에서는 묘하게 몸을 사리고 전망이 내다보이는 일에서는 몸을 내대면서 발벗고 나서군 하여 지금껏 크게 비판과 처벌을 모르고 살아왔었다.
하지만 그 모든것 뒤에 무시할수 없는 배경이 되여준것은 아버지였다.
공장을 위해 바친 아버지의 진하디진한 피와 땀은 아들을 말없이 보증했고 신임하게 하였으며 결함에 대해서는 쉽게 리해시켜주었다.
그러나 인생은 화려한 배경만으로 장식되고 가꾸어지는 무대가 아니였다. 애써 노력하지 않고서도 쉽게 그리고 큰 열매를 따는것은 한두번의 요행수일따름이다.
하지만 서정관은 그 요행수에 너무도 자주 인생을 의탁하였었다.
다음날 동생 방옥화에게서 남편의 처벌소식을 들은 방송화는 기절할듯 놀랐다.
《뭐라구? 배합먹이직장 창고반에서 일하게 되였다구? 로동자루?》
그는 손바닥으로 입을 딱 막으며 굳어졌다. 지금까지 생각 못했던 무자비하고도 엄청난 처벌이였다.
(그래서 어제밤 식사도 건느고 한숨만 내쉬였구나. …)
저녁에 랭수 한그릇으로 식사를 굼땐 남편은 아침에도 밥을 몇술 뜨다말고 집을 나섰다.
《그러니 오늘부터 창고작업반에서 일한다는거지?》
방송화는 겁기어린 얼굴로 다시 물었다. 부기사장 체면에 배합먹이마대를 메여나르는 남편의 모습이 떠오르자 도리여 제 얼굴이 화끈거렸다.
동시에 그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괘씸한 생각이 출구를 찾으며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드디여 송영숙에게로 그 원망과 분노가 뿜어나왔다.
(제밀에서 일하는 부기사장 하나 책임져주지 못하다니… 언제봐야 설비부기사장만 끼구돌더니…)
기사장이 나서서 한마디만 해주어도 남편이 창고작업반으로 내려가지 않을거라는 생각에 등나무줄기처럼 속이 뒤틀렸다.
(때리든 욕하든 사무실안에서나 어쩔것이지 하필 남보기 부끄럽게 현장으로 내보낼건 뭐람. …)
방송화는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큰언니한테 찾아가보는게 어때요?》
방옥화가 묻는 말이였다.
《?!》
《큰언니가 지배인동지랑 당비서동지랑 만나 아저씨문제를 무마시켜달라구 부탁하면…》
동생의 말에 방송화의 귀가 번쩍 열리였다.
공장에 하나밖에 없는 녀성직장장이고 지난해에는 도인민회의 대의원으로까지 된 언니가 일군들을 찾아가 잘 말하면 남보기 부끄럽게 배합먹이마대를 지고 나르는 일만은 얼마든지 그만두게 할것같았다.
방송화는 당장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종주먹을 쥐고 가공직장을 향해 드달려가보니 방인화는 마침 마당에 있었다. 동생을 띄여본 그는 무심한 눈빛으로 《어떻게?》하고 외마디로 물으며 다가왔다.
방송화는 짐짓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과장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 우리 승호 아버지가 배합먹이직장 창고반에서 일하게 된걸 아나요?》
《알지. 근데 왜?》
사교성이나 살뜰한데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수 없는 그 뚝한 물음에 방송화는 약간 당황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겉모습과는 달리 웅심깊은 언니의 마음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언니! 언니가 우의 일군들을 만나서 세대주를 창고작업반이 아니구 어디 좀 조용한데서 일하게 해줄수 없나요?》
《…》
《사실 지난 겨울부터 세대준 몹시 앓으면서 지금까지도 약을 밥먹듯 해요. 그런데 그 몸에 어떻게 배합먹이마대를… 언니! 좀 도와줘요. 옥화도 언니를 찾아가면 도와줄거라구 하더군요.》
그는 동생의 이름까지 꺼들면서 애원했다.
방인화는 동생의 말이 당치않은듯 그만에야 눈을 뚝 부릅떴다.
《너구 옥화구 우리 공장사람이 맞아? 응?》
《?!》
꽁지 대가리 없는 물음에 방송화는 굳어졌다.
《그러지 않아 나두 오늘은 시간을 내서 일군들을 좀 만나자구 했다.
글쎄 배합먹이를 한두kg두 아니구 1t반씩이나 변질시킨거야 역적이구 반동이지 뭐야? 죽인대두 할소리 있어? 그런데 뭐 어데서 일을 시켜달라구? 너 지금 제정신이야? 응? 내가 지배인이구 당비서라문 법적제재를 받게 하던지 아니문 공장에서 아예 내쫓던지 했을게다.
그런데 뭐가 어쩌구 어째? 조용한데서 일하게 해달라구? 주제에 부끄러운건 아는 모양이지?》
원칙이 강하고 거대스러운 방인화는 터슬터슬 거칠고 커다란 방망이같은 말로 동생을 무자비하게 후려쳤다.
《너 이제라두 제정신 차리구 남편결함을 고쳐주기 위해 노력해라. 그렇게 노랑쥐처럼 살다간 이 공장에 못 배겨. 알겠니?》
《…》
《참! 너 아직두 미용실에 틀구앉아 남의 뒤소리만 한다지? 내가 모르는줄 알아? … 이제 한번 더 그런 말이 들려오면 그땐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
방인화는 그 드센 입심으로 말썽많은 동생이 찍소리 한번 못하게 그냥 조겨대였다. 이윽고 단단히 오금을 박듯 헛기침을 깇고나서 극동실쪽으로 씽씽 걸어갔다.
《음, 뚝쟁이같은거.》
메사해진 방송화는 제풀에 두덜거렸다. 살집좋은 그의 얼굴엔 심술과 불만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 떼러갔다가 하나 더 붙인 심정이였다.
언니의 말은 돌이켜 생각할수록 가슴을 후벼내는듯 아팠다.
목이 받고 오동통한 그는 짧은 다리로 맥없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