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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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이께서는 혼자말씀처럼 나직이 뇌이시였다.

《부럽습니다. 과장동무가

《?

김태호는 일순 의아하여 두눈만 슴벅이였다. 자신을 두고 부럽다고 하시는 그이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선뜻 가늠할수가 없어 흥분된 마음으로 다음말씀을 기다렸다.

《항일선렬들이 새겨놓은 자욱을 편답하며 천금보다 귀중한 혁명의 재부를 찾는 사업이 얼마나 보람있고 영예로운 일입니까. 나도 당력사연구소에서 과장동무와 함께 일하고싶은 욕망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투사들이 헤쳐온 항일의 혈전만리, 그 천고의 밀림, 험산준령, 이름없는 언덕길에 있는 한그루의 나무, 하나의 조약돌에도 우리가 아직 다는 알지 못하는 사연들이 얼마나 많이 깃들어있겠습니까.》

그이께서는 어린시절에 익히시였던 백두밀림의 사령부귀틀집이며 대원들의 병실, 지어는 작식대의 흰김이 피여오르던 가마까지 상기하시였다.

《백두밀영의 사령부와 병실들이 있던 자리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했지요?》

《예

《찾읍시다. 아니, 꼭 찾을수 있습니다. 마음먹고 달라붙으면 밀림의 덤불속에 묻힌 하나의 숯덩이에서도 투사들의 숨결을 감수할수 있습니다.》

김태호는 자기가 편답했던 백두밀림에 력사의 귀틀집들이 송진내를 풍기며 일떠서는것만 같은 충격이 왈칵 들었다. 방금 그이께서 당력사연구소에서 일하는 자신을 두고 부럽다고 하셨지만 그이께서는 당력사연구소의 일군들보다 더 항일의 전구들을 마음속에 안고계신다는 생각과 아울러 그이의 이 수수한 편수책상우에서 아직은 자기로서 다는 알수 없는 거창하고 위대한 변혁의 설계도가 작성되고있음을 절감하였다.

《지금 우리는 항일의 혁명전통을 내세우고있는데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어떻게 옹호고수하고 어떻게 계승발전시켜야 하는가 이에 대한 명확한 해답, 옳은 방법론이 없습니다. 그러다나니 지금 간과할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있습니다.

과장동무도 느끼는바가 있을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김태호는 온몸이 굳어졌다. 이미전부터 무엇인가 석연치 않게 느껴지던것들이 그이의 근엄하신 시선을 마주하니 눈앞의 뿌연 장막이 걷히고 흑백이 명백히 갈라지는감이 들었다.

그는 결연한 어조로 대답드렸다.

《그렇습니다. 도가 넘는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당력사연구소에서 맡아 편찬하고있는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가 최근에 와서 출판발행이 뒤전에 밀리는것도 의문스럽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시였다.

《당력사연구소의 위치가 중요합니다. 절대로 곁눈을 팔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시고나서 김태호의 손을 꽉 잡아주시였다.

《과장동무, 나어린 항일혁명렬사 김금순이의 혈육도 꼭 찾아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립시다. 나도 당력사연구소의 한 성원이 되여 뛰겠습니다.》

김태호는 격앙된 흥분으로 가쁜숨을 톺으며 말씀올렸다.

《알겠습니다. 당력사연구소에서 꼭 금순이의 혈육을 찾겠습니다.》

《나도 그러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과장동무를 찾았습니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몸매가 날파람있는 김태호는 해방전 부모형제들이 손끝에서 피가 나게 한푼두푼 모아주는 돈으로 소학교까지는 가까스로 마치였으나 진급은 끝내 못하고 소년로동자가 되였다. 부령전기야금공장에서 소년로동을 하면서 왜놈 직공장과 십장들의 발씻을 물까지 덥혀서 들고다니며 천대와 멸시속에서 무지렁이처럼 짓밟히던 그는 조국이 해방되여서야 인생의 봄을 맞이하였다. 새 삶의 청신한 공기를 페부속에 탐욕스럽게 들이키면서 따스한 해살이 재글거리는 고중의 정문으로 들어선 그는 뭇사람들의 선망의 눈길을 모으며 청년사업을 시작했고 민청조직의 추천으로 입당도 하였다.

전후에 중앙당학교(당시)를 졸업하고 당력사연구소 지도원(당시)으로 임명받은 그에게 인생의 행운이라고밖에 달리 말할수 없는 계기가 여러번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1959년 항일무장투쟁전적지답사단에 망라된것이였다. 그때 갓 서른살의 그는 항일투사들과 당력사연구소 일군들뿐아니라 력사학자들, 기자, 작가들과 촬영단까지 망라하여 백수십명으로 조직된 답사단에서 서기로 활동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중국동북지방의 항일혁명전구들을 답사하면서 발굴한 항일무장투쟁자료들과 현지의 사진촬영자료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고 높은 평가를 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말없이 진지하게 탐구하고 파고들며 무척 책임적인 그를 각별히 사랑하시며 자주 현지지도를 수행하도록 하시였다.

김정일동지의 집무실을 나서서 당력사연구소로 돌아오는 김태호의 마음은 고공으로 솟구치는 물보라처럼 격정으로 높뛰였지만 달빛이 내려앉은 길로 옮겨지는 사색의 걸음은 무거웠다.

부서에 도착한 그는 즉시 과성원들의 비상협의회를 소집했다.

회의에서는 금순소녀의 혈육을 찾기 위한 방안들이 세가지방향으로 정해졌다. 우선 항일유격구초창기때 연길지방에서 활동한 투사들을 통하여 금순이와 그 집안 연고자들을 찾아내는 문제, 중국동북지방에 사람들을 파견하는 문제, 당시 출판물들을 통하여 아동단원 금순이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기 위하여 중국대사관과 총련에 련락하는 문제 등이였다. 그리고 해방직후부터 중국동북지방에 여러차례에 걸쳐 파견되였던 항일무장투쟁전적지답사단의 활동자료를 김금순의 혈육을 찾는데서 놓쳐버린 실마리가 없었는가 하는 관점에서 다시 검토해보기로 하였다. 이것은 김태호자신이 맡았다.

회의는 밤이 깊어서야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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