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서 장

 

승용차안의 시계는 9시 55분을 가리키고있었다.

액정현시판에 시간과 분만을 수자로 표시하고있는 시계이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부지런히 채칵거리며 그 무엇인가를 재촉하는듯한 초침소리를 분명히 듣고계시였다. 한생토록 감수하고 세여오신 그 초침소리.

자신의 전생애가 그렇게 흘러왔다. 그 한초한초에 조국의 전진, 력사의 보폭을 떠실으시고 한생을 시간에 앞서 달리며 살아오시였다. 어쩌면 자신의 한생은 시간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였는지도 모른다. 인민을 위한 시간, 조국을 위한 시간, 미래를 앞당겨오기 위한 시간

그 어떤 사상도 편견도 없이 누구에게나 꼭같이 공평하게 차례지는 시간에 사상과 의지를 재워 정의로운 위업의 편에 세워놓기 위한 투쟁이였다. 그래서 례사롭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단 한초도 없으시였다. 그이께 있어서 한초한초의 시간은 단 한방도 헛방을 놓아서는 안될 가장 책임적인 한발한발의 귀중한 총탄이였다.

하지만 지금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을 찾아가시는 이 걸음에 마음속의 초침소리를 세여가시는 김정일동지께서는 당겨와야 할 미래가 아니라 흘러간 나날에 대한 추억에로 걸음걸음을 감회깊이 싣고계시였다.

머나먼 외국방문의 길에서 돌아오시는 길로 량강도안의 여러 부문 사업을 현지에서 지도하고계신지 며칠 되였다.

어제밤에만도 겹쌓인 로고를 걱정하며 수행일군들은 물론 도당위원회 책임일군도 단 하루만이라도 쉬셔야겠다고 간절히 청원드리였다.

그이께서는 결연히 고개를 저으시며 탁상일력의 다음장을 펼치시였다.

2010년 5월 18일.

《아니요. 래일은…》 그러시다가 곁에 놓인 탁상시계를 보시며 빙긋 웃으시였다.

《아니, 벌써 오늘이구만. 0시 13분이니까. 오늘은 계획대로 혜산시내에서 일을 보겠소. 일정을 잘 맞물리면 대여섯개 단위는 돌아볼수 있을거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에 꼭 가봐야겠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그렇게 알고 다른 대상들의 일정을 맞물려주오.》

달리는 승용차의 앞시창으로 관두봉의 푸른 산줄기가 서서히 확대되여 다가온다. 관두봉의 동쪽으로 어깨겯고 솟은 성유덕산이며 부채산에 목화솜뭉치같은 흰점들이 무덕무덕 박혀있다. 며칠전 재빛구름들이 낮추 드리우면서 꽃보라처럼 날린 함박눈이다. 백두산기슭에서는 흔히 볼수 있는 천지조화였다.

그이께서는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당시)건설장을 찾으시였던 일을 다시 상기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발전소건설장 전망대에 오르신것은 오전 9시 10분이였다.

박달나무도 쩡-쩡- 갈라터지는 혹한속에서 질통을 지고 얼어터진 입술을 깨물며 한치한치 기여서 언제로 오른 청년들, 폭설로 도로가 막혀 열흘나마 간난신고끝에 쌀과 부식물을 싣고 첫 자동차가 도착했을 때 적재함을 탕탕 두드리며 공사용 자재부터 실어와야지 무슨 일본새가 이런가고 눈물을 뿌리며 일군들을 지탄했다는 그 청년들, 연연한 살점을 물어뜯는 령하 30~40°의 혹한속에서 함마를 휘두르며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는 노래를 부른 그 청년들이 그이의 시야에 꽉 차있었다. 그들모두를 한사람한사람 뜨겁게 포옹해주고싶으신 감정을 누르시며 그이께서는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그새 날 많이 욕했지? 이렇게 큰 공사를 맡겨주고 한번도 와보지 않는다고…》

공사를 책임지고있는 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일군의 얼굴로 불쑥 눈물이 좌르르 흘러내렸다. 시퍼렇게 언 자리가 이겨온 간고한 겨울의 흔적처럼 남아있는 그 얼굴에 봄시위물같이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이 왜 그렇게도 인상깊었던지.

장군님, 장군님과 저희들은 마음속 약속이 있지 않습니까. 우린 믿었습니다. 꼭 오신다고 그것도 제일 힘들 때 오실거라고 그래서그렇게이겨냈습니다.… 오늘 이렇게 오시지…》

그는 종시 어린애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마음속의 약속이라 그래, 그래. 여기 와보고싶은 생각은 간절했는데 좀처럼 시간을 낼수 없어서 오늘에야 왔소. 마음속의 약속을 지키고싶은 내 심정인들 오죽했겠나.

그이께서는 시선을 돌리시여 연록색으로 물들어가는 산발을 정차게 바라보시였다. 흰구름을 허리에 감고 장검처럼 솟은 봉우리에 《청춘을 빛나게 살자!라는 구호가 높이 솟아있었다. 자신께서 준엄한 고난의 행군시기 청년동맹의 명칭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이라고 명명해주시고 제시하신 구호였다.

이어 시선을 돌리시니 저쪽 대형속보판에 씌여진 글발들중에서 《백두의 혈통》이라는 글발이 류달리 눈길을 끌었다.

백두의 혈통!

떨어질줄 모르는 그이의 시선을 따라 그 글발을 보며 청년일군은 힘차게 말씀올렸다.

《장군님, 이 건설장은 백두산혈통을 신념으로, 의리와 량심으로 지켜가는 우리 청년들의 혁명대학입니다. 이 혈통만을 간직하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충직하게 받들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따뜻한 눈길로 청년돌격대 지휘관의 얼굴을 쓰다듬으시듯 바라보시였다.

《그래. 우리 혁명의 혈통은 백두산혈통이야. 청년들이 김정은동지의 발걸음을 따라서 바로 그걸 지키고 이어가야 돼.

불현듯 그이의 존안에서 섬광과도 같은 빛줄기가 펑긋 지나갔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나무, 전나무들이 싱그러운 숲향기를 풍기는 계곡의 기슭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이를 모신 건설장은 환희와 격정의 열파에 달아오른 심장들이 내뿜는 열기로 한껏 달아올랐다.

도당위원회 책임일군이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은데 이 동무들과 사진을 찍어주시면 좋겠다고 청원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두팔을 가슴에 모두어 얹으시고 엄혹한 겨울을 이겨낸 5월의 백두밀림이며 쾌청한 봄하늘을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날씨도 좋고 경치도 좋아서 사진을 찍는다?

잠시 동안을 두고 명상에 잠기시였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두손으로 허리를 짚으시며 낮으나 확정적인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나는 오늘 발전소건설이 어느 정도 진척되였는가를 보러 온것이 아니요. 우리 청년들, 나의 아들딸들이 항일대전의 전구에서 어떤 영웅들로 자라났는가를 보고싶어서 왔소.

날씨가 좋고 경치가 좋아서가 아니라 당의 부름을 받들고 멀고 험한 백두의 혁명대학으로 달려와서 애국충정의 구슬땀을 흘리고있는 우리 혁명의 계승자들을 위해 사진을 찍자구.

지금 달리는 승용차에서 조용히 눈을 감으신 김정일동지의 귀전에 청년돌격대 지휘관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왔다.

(백두의 혈통, 백두산혈통이란 말이지)

그래서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으로 자신의 마음이 이리도 시간을 재촉하며 달리는것인가. 우리 혁명의 혈통을 순결하게 고수하기 위하여 준엄한 투쟁을 벌리시던 40여년전의 그 나날들로

눈길을 들어 바라보시니 앞시창으로 어느덧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우렷이 다가오고있었다.

순간 아득한 세월의 공간을 넘어 수령님의 음성이 울려왔다.

《전쟁도 많이 하고 오랜 투쟁력사를 가지고있는 나라들에도 이렇게 웅장한 탑은 없습니다.

1972년 6월 4일 수령님을 모시고 저 기념탑을 찾으시였을 때 하신 말씀이였다.

그때 깊은 감회속에 탑을 보고 또 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의미심장하신 시선으로 김정일동지를 돌아보시다가 다시 어딘가 먼 하늘가로 시선을 돌리시며 나직이 뇌이시였다.

《이 탑을 세울 때 마음고생이 많았지. 그러나 반드시 이렇게 일떠세워야 할 탑이였소. 조선혁명이 그걸 요구했거던.

그렇다. 정녕 힘겨웠다. 어려웠다.

심신을 불태우며 이겨내야 했던 가혹한 진통, 간고하고 준엄했던 그 나날의 자욱자욱을 새겨안고있기에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은 김정일동지께 있어서 우리 혁명의 지나온 력사적사변을 전하는 기념비만이 아니였다. 저 탑은 자신의 사상의 탑, 신념과 의지의 탑이였다.

잊을수 없는 그 나날의 만단사연들이 그이께 깊은 추억을 불러오고있었다.

(그때 나는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지도원이였다. 그러나 얼마나 무거운 책임을 당중앙위원회 비서도 부부장도 아닌 내가 맡아나서야 했던가!

그것은 혁명의 요구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 조선로동당원, 항일빨찌산의 아들인 내가 조선혁명앞에 결단코 맡아나서야 했던 력사적사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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