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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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는 가금업에 대한 일반지식밖에 없는 남편에게 먹성인자가 무엇인가에 대해 통속적으로 하나하나 말해주었다. 그리고 두달전에 공장첨가제와 수입첨가제의 비교측정때 있은 일에 대해서와 자기가 먹성인자를 연구하려고 결심한데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난 공장사람 누구도 내가 먹성인자를 연구한다는걸 모르게 하자는거예요. 지금껏 내가 연구한 모든걸 남모르게 넘겨준것처럼 이번 연구도 그렇게 하려구 해요. 그래서 화학공장 페설물로…》
송영숙은 실험실을 꾸리던 일이며 설비들을 하나하나 마련하던 일까지 자세히 말해주었다. 하지만 비린내가 나는 실험용페설물이 인체에 몹시 해롭다는 말만은 숨기였다.
독성과 발암성이 센데다가 휘발성이 강해서 인체에 나쁜 영향을 주는 페설물과 씨름을 하는줄 안다면 아무리 너그럽고 관대한 남편이라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송영숙은 먹성인자를 찾을 때까지 그것만은 절대비밀에 붙이리라 다시금 마음다지였다.
《그러니 당신은 또 〈요정들이 사는 집〉을 꾸려놓았구만?》
백상익은 정어린 눈길로 안해를 건너다보았다.
그는 잊을수 없는 닭공장의 합숙방을 그려보며 싱긋이 웃었다. 그럴수록 큰 공장의 생산과 기술지도를 하면서 짬시간을 내여 첨가제연구를 도와나선 안해가 돋보이기까지 했다. 한편으로 건강이 념려스러웠다.
《그래 힘들지 않소?》
남편의 물음에 송영숙은 웃음을 머금고 머리를 저었다. 사실 힘들었다. 너무도 피곤하고 힘에 겨워 다문 며칠만이라도 푹 쉬고싶었다. 그러나 남편에게 근심을 주고싶지 않았다.
《여보!》
그는 하많은 생각이 담겨진 눈길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난 이따금 보통가정주부들처럼 살고싶은 생각이 들군 해요. 당신과 아이들만을 위해 사는 그런 생활이 몹시 그리워져요.
출근길에 오르는 당신을 바래드리고 저녁이면 내 손으로 지은 저녁식사를 마주하고 앉아 당신과 아이들에게 권하기도 하고…
그런데 나한텐 그런 생활이 통 차례지지 않는군요.》
그의 얼굴에는 진정어린 사죄와 안타까움이 담겨져있었다.
《어머니도 언니도 모두 나에게 남편에게 무관심하다구 충고하는군요. 내가 당신에게 너무나도 성의없구 살뜰하지 못하다구요.》
송영숙은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눈길을 떨구었다.
그는 남편의 얼굴에 장난기어린 웃음이 스쳐지나는것을 보지 못했다.
백상익은 인츰 시치미를 떼며 안해의 말꼬리를 이었다.
《사실 그뿐이 아니지. 무례하구, 매정하구, 거칠구 또 구박과 천대를 일삼고… 안그렇소?》
롱담기어린 남편의 말에 송영숙은 그만 호호호 소리내여 웃었다.
안해가 웃음을 터뜨리자 백상익도 싱긋싱긋 웃었다.
이윽고 송영숙은 남편을 흘겨보았다.
《난 진정을 말하는데 당신은 그저 롱담이군요.》
이어 그는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비판한걸 내 꼭 고칠테니 먹성인자를 찾을 때까지만 절 리해해주세요. 내 꼭…》
그는 지금껏 남편과 아이들에게 못다준 사랑과 정을 몇배로 꼭 갚으리라 마음다지며 따뜻이 말했다.
이번에는 남편쪽에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시까스르듯 물었다.
《그러니 먹성인자를 찾을 때까지 려염집아낙네의 그 리상적인 생활을 미루겠다는거요? 그동안에는 지금처럼 계속 무례하구 매정하게 생활하겠다는거구만? 응?》
남편의 롱담에 송영숙은 또다시 호호 소리내여 웃었다.
백상익도 제가 한 말이 우스운지 싱글벙글 웃었다. 이윽고 웃음을 거두고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여보! 당신은 결코 한가정의 울타리안에서만 행복을 찾는 그런 녀성이 아니요.
당신은 뜨겁게 사랑하구 또 무섭게 증오할줄 아는 녀성이지.
크고 아름답구 숭고한것을 위해 사랑을 깡그리 다 바치는 녀성이거던. 안 그렇소?》
남편의 눈가에 담겨진 사랑과 신뢰의 정을 읽은 송영숙의 마음은 뭉클하였다. 그는 후더워지는 마음으로 조용히 불렀다.
《여보!》
다음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아래방에 누웠던 문춘실은 웃방에서 들려오는 딸과 사위의 말소리며 웃음소리를 듣고 씁쓸하게 입을 다셨다. 그냥 웃으며 소곤거리는 그들의 세계가 터무니없게 생각되였다.
그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저들끼리 좋다는데 내가 무슨…)
그는 두 손녀들쪽으로 끙 돌아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