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8 회)

제 5 장

북두칠성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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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튿날에도 리철봉은 또다시 휴양소장과 함께 2층집으로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최현 민족보위상대신 오백룡군단장과 항일투사 김자린이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하루이틀이 지나서야 리철봉은 휴양소에 갈 때 학습장을 한배낭 가져가라던 임철정치위원의 말을 상기하였고 항일투사들과의 련이은 상봉이 우연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다음날에는 한익수, 그 다음날에는 오진우…

근 20일이나 되는 휴양기간에 숱한 항일투사들이 휴양소에 찾아와 밤마다 리철봉을 마주앉혀놓고 빨찌산시절의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어떤 투사들은 며칠씩 틀고앉아 리철봉과 낚시질을 함께 다니기도 하였지만 오진우와 같은 현역장령들은 한밤중에 왔다가 새벽에 차를 타고 휴양소정문을 나서기도 하였다.

휴양이 끝나던 날 리철봉은 뜻밖에도 어버이수령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당중앙위원회 집무실에서 리철봉을 반갑게 맞이하신 수령님께서는 그동안 휴식을 잘하였는가고 따뜻이 물으시였다.

《난생처음 가족들과 함께 푹 쉬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웃으시였다.

《휴식은 무슨 휴식을 잘했겠소? 옛말얘기를 듣느라고 매일 밤을 새웠다던데?》

리철봉은 얼굴을 붉히며 씩씩하게 대답하였다.

《전 이번에 빨찌산대학을 하나 졸업한것같습니다. 지금같아서는 해군보다 륙군에 가서 한번 본때있게 싸워보고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수령님께서는 대견한 시선으로 리철봉의 다부진 어깨를 바라보시다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시였다.

《그런 생각까지 했다니 우리 동무들이 강의를 괜찮게 한 모양이구만. 사실 내가 오늘 동무를 부른건…》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차렷자세로 서있는 리철봉에게 의자를 권하시고 자신께서도 가까이에 마주앉으시였다.

《얼마전에 우리는 조국통일대전에서 한몫 단단히 수행해야 할 새로운 군단을 조직하였소. 오백룡동무가 군단장으로 가고 21군단에서 정치위원을 하던 리오송동무를 부군단장으로 보냈지. 리오송동무는 어릴 때 다리를 다쳐서 그런 부대에는 적합치 않은데 오백룡동무가 하도 떼를 쓰기에 할수없이 보냈소. 리오송이 21군단에 나가있으면서 예비대소문을 어떻게 냈는지 오백룡이 놓자고 하지 않거던. 하지만 오백룡동무자신도 이제는 군인들과 함께 산발을 타고다니기가 힘에 부칠거요.》

수령님의 안광에는 그윽한 기운이 어리시였다.

《그래서 요즘 몇달동안 최현동무랑 토론을 많이 했소. 젊고 쟁쟁한 새세대 지휘관을 한명 골라서 교대를 해야겠는데 누구를 보내면 좋겠는가 많이 생각하다가 동무를 보내기로 했소. 어떻소? 한번 해볼 자신이 있소?》

리철봉은 그들먹한 가슴을 안고 벌떡 일어서며 수령님께서 명령하시면 무조건 집행하겠다고 힘있게 보고드리였다.

《앉소, 앉으라구. 내가 동무를 추천한것은 동무의 아버지가 화룡유격대 정치위원하던 빨찌산출신이라는것도 있지만 이번 군사연습때 동무가 해상전투조법을 우리 당의 군사전략전술사상에 맞게 아주 잘 조직했기때문이요. 동무 아버지가 전사하기 전에 왜놈들을 쳐부시는 쇠몽둥이가 되라고 철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이번에 그 쇠몽둥이를 정말 잘 휘둘렀거던! 힘들게 생각할게 없소. 앞으로도 그렇게 당의 지도를 받으면서 당정책의 요구대로 부대를 강화하면 되는게요.》

수령님께서는 이번에 동무를 18군단장으로 임명할 결심은 내가 했지만 그 준비사업은 모두 김정일동지가 했다고 하시며 동무를 휴양소에 보내놓고 항일투사들로 집중강습을 조직한것도 다 그의 발기라고 하시였다.

《일과표와 강의안도 모두 김정일동무가 직접 짰소. 아마 군단장사업에 큰 도움이 될거요.》

리철봉은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며 싸락눈이 흩날리던 두해전 겨울을 생각했다. 해군사령부 참모장으로 임명된 자기에게 앞으로 손잡고 수령님의 뜻을 잘 받들자고 당부하시던 김정일동지

그날로부터 오늘까지 힘이 모자랄세라, 지혜가 모자랄세라, 정이 모자랄세라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분…

그이께서 안고계시는 혁명의 중하를 생각할 때 티끌에도 비기지 못할 평범한 한 전사를 위해 그이께서 바쳐오신 심혈과 로고는 그 얼마나 크고 세심하시였던가!

리철봉이 수령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무실을 나서는데 아래층복도에서 기다리고계시던 김정일동지께서 반색을 하며 마주 올라오시였다.

《군단장동무, 축하합니다!》

리철봉은 그이를 뵈옵는 순간 목이 꽉 메여올라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으로부터 중요한 직무를 받아안은 철봉동무를 축하하여 선물을 마련했는데 마음에 들겠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그를 마당으로 이끌어가시였다. 금방 눈을 쳐낸 마당에는 푸른 윤기가 도는 《벤즈》승용차 한대가 서있었다.

《동무가 이제부터 줄창 험한 길을 달려다녀야 하겠기에 내가 며칠 운전해보면서 차상태도 검열해보고 질도 좀 들여놓았소. 그만하면 차가 괜찮은것같습니다. 차열쇠는 운전사동무에게 넘겨주었소.》

그이의 말씀을 듣고 다시 보니 승용차의 앞좌석에는 벌써 자기와 함께 올라온 운전사가 시뚝해서 앉아있었다. 새 승용차에 앉은 기분이 여간만 흡족하지 않은것같았다. 리철봉은 일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배려부터 돌려주시여 정말 고맙다고 말씀드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전달은 자신께서 하지만 이것은 어버이수령님의 배려라고 하시고나서 리철봉에게 물으시였다.

《아주머니의 건강은 좀 어떻습니까?》

《예, 그때 보내주신 사향노루가 약이 되였는지 이제는 손발이 저리다는 말도 없고 찬물빨래도 곧잘 합니다. 이번에 가족휴양까지 갔다와서 혈색이 더 좋아진것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리철봉을 정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시였다.

《아무리 병이 호전되였다고 해도 찬물로 빨래를 하는것은 주의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에 사향노루가 그렇게 흔하지도 않은데 아주머니의 병이 재발하면 그땐 네팔에 가서 사향을 구해오겠습니까?》

새벽공기처럼 싱싱한 그이의 웃음소리가 당중앙위원회마당을 쩡쩡 울리였다. 리철봉은 눈물이 쿡 솟아났다.

아니다! 그이께선 이 세상 한끝, 하늘에라도 다시 올라가실것이다.

동지에 대한 사랑을 천품으로 안고계시는 그이, 동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보다 몇백배로 더 크게 여기시며 잠 못드시는 그이, 백발의 로장들도 그 가까이에 서기만 하면 어린애들처럼 동심에 잠기게 하는 인자하고 자애로운 품…

때문에 이분을 잘 받들어모시자면 일도 잘해야 하지만 그이께서 걱정하시지 않도록 앓지도 말아야 한다.

리철봉이 축축해오는 눈굽을 손끝으로 찍어내는데 그이께서 미소를 거두고 정색을 하시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이것은 그사이 내가 혼자 좀 생각해본것인데… 철봉동무의 아들말입니다.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는것이 어떻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철봉은 놀랐다. 량부모가 펀펀히 눈을 뜨고있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다니?! 그이께서는 의아해하는 철봉을 미소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다정하게 말씀하시였다.

《이제 철봉동무는 군단지휘부도 새로 짓고 군관들의 살림집도 꾸리고 또 훈련때문에 줄창 산속을 돌아다녀야 할것입니다. 아주머니도 무척 바쁘고 힘이 들것입니다. 그러면 또 몇해동안 아이를 친정집에 맡겨두는수밖에 없겠는데 그렇게 되면 자식을 교양하고 단련시키는데 지장을 받게 됩니다. 철봉동무만 다른것이 없다면 그렇게 합시다. 앞으로 성호가 훌륭하게 자라서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되면 그땐 나에게 귀를 잡고 절을 하지 않는가 두고보시오.》

이렇게 되여 리철봉은 성호를 만경대혁명학원으로 보내고 18군단지휘부가 자리잡은 북천으로 떠나게 된것이였다.

군단지휘부가 가까와올수록 리철봉은 자꾸만 숨이 가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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