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5 회)
제 5 장
사랑의 힘
4
(1)
《콩이 모두 변질되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예요?》
생산과장의 전화를 받은 송영숙은 깜짝 놀라 하마트면 송수화기를 떨굴번 하였다.
《한달전에 생산부기사장이 아무 일 없다고 했는데… 난 모르겠어요. 그럼 한달내에 그 숱한게 변질되였다는거예요?》
1t 500kg이나 되는 배합먹이용 콩이 모두 변질되였다는 생산과장의 전화는 너무도 충격적이여서 송영숙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는 송수화기를 내려놓은 다음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통 모르겠어, 무슨 영문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기 전엔 믿을수 없어. 믿지 못하겠어. …)
그는 덧옷을 입고 사무실을 나섰다.
한달전 행정참모부회의에서는 긴장한 배합먹이를 극력 절약하는것과 함께 보관을 잘하여 조금이라도 허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책적문제를 토의했었다.
지난해보다 장마가 일찍 시작되는 조건에 맞게 배합먹이의 보관과 관리를 잘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면서 이 과업을 생산부기사장에게 주었던것이다.
서정관은 이 과업을 아주 책임적으로 수행하였다.
담당부원과 함께 과업을 받은 즉시 보관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고 이상이 없다고 착실히 전화보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한두kg도 아닌 그 많은 콩이 모두 변질되다니 송영숙은 도무지 믿을수 없었다.
(원료보관창고의 조명상태가 나빠서 잘못 보고 서뿔리 말했을수도 있다. 그래! 십분 그럴수 있어. …)
송영숙은 이런저런 경우를 생각하면서 바삐 마당으로 나왔다.
몸을 솟구어 자전거에 오르려던 그는 갑자기 눈앞이 아찔하여 한손으로 눈을 가리우며 한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심한 어지럼증으로 까딱 움직일수가 없었다.
(요즘 피곤이 몰려서 그러는게야. …)
송영숙은 이마살을 찌프리며 자기를 위안하였다. 잠시후 자전거를 끌고 사무청사를 나서던 그는 마음이 조급해나서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배합먹이직장에 도착하니 마당에 나와있던 생산과장이 그에게 다가왔다.
《다시 잘 봤어요?》
송영숙은 자전거에서 내리며 다우쳐물었다.
과장은 쩝소리가 나게 쓴입을 다시였다.
《부기사장동문 어디 있어요?》
방금전에도 옆에 있었는지 과장은 이쪽저쪽을 둘러보았다.
송영숙은 급히 원료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창고안에는 배합먹이직장장과 창고반장, 부원들이 모여있었다.
송영숙은 그들앞에 헤쳐놓은 마대는 거들떠보지 않고 창고안쪽으로 들어가 말없이 마대 하나를 끌어당겼다. 철썩 소리를 내며 발치에 떨어졌다. 그는 신경질적인 손동작으로 마대아구리를 와락와락 풀어헤쳤다. 물씬 곰팡이냄새가 풍겨왔다.
송영숙은 울컥 치미는 분기를 누르며 마대아구리를 활짝 헤쳐보았다. 습기와 열에 의하여 시퍼렇게 곰팡이가 낀 콩알들이 아프게 눈을 찔렀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송영숙은 홱 돌아서며 창고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그는 결기어린 손동작으로 마대 하나를 또 끌어내려 아구리를 헤쳤다. 모두 곰팡이가 낀 콩이 들어있었다.
거친숨을 톺으며 홱 돌아선 그는 담당부원을 쏘아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거예요? 배합먹이가 이상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예? 도대체 이게 뭔가 말이예요?》
여느때없이 날카로와진 그의 눈에서는 금시라도 새파란 불꽃이 탁탁 튕길듯 하였다. 그 눈빛앞에서 부원은 기가 질려 떠듬거렸다.
《부기사장동지가 그저 실사만 하면 된다기에…》
이때 지배인이 당비서와 함께 창고에 들어섰다.
그들도 벌깃하고 긴장된 얼굴로 제각기 마대를 한개씩 헤쳐보다가 억이 막힌지 어깨를 떨구며 한숨을 내그었다.
이윽고 황소숨을 씩씩 내뿜고있던 지배인이 어지간히 큰 목소리로 생산부기사장을 찾았다. 누구도 그의 행처를 모르고있었다.
《직장장! 창고장!》
지배인은 문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두사람을 큰소리로 불렀다.
《동무넨 배합먹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뭘했소, 엉? 과장동무! 동무한텐 책임이 없소?》
지배인의 목소리는 창고안을 드렁드렁 울리였다. 그의 구리빛얼굴은 보기에도 험상하였다.
창고를 한바퀴 돌고난 당비서의 얼굴도 컴컴했다. 그는 생산과장에게 변질된 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 조용히 물었다.
《배합먹이로는 안되고… 발효먹이로나 할수 있는데 곰팡이냄새때문에 오리가 잘 먹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생산과장의 대답에 당비서는 기가 막힌지 두투름한 아래입술을 삐주름히 내밀었다.
사람들이 한창 변질된 콩을 두고 안타까와하고있을 때 서정관은 방옥화의 방에 들어박혀 가슴을 조이고있었다.
덫에 치인 쥐마냥 가련한 신세가 된 그는 량손으로 책상을 부등켜잡고 한숨만 푹푹 내그었다.
배합먹이보관정형을 알아보고 필요한 대책을 세울데 대한 과업을 받은 그는 담당부원과 함께 창고를 휘 둘러보고는 직장통계원인 방옥화에게서 수량만 확인하는것으로 그쳤던것이다.
해마다 배합먹이보관에서 별다른 일이 없었고 제진장치와 배풍장치를 새롭게 해놓았으니 이상없을거라고 생각한 그였다.
(지난해 가을 수분함량이 많은 배합먹이를 받았다는걸 기억했더라면…)
그는 꺼지게 한숨을 내불었다.
그날 저녁 지배인방에서는 서정관의 문제가 심각하게 비판되였다.
공장일군들은 서정관의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이며 눈가림식일본새에 대하여 예리하게 분석하고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원칙이 강하고 사리정연한 계획과장은 변질된 배합먹이는 다름아닌 서정관이라는 인간을 평가하게 해준다고 말하였다. 그의 정신상태가 변질되였기때문에 귀중한 배합먹이를 부패시켰다고 비수같은 말마디로 비판하였다.
최금천도 소꿈친구의 결함에 대하여 누구보다 가슴아파하면서 그의 무능한 일본새에 되게 매질을 하였다.
《…현장사람들이 동무보고 뭐라구 하는지 압니까? 초보적인 발효법도 모르는 무식쟁이라구 합니다.
사실이지 난 이런 평가를 받는 동무를 볼 때 정말 괴롭습니다. …》
이윽고 생산2직장장 윤흥식이 안경을 추슬러올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한동안 창문을 등지고앉은 서정관을 쳐다보며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난… 부기사장동무를 볼 때마다 늘 공장의 전 지배인이였던 저 사람의 아버지 생각을 하군 합니다.
우리 공장의 첫 세대인 그분은 어느모로 보나 훌륭한 사람이였지요.
오래전에 나는 그분과 함께 어분배합먹이를 받으려구 동해지구로 출장을 간적 있었습니다. 그때보니 그분은 정말이지 공장만을 위해 사는 사람입디다.
오구가는 출장길에서두 항상 오리기르기상식을 읽으면서 다녔구 또 늘쌍 공장을 마음속에 안구살더군요.
난 지금도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어느날 밤을 잊을수 없습니다. 그날 지배인동진 공장이 근심스러워서 온밤 잠들지 못하더군요. 밤이 깊어가자 끝내 자리를 차고 일어서는것이였습니다.
왜 그러는가고 물으니 체신소에 가봐야겠다는것이였습니다.
그때만 해두 체신소에 찾아가야만 전화를 할수 있었는데 그분은 제딸같은 어린 교환수처녀에게 사정사정하면서 온밤 전화로 공장의 생산실태를 료해합디다. 난 그때 그분이 전쟁때 입은 상처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다는 몰랐지요.
다음날 비오듯 땀을 좔좔 흘리구 헛소릴 치면서 되게 앓는걸 보구야 난 이 사람이야말로 공장을 위해 살구 또 죽을수도 있는 일군이구나 하구 생각했습니다.
예로부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있는데 난 부기사장동무가 아버지의 절반만한 사람이라도 되였으면 합니다.》
윤흥식은 일어설 때처럼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조용히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