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0 회)

제 5 장

북두칠성 빛나는 밤

7

(1)

 

최진성이 6시까지 군단지휘부에 도착하라는 명령을 받은 때로부터 벌써 7시간이 흘렀다. 중대는 그 7시간에 거의 170리를 강행돌파하였다. 이제 남은 180리

병사들은 힘이 다 진해버렸다. 어제 하루밤을 숙영도 못하고 강행군으로 꼬박 새운데다가 도착하자바람으로 훈련장을 설비하느라 뛰여다니고 또 새로운 행군명령을 받다나니 풀피리까지 불면서 행군하던 영범이조차도 이제는 몇걸음에 한번씩 나무그루에 기대군 한다.

헉헉 하고 불이 당길것같던 숨소리도 이제는 더 울리지 않는다.

와작와작 락엽을 밟던 발소리도 스적스적 동안뜨게 들리고 이따금 신대원들이 엉치방아를 찧는지 덜그덩하고 군용밥통 부딪치는 소리만 잦아졌다. 이런 때면 행군에 서툰 막냉이들을 놀려주느라고 《한마리 잡았나?》하고 익살을 부리던 구대원들도 입이 다 늘어붙었다.

이런 때 중대정치지도원이 고동구호라도 한마디 웨쳐주었으면 좋겠는데 전 170리구간에서 뒤떨어지는 병사들의 무기와 배낭까지 메고 달리며 머리속에 있는 재산을 총동원하여 시도 읊고 구호도 웨치던 그에게 이제 무슨 맥이 더 남아있겠는가.

180리…

진성은 무릎우에 가로눕힌 전투가방우에 지도를 펼치고 전지불을 켜들었다. 아무리 따지고보아도 틀림없는 180리…

저 앞쪽의 벼랑을 넘어서면 50리쯤 지를수 있겠지만 평지에서도 비틀거리는 군인들을 이끌고 그 날벼랑에 붙는것은 모험이다.

지도를 보느라고 잠간 멈춰선 사이에 발밑으로 무엇이 쑥 빠져나가면서 소르르 눈이 감긴다. 온몸이 통채로 땅에 넘어지는것같다.

차라리 이렇게 넘어져 잠들어버리고말가.

14시간동안에 무기와 장구류를 갖춘 중대가 350리를 돌파하지 못했다고 해서 누가 우리를 탓하겠는가.

눈앞이 꿈속처럼 몽롱해지고 자기가 서있는지 앉아있는지 아니면 땅에 누워있는지 분간할수 없었다.

아! 이대로 몇분만 잘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아니야. … 내가 쓰러지면 온 중대가 넘어진다. 제발 견뎌주었으면… 명령받은 시간까지 가내지 못하더라도 가다가 멈춰서서는 안된다.

우리는 김철환영웅중대가 아닌가. …

중대앞에 자기의 이름을 남기고 떠나간 사람…

그 《쁠류스안경》이 살아있다면 나를 얼마나 비웃을것인가.

그는 동지들을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바치겠다고 발버둥치고있는가! 가자! 죽어도 가다가 죽자, 가다가…

진성은 이발을 욱 사려물며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자기는 아름드리 떡갈나무에 등을 기댄채 주저앉아있고 주변에는 시들해진 어깨에 배낭을 멘 중대군인들이 자기의 주위에 빙 둘러섰다.

달빛에 번들거리는 그들의 땀젖은 얼굴에는 이제 한번만 주저앉으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것같은 위구심 혹시 중대장의 입에서 행군중지구령이 내리지나 않을가 하는 어설픈 기대, 절대로 그런 명령은 없을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어떤 죄스러움같은것이 마구 뒤엉켜있었다.

최진성은 그들을 슬며시 외면하면서 저 강건너편의 낭떠러지우를 눈물이 그렁해서 올려다보았다. 전설속에서처럼 모두에게 날개가 돋치여 저 벼랑을 날아넘을수만 있다면!

그런데 저건 무엇인가! 불빛 두개가 골짜기아래서 번쩍거린다.

진성은 처음에 그 불빛을 극도의 피로가 가져온 허상일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아무리 보아도 현실로 뚜렷해지자 머리칼이 쭈볏이 일어서면서 호랑이의 눈에서 불이 쏟아져나온다더니 저밑에 범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아서인지 어흥! 하고 울부짖는 소리까지 들리는것같다.

불빛은 아물아물했지만 소리만은 점점 선명해진다.

어-응-

더-영-

무-우-두-우-

《중대장동지, 저밑에서 누가 우릴 찾고있는게 아닙니까?》

중대정치지도원이 힘겹게 묻는다. 석도진지공사가 끝나고 18군단으로 종속변경되면서 새로 온지 두달밖에 안되는 정치지도원이다. 최진성은 여느때라면 어이없는 말이라고 웃어넘길번도 했으나 막연한 정황이 준 간절한 기대와 기적이라도 믿고싶은 희망때문에 온넋을 모아 귀를 기울였다.

《동무드-을!》

분명히 사람의 목소리다. 호랑이가 아니다. 내가 잘못 들었을가? 제발 잘못들은것이 아니였으면…

진성은 흥분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중대는 이미 자기가 아니라 골짜기밑의 불빛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진-성-동-무-우! 어-어-》

자기의 이름까지 똑바로 가려들은 최진성은 누가 잡아일으키기라도 한것처럼 번쩍 일어섰다. 두다리가 쩌릿하다. 주먹이 불끈 쥐여지면서 스르르 맥이 빠져가던 심장이 화들화들 뛴다. 진성은 이제 한마디만 하고 죽기를 각오한 사람처럼 있는 힘을 다해 부르짖었다.

《여-기-요!》

그러자 이번에는 대답대신 골짜기밑에서 두개의 불덩이가 연방 껌뻑거리더니 빠앙 하고 경적소리가 울렸다.

그제서야 최진성은 그 두개의 불덩이가 자동차의 조명등빛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그러니 우리를 태워가려고 군단에서 차를 보낸것인가. 맥이 탁 풀리는것같았다. 우리 중대가 자동차의 적재함에 실려서 군단지휘부에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

최진성이 두개의 불덩이를 놓칠세라 눈을 부릅뜨고있는데 그곳에서 갑자기 쇠를 긁어내는듯한 아츠러운 소리가 터졌다. 최진성은 물론 중대의 전체 대원들도 그것이 증폭기가 시동하는 소리라는것을 알수 없었다.

이윽고 골짜기아래에서 노래소리가 울려오기 시작하였다.

야밤삼경의 산중,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개의 산봉우리로 이루어진 골짜기는 커다란 울림통이 되여버렸다.

음악이 울린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노래같기도 하고 무척 귀에 익어보이기도 한다. 병사들은 어느 한사람도 저기에서 누가 노래소리를 울리고있으며 저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모두가 한적하던 산속에 울려퍼지는 노래소리에 넋없이 귀를 모았다.

장중한 관현악이 얼마간 흐르더니 어떤 처녀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두칠성 저 멀리 별은 밝은데

    아버지장군님은 어데 계실가

    창문가에 불밝은 최고사령부

    …

 

최진성은 아까 음악이 시작될 때 왜 귀에 선것같으면서도 귀에 익어보였는지 알아차렸다. 저 노래는 얼마전에 설아가 편지에 적어보낸 노래였다.

자기들이 형상하는 가극의 주제가인데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몸소 지으신 노래라면서 가사에 수자악보까지 적어서 보내주었었다. 몇번 외워보고 가사가 좋아서 곡을 붙여 불러보기도 했다. 그러니 지금 노래를 부르고있는것은 혹시 설아가 아닐가.

설아가 지금 저밑에 와있단 말인가?

그런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가? 선률은 부드럽게 흘러가는데 가슴속에는 왜 이렇듯 세찬 격동이 소용돌이치는가!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