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 회)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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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청색비로도에 은구슬을 뿌려박은듯 뭇별들이 유난한 빛을 뿌리는 깊은 밤 당력사연구소 과장 김태호는 김정일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고요가 깃든 당중앙위원회 구내길로 바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심야의 고즈넉한 정적이 깃든 청사에서는 유독 김정일동지의 집무실에서만 전등빛이
흐르고있었다. 청사곁에서는 진록색의 살구나무잎들이 소슬한 밤바람에 춤추듯 가벼이 흐느적이고있었다.
잰걸음을 옮기던 김태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불빛이 흘러나오는 김정일동지의
집무실창문을 우러렀다.
3년전 혁명의 성산 백두산에 오르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수행할 때 김정일동지를
처음으로 만나뵈온 그는 그이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때부터 여러번 만나뵙고 가르치심을 받군 하였다. 그런데
그것은 매번 깊은 밤이였다. 그래서인지 그이의 집무실창가에 흐르는 저 불빛은 열정의 빛, 예지와 자애깊은 덕망의 빛발이
되여 김태호의 심장을 울려주군 했다. 지금도 김태호는 그 불빛을 이름할길 없는 감개에 젖어 우러렀다. 일감이 얼마나 많으면 밤을 지새시며 새벽을
맞으셔야 하는가. 그 일감들을 자기가 다는 알수 없어도 그이께서 지새시는 그밤들에 우리 당중앙은 큰 걸음을 내디디며
새날의 희망찬 려명을 맞는것이다.
그는 청사에 들어서 계단을 오르며 이제 자기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다시금 꼼꼼히 속셈해보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전화를 거시여 자신께서 당력사연구소로 나오려고 했는데 급한 일이 제기되여 그러니 좀 와줄수 없겠는가고 하시였다. 김태호는
그달음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무슨 문제로 찾으시는지는 료량할수 없었다. 당력사자료들이나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문제가 아닐가 하는 생각뿐이였다.
그런 경우를 예상하고 답변을 준비하며 집무실에 들어선 그를 얼핏 바라보신 그이께서는 《안됐습니다. 깊은 밤에 찾아서…
그런데 잠간만.》 하시더니 계속 수수한 편수책상우에 두툼히 쌓인 종이장들에 눈길을 주시였다. 그이께서 사색을
집중하시는 글은 분명 어떤 문건이 아니라 부피가 상당히 큰 원고묶음이였다. 속필을 달려 여백에 써넣으시거나 몇페지는 아예 접어두시는것을 보면서
김태호는 그것이 분명 문예작품이라고 단정했다.
아니나다를가 계속 글줄속에 예지의 열광이 빛발치는 시선을 주시며 김정일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미안합니다. 영화대본인데 사색이 집중되였을 때 마저 끝내고 봅시다.》
순간 김태호의 뇌리엔 불꽃같은것이 번뜩이였다. 그것은 그이께서 가필하시는것이 최근에 창작하고있는 예술영화의
영화문학일것이라는 예감이였다.
지금 예술영화촬영소에서 김정일동지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으며 항일무장투쟁시기를 반영한
예술영화의 창작전투가 벌어지고있다는것과 《온 가정이 떨쳐나섰다》는 제목으로는 그 주제와 내용이 선명치 못하여 보다 명백하고 적극적인 제목으로
고쳤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 영화가 바로 오늘날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예술영화 《유격대의 오형제》였다.
김태호는 그이께서 영화창작과 관련되는 항일무장투쟁시기의 어떤 구체적인 사실자료때문에 찾으신것이라고 짐작하였다.
그이의 사색을 깰세라 창문쪽의 포의자에 조심스레 앉은 그의 뇌리에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의 주요전투들에 대한 력사자료들이 기슭으로
흘러드는 잔물결처럼 갈피갈피 번져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이께서 대본을 다 보시고 그곁에 펼쳐진채로 놓여있는 두툼한 문헌을 당겨놓으시였다.
《오늘 오후시간에 수령님께서 온천휴양소에서 하신 회상교시록음을 다시 들으면서 동무들이 편찬한 문헌도 또 읽었는데
문헌편찬을 잘했습니다.》
김태호는 가슴이 뭉클했다. 근 20일간에 걸쳐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지나온 력사의 나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일이 가슴에 젖어들었다. 너무도 감동깊은 이야기들이여서 속기할 생각도 잊고 눈물만 흘릴 때가 많았는데
김정일동지께서 천금같은 그 회상교시를 한구절도 놓칠세라 록음해주시였던것이다.
《그때도 얘기했지만 당력사연구소 동무들이나 작가들이 수령님의 한평생에 대해서 모르는것이 너무 많아서 안타까워하기에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휴식을 하실데 대한 결정을 내린 기회에 그런 자리를 마련했던것입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 말이
휴식이지 낮에는 주변농촌들을 현지지도하시고 저녁마다 동무들과 마주앉아 자정이 넘도록 그렇게 무리하실줄은 생각 못했댔습니다.
편찬된 문헌에는 없지만 오늘 록음을 다시 들으니 수령님께서 말씀도중에 너무 목이 갈리시여 그 한겨울밤에 랭수를
찾으시고 시원하게 무우나 좀 깎아서 들여오라고 하실 때마다 난 막 눈물이 나군 했습니다.》
그이의 눈가에 물기가 번뜩이는것을 보며 김태호는 격정에 북받쳐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씀드렸다.
《수령님의 그 로고로 우리 당력사연구소는 아니, 우리 혁명은 천금보다 귀중한 재보를 받아안게 되였습니다. 저는
수령님께서 하신 귀중한 회상교시를 편찬하면서 이 교시문헌은 우리 혁명력사의 원전으로 길이 전해질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정일동지의 안광에서 밝은 미소가 뿜어져나왔다.
《우리 수령님의 회상교시는 혁명의 길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한 동지들, 전우들, 혁명렬사들에 대한 추억으로
일관되여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온천교시를 다시 들으며 이야기할것이 있어서 찾았습니다.
앉으시오, 앉아서 이야기합시다.》
김태호는 자리에 앉으며 사업일지를 펼쳐들고 긴장하게 그이의 말씀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