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0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6
(2)
그날 아침 오리에게 먹일 물고기를 잡기 위해 호수가로 나갔다가 쪽배를 타고 오리사로 돌아오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먹이시간을 맞추어 부지런히 노를 저어가던 그 젊은이는 오리사앞에 낯선 사람들이 서있는것을 띄여보고 머리를 기웃거렸다.
(이 아침에 무슨 사람들일가? …)
쪽배가 기슭에 거의 닿을무렵에야 목장일군들에게 말씀하시는분이
《
우리 인민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알을 먹이시려고 여기 호수가에 오리공장을 세워주신
《최고…
쪽배가 기슭에 닿기도 전에 젊은 병사는 노대를 물속에 쿡 박고 배에서 훌쩍 뛰여내렸다.
그는 찬물에 바지가랭이가 젖는것도 아랑곳않고 엎어질듯 달려갔다. 젊은 그 병사를 보신
《오리에게 먹일 물고기를 잡으려고 저기 호수에 나갔댔습니다.》
병사의 힘찬 대답을 들으신
그러시면서 앞으로 더 많은 오리를 길러 이 호수가를 오리바다로 만들자고 고무해주시였다. …
《이 나무가 바로 그날 젊은 병사가 물속에 박아놓은 그 노대랍니다.》
백상익은 아름드리 버드나무를 가리키며 말했다.
조광문은 크게 머리를 끄덕이며 사연깊은 버드나무의 두툴진 줄기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추연한 눈길로 잎새며 줄기도 바라보았다.
《그날 그 병사의 아들은 지금 여기 호수건너 종금직장 직장장이예요. 전쟁로병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직장장이 되였답니다.》
송영숙의 말에 조광문은 다시금 머리를 끄덕이였다. 력사가 오래고 유서깊은 고장이니 사연도 많고 생각도 깊어진다고 말하였다.
조금 가벼우면서도 쉽게 흥분하군 하는 조광문은 문득 종금직장에 들어가볼수 없는가고 물었다.
송영숙은 빙긋이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아저씨! 여긴 방역규정이 엄격해서 그럴수 없어요. 다른 나라에서도 가금호동의 출입은 미싸일기지에 들어가는것보다 더 힘들다더군요.》
조광문은 처제의 그 말을 즐겁게 받았다.
《그러구보니 우리 기사장님은 미싸일기지 기사장격이구만, 엉?》
그의 말속에는 훌륭한 처제를 두었다는 긍지와 자랑이 담겨져있었다.
잠시후 그들은 버드나무옆에 자리를 잡고 둘러앉았다. 이 고장의 특산인 오리훈제와 송화란을 내놓자 조광문부부의 얼굴엔 기쁨이 넘쳐흘렀다.
백상익이 부어주는 술 한잔을 달게 마신 조광문은 멋스럽게 팔소매를 걷어올리고 훈제고기 한토막을 집어들었다. 갖은 양념에 재웠다가 참나무연기에 쏘이며 익힌 누런 밤색의 고기에서는 기름기가 흐르고 연한 불냄새가 입맛을 돋구며 풍겨왔다.
은숙은 고기보다 송화란이 별맛이라고 하면서 하얗고 가느다란 손으로 누런 껍질을 맵시있게 벗기였다. 샘물로 목을 추기며 송화란을 맛있게 먹는 언니를 건너다보며 송영숙은 방그스름히 웃었다.
《언니! 내가 송화란에 대한 옛말을 할가요?》
《옛말?》
은숙이 입언저리를 손수건으로 꼭꼭 누르며 되물었다.
《송화란에도 무슨 옛말이 있나?》
조광문도 벌깃해진 얼굴에 호기심을 담았다.
백상익은 안해에게 어서 이야기하라고 눈을 끔뻑였다.
송영숙은 웃음어린 얼굴로 송화란을 내려다보며 옛말이야기를 꺼내였다.
《이 송화란은 중국의 송화강지역 사람들이 먼저 만들어먹기 시작한 알이예요. 그래서 이름도 송화란이구요. 옛날부터 그곳에서 오리알가공을 잘했다는군요.》
…
그때 그들이 얼마나 알가공을 맛있게 잘했는지 국내에서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그들의 알가공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부러워했다.
그들은 알로 가루도 만들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가공제품을 만들었는데 우리 나라에서 김치를 담그어먹듯이 세대들마다 알을 가공하여 저장해놓고 먹었다는것이다. 그중에서도 송화란은 만들기가 헐하면서도 그 맛이 좋아서 이웃나라에까지 소문이 났다고 한다.
한번은 로씨야황제가 알가공품에 대하여 너무도 부러워하기때문에 중국황제가 그에게 송화란을 보낸적이 있었다. 그런데 송화란을 받은 로씨야황제는 맛도 보지 않고 썩은 알을 보냈다고 불그락푸르락 하면서 송화란을 몽땅 내다버리라고 호령했다는것이다. 거무스레하게 썩은 알을 보낸것은 자기를 모욕하는것이라면서 노발대발했던것이다.
《이렇게 송화란은 거무스름한 누런빛인데 로씨야황제는 글쎄 이걸 보고 썩은 알이라고 했다는거예요.》
흥미있는 눈길로 처제가 가리키는 송화란을 내려다보던 조광문은 하하 큰소리로 웃었다.
은숙은 쥐고있던 송화란의 껍질을 마저 벗기며 혀를 찼다.
《언니! 이 옛말은 우리
송영숙의 얼굴엔 어느덧 추연한 빛이 흘렀다.
《우리
은숙의 손길은 다시 멎었다. 조광문도 입가에 가져가던 고기를 놓으며 처제를 바라보았다.
송영숙은 아름드리 버드나무를 거쳐 푸른 호수가로 눈길을 보내였다.
그는 바람세찬 봄날에도, 비내리는 가을에도 공장을 찾아오시여 오리기르는 방법과 함께 이런 옛말도 들려주시면서 훈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가공품을 많이 만들어 우리 인민들에게 보내주자고 하시던
그리고 몸소 저택에서 담그신 절인 오리알을 단지채로 보내주시며 그 견본품대로 오리알을 가공하도록 하나하나 가르쳐주신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얼마후 송영숙은 밝아진 얼굴로 언니와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언니와 함께 자주 오세요. 그러면 이렇게 오리훈제랑 송화란이랑 많이 대접하겠어요.》
그는 지금 공장에서 더 높은 고기생산을 위해 투쟁하고있기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가공품들이 생산될거라고 신심있게 말해주었다.
조광문은 크게 머리를 끄덕이며 그 특유의 뻐기는듯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기사장님이 공장을 더 멋있게 발전시키는걸 보려구 내 자주 와야지.》
확신에 넘친 그 어조속에서 《ㅈ》자는 더 뚜렷한 《ㄷ》로 발음되였다.
점심식사를 마친 그들은 호수가에 들어서서 세면도 하고 해빛쪼이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였다. 호수가에 감빛노을이 곱게 비낄무렵에야 그들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간의 휴가를 뜻깊고 인상깊게 보낸 조광문부부는 다음날 즐거운 마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그들을 바래우려고 송영숙은 남편과 함께 역으로 나갔다. 기차에 오르기 전에 은숙은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난 너의 일이 더 잘되리라고 믿어.》
송영숙은 언니의 사려깊은 눈가에서 그보다 더 많은 말을 읽었다.
그것은 동생의 사업과 가정생활에 영원한 행복이 꽃펴나기를 바라는 사랑과 축복의 노래였다. 시처럼, 노래처럼 아름다운 그 말을 마음속으로 들으며 송영숙은 밝게 웃었다.
《언니! 잘 가세요. 그리구 모두 건강하세요.》
자매는 렬차의 출발을 알리는 기적소리를 듣고서야 따뜻이 잡았던 손과 손을 놓았다.
어느덧 기차는 몸체를 미끌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송영숙은 떠나는 기차를 따라걸으며 언니와 아저씨의 기쁨이 되고 자랑이 되는 일을 더 많이 하리라 다짐하면서 오래오래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