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1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11

(2)

 

잠시후 정의성은 사람들이 약간 술렁거리는것을 느끼였다. 웬일인가해서 둘러보는데 안해가 그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기사장동지가 오셨군요, 친정어머니와 함께… 저것 봐요.》

안해는 눈으로 대문쪽을 가리키였다.

돌아보니 송영숙이 어머니와 함께 유치원생인 딸애의 손목을 잡고 신랑신부에게로 다가가는것이 보였다.

정의성은 주의깊은 눈길로 그들의 일거일동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모두가 기사장네를 반기며 앞자리를 내주었다.

부모형제들과 친척, 친우들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에게 차례로 술을 붓던 신랑신부는 문춘실과 송영숙에게도 잔을 드렸다. 문춘실은 잔을 받으며 《검은 머리 파뿌리되도록 오래오래 잘살라구.》하고 말했다.

송영숙이도 잔을 받고 정어린 눈길로 신랑과 신부를 바라보았다.

《행복하세요. 그리구 앞으로도 공장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자요.》

이때 곁에 서있던 임광일이 목을 약간 빼들었다.

《기사장동지! 저 신부가 잔치한 다음날부터 우리 직장에서 관리공으루 일하겠다구 나한테 정식 제기했습니다.》

그의 말에 마당가에는 웃음꽃이 피여났다.

송영숙은 밝게 웃었다.

《난 찬성이예요. 아마 우리 봄순이를 데려가는 직장엔 복이 덩굴채 쏟아질거예요.》

사람들은 모두가 머리를 끄덕이며 기뻐하였다.

이때 록화촬영을 하던 사진사가 가족사진을 찍자고 큰소리로 말했다. 방인화가 세운 잔치날 일정에 따라 봄순은 신랑과 함께 오후 첫시간에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에 있는 시집으로 가야 했다.

그러자면 오전시간에 신부를 데리러 오는 신랑에게 큰상을 받게 하고 가족사진을 찍은 다음엔 떠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처음 신랑, 신부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찍겠습니다!》

임광일이 웃음극의 소개를 맡은것처럼 두손을 활짝 펼치며 목소리를 높이였다.

사람들은 리병우와 차수정이 신랑, 신부와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는 모습을 기쁘게 바라보았다.

수정의 요구대로 문춘실과 송영숙이도 딸 경아를 데리고 신랑신부와 사진을 찍었다.

방인화네 자매들도 아래웃방에서 끌려나와 사진기앞에 나섰다.

신랑켠 진철의 사촌형과 임광일도 사진을 찍고 동네녀인들과 직장사람들도 신랑과 신부곁에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자! 이번에는 신부의 시험호동을 기념해서 또 한장!》

종금직장장의 목소리가 또다시 크게 울렸다.

서정옥은 기다렸던듯 밝게 웃으며 잔치상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봄순이옆에 나부시 자리잡고 앉았다.

잠시후 그는 남편도 응당 함께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방금전까지 옆에 서있었는데…)

이때 방인화가 송영숙의 손을 잡아이끌었다. 송영숙도 방인화의 손에 끌려 신랑 진철의 옆에 앉았다.

《정기사도 함께 찍어야 하겠는데 어디 갔나?》

사진사가 구도를 잡으며 사진을 찍으려는데 방인화가 또다시 사람들을 둘러보며 큰소리로 물었다.

사진사가 주춤거리자 방인화는 서정옥에게 남편이 어디 갔는가고 물었다.

정옥은 머리를 갸웃거릴뿐이였다.

《나도 지금 찾고있는데…》

사람들모두가 마당가 여기저기를 살폈으나 정의성은 그림자도 없었다.

이때 임광일이 잔치일정이 늦어진다면서 사진을 그만 찍자고 말했다.

(일철이 아버진 도대체 어디 갔을가? …)

사진을 못찍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정옥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지금껏 즐거웠던 기분은 여운도 없이 가셔지고 남편에 대한 원망만이 가슴가득 차올랐다.

안해와 사람들이 집안팎을 돌면서 안타깝게 그를 찾고있을 때 정의성은 시험호동으로 가고있었다.

그는 머리를 짓수굿하고 스적스적 걸음을 옮겼다.

송영숙과 그의 어머니 문춘실을 보는 순간부터 그는 거기에 더 있고싶지 않았다. 정의성은 그들을 피하듯 슬그머니 마당을 나섰던것이다.

시험호동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눈앞에는 방금전에 띄여본 문춘실과 몇달전 길가에서 우연히 만났던 송은숙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는 문춘실과 송은숙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떳떳이 만날수 없는 그였다.

정의성의 눈앞에는 신랑, 신부를 축하해주던 송영숙의 모습도 안겨들었다. 품위있고 긍지와 자부심에 충만된 모습이였다.

(그런데 나는… 그런데 나는 왜서 그 집을 나왔는가? 왜서 쫓기운 사람처럼 서둘러 나왔는가? …)

정의성은 용렬하고 위축된 자기자신에게 벌컥벌컥 화를 내였다. 하면서도 그의 걸음은 그냥그냥 시험호동쪽으로만 향해졌다.

다음날 정의성은 오래간만에 맏형의 전화를 받았다.

《제수랑 모두 잘있나? 너의 연구도 잘되겠지?》

합성제약공장 기사인 맏형은 친근한 어조로 동생네 안부를 물었다.

머리도 쉬울겸 시간을 내여 제수와 함께 집에 놀러오라고 당부하던 그는 새 소식을 전해주었다.

다름이 아니라 구역인민병원 기술부원장인 안해와 함께 사람들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하는 새로운 상비약품을 연구하고 얼마전에 론문으로 발표했다는것이다.

처음에는 잘 믿어지지 않았다. 주부가 따로 없는 맏형의 생활을 목격하고 비정상적이라고 단정하면서 《나의것》에 기초한 앞날을 새롭게 설계하였고 그것을 정당화하였던 정의성이 아니던가!

눈앞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오락가락하던 맏형의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올랐다.

그때에는 얼마나 측은하게 보였던 맏형인가? 그런데… 그날 밤 정의성은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깊어가는 어둠과 함께 생각도 깊어가는 밤이였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