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1 회)

제 5 장

사랑의 힘

2

(1)

 

오늘 저녁시간에도 김춘근당비서는 실험실에 찾아왔다.

바쁜 시간을 내서라도 며칠에 한번씩은 꼭꼭 찾아오군 하는 그였다.

한달전에는 해독작용에 좋다는 록두까지 구해서 송영숙의 집에 보내주었다.

그의 안해 리윤옥이 가져온 록두를 받은 문춘실은 너무도 황송하여 몸을 옹송그리였다.

《우리 세대주가 그러는데 기사장동지한텐 이게 좋대요. 록두묵을 해드리세요.》

눈매고운 녀의사는 반달눈에 웃음을 가득 담고 친절히 말하였다. 그리고 기사장이 조금이라도 앓으면 언제든지 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문춘실은 당비서내외의 그 마음이 하도 고마와서 그냥 혀를 찼다. 그는 딸과 사위에게 당비서의 고마움에 대하여 몇번이나 말했다.

그때마다 백상익은 감회에 젖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우리 정치위원동진 그런분이지요. 그래서 병사들이 어려움을 잊고 아버지처럼 따랐구요. 참 쉽지 않은분이지요.》

송영숙이만은 어머니와 남편이 나누는 이야기를 말없이 듣기만 하였다.

《비서동지! 바쁘실텐데 이젠 찾아오지 마십시오.》

송영숙은 당비서가 실험실에 찾아올 때마다 진정으로 당부하였다.

그러면 당비서도 매번 꼭같은 대답을 하군 하였다.

《왜요? 내가 방해됩니까? 난 지금 기사장동무의 조수역할을 수행하고있는데요.》

오늘도 실험실에 찾아온 김춘근당비서는 페설물을 옮겨담느라 끙끙거리는 송영숙을 도와 도람통도 기울여주고 유리용기를 실험탁에 올려놓아주었다. 그리고 송영숙이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하는 선풍기의 바람방향도 조절해주며 이모저모로 기사장에게 왼심을 썼다.

이윽고 그는 실험에 열중하고있는 기사장에게 방해가 될세라 발자국소리까지 죽여가며 조용히 실험실을 나섰다.

당비서가 나간 다음 송영숙은 합성반응기앞에 더 바투 다가섰다.

그는 페설물의 량을 계산하여 가성소다용액을 넣고 오래동안 화합물의 반응상태를 관찰하였다. 잠시후 염산을 주입한 다음 교반기에 넣었다.

교반기의 진동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사색의 오솔길로 한걸음 또 한걸음 옮겨가던 그는 자극적인 전화종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사색이 중단된것이 못마땅했다.

송수화기를 드니 생산부기사장 서정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퇴근시간이 퍼그나 지났는데 아직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는가고 자못 근심어린 어조로 물었다.

《집에 전화해보니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기에…》

《예, 내 좀 할일이 있어서… 지금 막 들어가려던 참이예요.》

송영숙은 당장이라도 들어가려는듯 한손으로 실험탁우에 놓인 기구들을 정돈해놓기까지 하였다.

느닷없이 상대방의 기분을 가늠해보려는듯 재게 깜박이던 그의 눈과 반짝거리는 송곳이가 떠오르며 기분이 상했다.

어디가나 목소리를 높이며 뛰여다니는것같아도 크게 일자리를 내지 못하는데다가 요진통마다 곧잘 아픕네 하며 몸을 사리군 하는 그였다.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이였다.

《두고 봐! 기딱막히는 명관이라니까.》

언젠가 수정이 꽃잎같은 입술을 실그러뜨리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수정이가 왜서 서정관이라면 죽어라고 미워하는지 이제는 리해가 되였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어요?》

송영숙은 귀중한 시간을 침해당하는것이 안타까와 약간 시답지 않은 투로 물었다.

서정관은 제꺽 그의 마음을 알아챈듯 잰 말투로 말하였다.

《다른게 아니라 배합먹이직장에 나갔던 일을 보고하려고 그럽니다.》

그는 필요이상 《보고》라는 말에 력점을 찍었다.

《오후 첫시간에 부원과 함께 사업일정대로 배합먹이직장에 나가서 원료보관상태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강냉이와 콩창고에 들어가보니 제진장치와 배풍장치가 잘돼서 그런지 원료보관상태에 이상이 없더라고 말하였다. 장황하게 늘어놓는 그의 말에서 상대방을 춰올리며 환심을 사려는 속마음을 느낀 송영숙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수고많았군요. 알겠습니다.》

그는 서정관이 또다시 길게 말을 늘어놓을가봐 은근히 걱정되였다. 제꺽 인사말을 한 다음 송수화기를 놓았다.

배합먹이직장 원료창고의 제진장치와 배풍장치는 송영숙이 공장에 온 첫해에 설비부기사장과 함께 새롭게 개조하여 설치한것이다. 그런데 원료보관상태에 대하여 보고하면서 타당치않게 제진장치니 배풍장치니 하는것은 기사장에 대한 로골적인 아첨이 아니겠는가.

송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송영숙은 서정관에게 매번 친절하지 못한 자기를 느끼였다. 별다른 일이 없는데야 좀더 상냥하게 대해줄수도 있지 않겠는가. 느닷없이 너그러움과 아량이 부족한 자기는 결코 큰 일군재목이 못된다고 뉘우쳤다.

(녀동생과는 완전히 달라. 친형제이지만 정옥동무는 얼마나…)

송영숙은 서정옥의 복스러운 얼굴을 그려보며 이렇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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