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1 회)

제 5 장

북두칠성 빛나는 밤

3

(1)

 

설아는 자꾸만 눈앞이 흐리여 일직선으로 건너간 악보의 오선이 물결처럼 출렁거리고 가사의 글자들이 살아움직이듯이 흔들거렸다.

피아노앞에 마주앉은 라국작곡가가 몇번이나 전주선률을 반복하여 두드렸지만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시작을 떼면 한개의 악구를 넘어서지 못하고 또 목이 메여올랐다.

성미가 급한 장섭연출가는 노래의 감정세계를 이끌어내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다해보았지만 끝내 설아의 마음을 진정시켜내지 못하고 의자우에 벌렁 주저앉아 줄담배만 피운다. 차라리 이전처럼 관료주의라도 부리고 욕이라도 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중 손탁이 세다는 장섭연출가까지 도리머리를 젓고 나앉으니 이제는 어쩐단 말인가.

흐릿해진 망막에는 악보의 맨 웃쪽에 굵은 연필로 활달하게 흘려쓴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이라는 열세개의 글자만이 또렷이 안겨올뿐 그아래의것은 도무지 읽어낼수가 없었다.

이 악보는 오늘 새벽에 김량남지도원이 가지고온것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밤을 꼬박 새워 지으신 노래라고 하면서 아침에 이 악보를 자기에게 넘겨주고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모시고있는 만수대로 나가셨는데 한시간쯤 있다가 오실것같으니 빨리 노래형상을 해놓아야 하겠다고 하였다. 시간은 가는데 아직 이러고있으니 원체 성미가 누긋한 라국도 어지간히 초조해져서 말은 못하고 피아노건반을 두드리는 소리만 점점 격해졌다.

그러나 설아의 눈앞에는 이틀전에 대극장에 나오셨던 김정일동지의 존안만이 계속 떠오른다.

설아가 가극의 절정부분인 태백산병동장면에서 감정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는 보고를 받으신 그이께서는 대극장에 나오시여 훈련중에 있던 설아와 창작가들을 대기실에 부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감정에 턱이 져서 넘어가지 않는 부분을 다스리느라고 어지간히 맥을 뽑은 라국작곡가와 장섭연출가를 곁에 앉히고 머리를 푹 수그린채 서있는 설아에게 다정히 물으시였다.

《설아동무, 이 태백산병동부분에서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한번 말해볼수 있겠소?》

설아는 연출가의 입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튀여나오던 말들을 상기하면서 조용히 말씀드렸다.

《주인공은 부상병들을 이끌고 온갖 고생을 다하면서 후방병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병원은 2호지점으로 이동하고 그렇게 만나고싶던 전우들은 멀리로… 이제 또 얼마나 먼길을 가야 할지 또 어떤 고생을 더 겪어야 할지 처녀는 막막하기만 합니다. 부상병들은 지치고 주인공도 지쳤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게 웁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만하면 설아동무가 주인공의 심리를 잘 알고있는것같다고 하시면서 그렇다면 동무는 이때까지 살면서 어떤 때 제일 안타깝고 속상하던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저… 아버지를 찾아헤맬 때…》

연출가와 작곡가가 고개를 틀며 락심한 표정을 지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손에 쥐시였던 악보로 책상을 가볍게 내리치시며 《바로 그거요!》하고 설아의 말을 긍정해주시였다.

연출가와 작곡가가 데꾼해진 눈으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사람이란 정이 그리울 때 웁니다. 주인공도 바로 정이 그리워 울고있소. 어떤 정인가? 애인에 대한 정? 부모에 대한 정? 동지들에 대한 정인가? 그보다 주인공은 어버이수령님의 정이 그리워 울고있소. 여기서 주인공은 개별적군인이 아니라 후퇴의 길에 오른 인민군전사들의 심정을 대변한 전형적감정의 소유자이기때문에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내 이전에 최현동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나 하겠는데바로 동무가 형상하는 그 원형에 대한 이야기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 있었던 일을 방불하게 그려보이듯이 말씀을 이어가시였다. 연출가도 작곡가도 설아도 숨을 죽이고 그이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였다.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 올랐던 최현동지는 그만 열병으로 앓아눕게 되였다. 설상가상으로 적들의 폭격에 군마까지 잃게 되였다. 지금 총정치국 부국장을 하는 로일수동무가 그때 최현동지의 사단에서 문화부대대장을 했는데 어디 가서 암소 한마리를 얻어왔다. 어떤 사람들은 군단장을 소잔등에야 차마 어떻게 태우겠는가고 했지만 최현동지는 수령님을 찾아가는 길인데 소잔등이면 어떻고 말잔등이면 어떻단 말인가. 그저 끝까지 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

《…한다하는 백전로장이 소잔등에 오르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간고했으니 그 고생을 더 말해 뭘하겠습니까? 하지만 고생, 고생해두 최현동지는 수령님 생각이 날 때가 제일 뻐근했다고 합니다. 그때가 어떤 때였는가 하면 리승엽이가 최현동지를 찾아와서 김일성장군이 압록강을 넘어갔다고 허튼소리를 줴칠 때인데최현동지는 그자의 말을 들으면서 절대로 그럴수 없다, 이 최현이 미혼진밀영에서 죽을 병에 걸려 넘어졌을 때도 생사를 돌보지 않고 찾아오셨던 장군님이신데 나를 적구에 남겨두고 그냥 가실분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다 가도 김일성장군님만은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계실거다, 소잔등에 엎어져서라두 내 기어이 간다 하구 북행길을 멈추지 않았다는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야기에 푹 심취되여버린 연출가와 작곡가를 둘러보시고나서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때 2군단출신인 가극의 원형이 한번은 최현동지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군단장동진 아무리 봐야 지도도 안보고 라침판도 보는것같지 않은데 우리가 장군님께서 계신 곳으로 제대로 가긴 가는가, 최현동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꿀꺽소리말고 북극성만 바라보고 걸어라, 그 별이 최고사령부창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자 간호원은 북극성을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저 북극성이 최고사령부창문이라면 그 주변에 반짝반짝 빛나는 북두칠성은 꼭 우리들같다고 하면서 기뻐하는데 그 모습을 보니 저 어린 처녀가 장군님가까이에 얼마나 빨리 가고싶으면 그런 말을 할가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더라고 한다. …

《보시오, 그의 말은 결국…》

문득 김정일동지께서 말씀을 멈추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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