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8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10
(1)
다음날 아침 문춘실은 출근준비를 서두르는 딸에게 말했다.
《경아 에미야! 수정이가 그 집에 들어갔다누나.》
《그 집이라니요?》
송영숙은 의아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수의사네 집! 글쎄 제발루 찾아들어갔다지 않겠니.》
문춘실은 딸과 사위의 얼굴을 번갈아보면서 말했다.
《어머니! 그게 정말이예요? 예?》
송영숙의 큰눈은 기쁨으로 반짝이였다. 그는 뜻밖의 기쁨을 주체할 길이 없었던지 입던 옷까지 한켠에 던져버리고 다가섰다.
《언제 들어갔대요?… 누가 그러던가요? 예?》
그는 어머니가 미처 대답할 사이도 주지 않고 연방 물었다.
《이틀전에 들어갔다누나. 어제 여기 왔다갔다. 너한테 알려주자고 몇번씩이나 사무실에 찾아갔는데 없다면서 나에게 왔더구나.》
어머니의 말을 들은 송영숙은 만시름을 잊은듯 밝게 웃으며 남편과 어머니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난 믿었어요. 수정인 행복할거예요! 누구보다 행복할거예요.》
그는 진정으로 수정의 행복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리병우의 성공을 확신하였다. 리병우와 수정이만이 아니라 봄순이와 진철의 앞길에도 행복의 열매가 주렁지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아! 행복! 행복이란 무엇일가?… 행복은 사랑으로 가꾸어지는 열매가 아닐가?…)
송영숙은 가슴에 넘쳐나는 기쁨에 대하여 그리고 진정한 사랑과 행복에 대하여 자기나름으로 읊조리며 노래하고싶었다.
이윽고 그는 가슴을 들먹이며 흥분된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수정이가 새 살림을 꾸렸는데 우리도 가만있으면 안되지 않을가요?》
《그럼! 부모형제들을 대신해서 우리 할바를 해야지. 내 그래서 토론을 하려구 했다.》
어머니도 그 말을 기다린듯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모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갑자기 궁리가 떠오르지 않아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았다.
그들의 말을 듣고있던 백상익이 먼저 처형네가 가져다준 자기의 새옷감을 수의사에게 가져다주라고 하였다.
《그게 좋겠군요. 그 옷감으로 멋진 신랑복을 지어주자요.》
송영숙이 제꺽 남편의 생각을 지지해주었다.
드디여 세사람의 생각은 하나의 곬으로 이어져갔다. 그들은 송영숙이 평양에 출장갔다가 사가지고온 새 그릇일식과 어머니의 생일을 기념하여 언니가 가져다준 고급꽃담요와 새 옷가지들을 선물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난 수정이한테 주는건 뭐든 아깝지 않다.》
이불장안에서 멋지게 포장된 고급꽃담요를 내려놓으며 문춘실이 말하였다.
《나두 그래요. 그 애가 행복할수 있다면 난…》
웃방에 올라가 남편의 옷감과 수정에게 줄 색갈고운 세타를 안고 내려온 송영숙은 남편을 쳐다보며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참 오늘 저녁엔 일찍 들어오겠니? 수정이네 집에 같이 가야 할텐데…》
문춘실은 딸이 여느날처럼 자정이 넘어서 들어오면 어쩌나 근심하는 눈치였다.
송영숙은 눈길을 떨구며 약간 주춤거리였다.
(언니네가 왔을 때에도 많은 시간을 잃었는데… 오늘 또.)
남편은 어느새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듯 말했다.
《동무를 위한 일인데 어쩌겠소? 아무리 바빠도 오늘 짬시간을 내서 어머니와 함께 찾아가보오. 나 대신 인사도 전해주고. 꼭 그렇게 하오.》
남편의 말을 듣고서야 송영숙은 머리를 끄덕이며 저녁에 수정의 집으로 함께 가자고 어머니와 약속했다.
《할머니! 나두 큰엄마네 집 갈래.》
어른들이 나누는 말을 가만히 듣고있던 경아가 감질이 나서 달싹거렸다. 문춘실은 기분이 떠서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그래그래, 너두 가구 엄마두 가구 은아두 업구 가자. 좋지?》
할머니의 말에 경아는 깡충깡충 토끼뜀을 하였다.
그날 저녁 송영숙은 어머니와 함께 두 딸을 데리고 수정의 집으로 갔다. 거기에는 가공직장장 방인화도 와있었다.
기사장네 식구들이 들어서자 리병우와 수정은 물론이고 봄순이와 방인화는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문춘실과 송영숙은 그들모두와 따뜻이 인사를 나누고 한집안식구처럼 방안에 둘러앉았다.
문춘실에게는 리병우가 첫눈에도 사람이 좋고 점잖아보였다. 수정이와 잘 어울릴것이라는 생각에 흐뭇한 웃음을 머금었다.
송영숙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봄순이와 수정의 태도를 은근히 지켜보았다.
방인화의 거듭되는 훈시질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새 엄마를 따뜻이 대해야겠다고 결심하였는지 봄순은 수정에게 생글방글 웃으며 무엇이라고 소곤거렸다.
그는 경아를 안고 머리를 다시 빗어주며 다정히 말도 주고받았다.
집안에 흐르는 따뜻한 분위기는 송영숙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들의 성의가 담겨진 기념품들을 내놓자 방안에는 환성과 감탄이 터져올랐다. 울긋불긋한 옷감들과 꽃담요며 그릇일식을 만져보고 쓸어보며 방인화는 끌끌 혀를 찼다.
수정이만은 입을 꼭 다물고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음 내키는대로 꺼리낌없고 신랄하게 움직여지던 그의 혀가 갑자기 굳어져버린것같았다.
봄순이도 얌전하게 앉아있었다.
《수의사!》
문춘실이 리병우를 쳐다보았다. 그는 옆에 앉은 수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 수정인 내 친딸이나 같다우. 처녀때부터 맘씨곱구 똑똑했네.
좋은 색시 데리구 잘살게. 그리구 이제부턴 날 가시에미루 생각하구 우리 집에랑 같이 다니라구. 응?》
친혈육의 정이 마디마디 슴배인 그의 말에 리병우는 눈만 슴뻑거렸다.
얼마후 그들은 다같이 모여앉은김에 봄순이의 잔치날도 의논하였다.
계절이 좋은 10월 보름날에 잔치를 하는것이 어떤가고 묻는 방인화의 말에 모두가 좋다고 찬성을 표시했다.
문춘실은 봄순이 잔치날에도 온 집안식구들이 함께 오겠다고 말하여 모두의 마음을 다시금 즐겁게 해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을 바래우려고 리병우네 식구들이 모두 마당에 나왔을 때 송영숙은 수정의 손을 꼭 잡고 속삭이듯 말했다.
《수정아! 축하한다. 난 너에게 꼭 이런 날이 있으리라구 믿었어. 행복해라. 응?》
그의 크고 그윽한 눈동자에 진정의 물결이 찰랑이고있었다.
수정은 말없이 물기어린 눈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아! 고마운 내 동무! 내 너를 위해서라도 행복하마. …)
그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그들은 한동안 따뜻이 잡은 손을 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