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7 회)

제 5 장

북두칠성 빛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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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길…

우중충한 숲속길을 따라 한대의 승용차가 달리고있었다.

수수백년을 자란 천고밀림의 이깔나무들이 전조등빛에 끝없이 다가들었다가는 멀어지고 또 다가들고 멀어진다.

이 시각 리철봉에게는 빽빽한 숲의 일목일목들이 살아숨쉬는 병사들처럼 느껴지였다. 그는 병립대형으로 정렬한 대오의 한복판을 사열하는 심정으로 키높이 자란 거목들을 세여보았다.

둘, 넷, 여섯… 스물… 한개 소대…

하나, 둘, 셋… 한개 중대…

이렇게 개개의 나무를 세여 분대를, 분대를 묶어 소대를, 소대를 묶어 중대를 만들어보고 대대를 묶어 려단을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한동안이나 차를 타고왔는데 아직도 군단을 다 만들지 못했다. 도대체 나에게 맡겨진 군단이라는 대오는 얼마나 거대한가!

리철봉은 도무지 세여낼수 없을것만 같은 밀림의 거창함에 지그시 위압되였다. 해군사령부 참모장이라는 직무도 아름찼던 자기의 어깨에 한개 군단의 지휘관이라는 책임이 지워진것이 지금도 꿈만 같았다.

지금으로부터 두달전, 리철봉은 임철정치위원으로부터 류다른 지시를 받았다. 안해와 아들을 모두 데리고 민족보위성 휴양소에 가되 학습장을 한배낭쯤 넣고 가라는것이였다. 처음에는 휴식을 가서도 헛시간을 보내지 말고 짬짬이 학습을 하라는 뜻으로 들었다. 하지만 정작 휴양소에 도착해보니 《짬》이라고는 도무지 찾을수 없는 일과표가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6시 기상…

아침운동 및 산보…

호수가에서의 낚시질…

점심식사후에는 등산…

오후에는 영화관람…

19시 저녁식사…

휴양소장이라는 직무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만큼 까다로와보이는 그곳 책임자는 이상의 일과를 1분 1초도 어겨서는 안되겠다고 그루를 박으면서 저녁식사후에는 가족들을 휴식시키고 따로 해야 할 사업이 있다고 하는것이였다.

휴양소의 첫 하루가 꿈같이 흘러갔다.

남편과 늘 헤여져살다싶이하던 박금월이나 외가집에 가있던 성호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있게 된것만도 너무 좋아서 어쩔줄을 몰라했지만 리철봉은 온 하루를 뜨아한 기분으로 보내였다. 저녁식사후의 사업이란 도대체 무엇일가 하는 의혹이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았던것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저녁식사가 끝났을 때 휴양소장이 리철봉을 찾아왔다.

리철봉은 휴양소장을 따라 자기 가족이 든 호동과 약간 떨어진 2층짜리건물로 들어갔다. 거기서는 뜻밖에도 최현 민족보위상과 김철호가 그를 맞아주었다.

내외가 함께 와있는것을 보면 그들도 가족휴양을 온것이 분명한데 어째서 하루종일 한번도 보지 못했는지 알수 없었다. 휴양소구내는 그리 넓지도 않은데…

의문을 풀지 못하고 몸이 굳어진 리철봉을 불러앉힌 최현은 안해의 건강은 좀 좋아졌는가, 아들애가 좋아하는가, 휴식은 어떻게 했는가를 두루 묻고나서 본론에 들어갔다.

《철봉이는 군복을 입은 후로 여태 해군에만 있었지?》

《그렇습니다.》

《땅우에선 별로 싸워보지 못했지?》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지형이라는건 말이요, 사람의 얼굴처럼 간데마다 제마끔인데 그래서 지형을 리용한 싸움법도 천태만상이야. 어떤 의미에선 차지한 지형을 누가 먼저 파악하고 그것을 유리하게 리용하는 전술을 누가 먼저 쓰는가에 따라 적아간의 승패가 결정된다고도 할수 있지.》

리철봉은 《민족보위상동지, 제가 해군사령부 참모장이라는것을 잊으신게 아닙니까? 지상전에 대한 강의는 왜 갑자기…》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진지한 그의 눈길앞에 그런 말을 꺼내기가 서슴어졌다. 최현은 리철봉의 마음속을 들여다본것처럼 이야기했다.

《난 동무에게 무슨 전술강의를 하자는건 아니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이 최현이 죽다 살아난 이야기를 하나 하자고 그래. 어떻소? 휴양소의 달밤에 옛말을 듣는것두 괜찮지?》

리철봉은 영문도 모르고 앉아서 최현의 《옛말》을 듣게 되였다.

《…

그게 아마 간삼봉전투가 있은 직후인데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밀림속으로 행군하다가 적들과 맞다들리게 되였소. 캄캄한 밤중인데 수령님을 호위해야 한다는 생각만 앞세우면서 맞다든 적들을 냅다 쳐나가다보니 우리 중대는 적들의 포위에 들게 되였지. 앞에도 적이고 옆에도 적이고 뒤에도 적이고… 사령부가 자리잡은 언덕은 수백m나 떨어져있고 내곁에는 열댓명의 대원들밖에 없는데 거의 수백명이나 되는 적들이 악악소리를 지르면서 포위환을 좁혀들었소. 무서움이라는것을 모르고 싸워온 나였지만 그때는 정말 눈앞이 아찔했소. 틀림없이 여기서 죽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지. 그런데 이때 기적이 일어났소. 사령부가 자리잡은 곳에서 기관총소리가 울리더니 그렇게 악을 쓰며 덤벼들던 놈들이 모두 잠잠해졌단 말이요. 우리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까투리들처럼 땅에 대가리를 박은채 쳐들지 못하고있는 적들의 등을 밟으면서 포위환을 뚫고나왔소. …》

최현이 여기까지 이야기했을 때 곁에 앉아있던 김철호가 뒤를 달았다.

《…그때 난 사령관동지곁에 있었는데 최현동지가 포위속에 든것이 한눈에 보이더군요. 곁에 섰던 대원들은 막 당황해서 어쩔줄을 몰라했지요. 최현동지를 구원하러 가자고 해도 우선 거리가 너무 멀어서 달려가는 사이면 끝장이 날판이고 또 시간이 있다고 해도 사령부의 력량이 너무나 적었어요. 그런데 이때 사령관동지께서 기관총수에게 명령하시더군요. 최현동지네 머리우에 대고 기관총을 냅다 쏘라고 말이예요. 처음에 우리도 그렇고 기관총수도 그 말씀의 뜻을 몰라 한순간 머밋거린것같아요. 그러자 사령관동지께서는 직접 기관총을 잡고 최현동지네 대원들너머로 몰사격을 퍼부으셨어요. 그랬더니 어떻게 된 일인지 아군의 앞뒤에 몰켜있던 적들이 모두 땅바닥에 쓰러지더군요. 정말 신기한 일이였어요…》

…원래 수령님께선 국내진공작전을 구상하실 때 대부대를 이끌고 적들의 본거지인 혜산을 치기로 작정하셨다. 그런데 박달로부터 이 최현이 속한 4사가 무산쪽으로 진공했다가 강물이 불어나 압록강을 건느지 못하고 베개봉쪽에서 적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리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 4사를 지휘하던 주수동이 전사하고 내가 부대를 지휘했는데 그 싸움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4사의 꽃이였던 리경희까지 잃었다. 수령님께서는 즉시 부대를 베개봉과 가까운 보천보로 돌리시고 우리를 위기에서 구원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앞에 가면 어버이수령님께서 이 최현이를 구원하러 사선을 헤치고나오시는 모습을 뵈옵는것같아 얼굴을 들지 못한다. …

최현과 김철호의 빨찌산이야기는 밤이 새도록 계속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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