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5 회)
제 4 장
붉은 단풍계절
5
(1)
해빛이 밝게 비쳐드는 김정일동지의 집무실에는 오늘따라 약간 류다른 기운이 돌았다.
가구가 바뀐것도 아니고 화분이 새로 놓인것도 아니였다. 여느때와 좀 다른것이 있다면 그이의 집무탁 량켠에 사민들과
군인들이 서로 마주앉은것이라고 할가.
사복차림을 한 사람들은 이번에 당대회를 맞으며 예술영화 《한 간호원에 대한 이야기》를 창작완성한 작가 석윤기와 최학수를 비롯한 작가들,
그밖에 신인하부부장을 위시한 영화부문 책임일군들이고 그들과 마주앉은 군인들은 로일수부국장과 인민군협주단 지휘관들 그리고 여러 창작가들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 큰 기쁨을 드린 영화창작가들에게
다시한번 사의를 표하시고 이 영화가 거둔 성과에 대하여 장면별로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칭작가들은 영화의 매 세부에
이르기까지 그처럼 세심한 지도를 주시고도 그 모든 영광을 자신들에게 안겨주시는 그이앞에서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한동안 영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이어가시던 그이께서는 협주단 창작가들쪽을 바라보시며 동무들도 영화를 보았는가, 마음에
들던가고 물으시였다.
인민군협주단 단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영화를 보았는데 정말 걸작이라고, 자기는 말주변이 시원치 못하지만 대회에서 돌아오자마자 창작가,
배우들을 모아놓고 1시간동안이나 《입영화》를 돌렸다고 보고드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시였다.
《그래서 협주단창작가들이 꿀먹은 벙어리들처럼 앉아있었구만. 단장동무가 입영화를 뭘 제대로 돌렸겠습니까? 좋은 영화를 싹 망쳐놓지 않았는지
모르겠소.》
그이께서 롱조로 분위기를 터놓으시자 대위견장을 단 한 창작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선인민군가》의 가사를 쓴 리범수작가였다.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이야기줄거리만 듣고도 감동되였습니다. 원래 예술의 진미란 작은것에서 큰것을 보여주는것인데
어떤 이름있는 영웅의 이야기도 아니고 큰 전투를 취급한 이야기도 아닌 한 처녀간호원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조선로동당원을
창조한것이 정말 놀랍습니다. 한마디로 새로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작가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시였다.
《역시 작가가 다릅니다. 직접 보지도 못했다는데 말로만 듣고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내누만. 동무말마따나 원래 우리는 이 영화의 제목을 〈한
당원에 대한 이야기〉로 하는것이 어떻겠는가 하고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만큼 영화의 주제나 종자가 당원이란 어떤 사람인가 하는데 있었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원형인물이 간호원이고 또 제목이 너무 주제에 가까우면 예술적효과가 덜할것같다는 일부 창작가들의 의견을 참작해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만들어놓고보니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단 말입니다.》
지금껏 그이의 치하를 받고 얼굴이 붉게 상기되여있던 영화부문 일군들과 창작가들이 긴장한 눈길로 그이를
우러렀다.
《이번 당대회를 통하여서도 다 느꼈겠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시였다.
해살이 비쳐드는 창문을 내다보시는 그이의 안광에 추연한 빛이 어리였다. 이 시각 그이의
마음속에는 대회장에 물결치던 환호와 격정이 다시금 파도쳐오고있었다.
주석단에 오르신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러 《만세!》의 환호를 올리던 대표들, 그들의 눈에서
흘러내리던 뜨거운 눈물…
《어버이수령님을 열렬히 따르고 흠모하는 우리 당원들과 인민들의 마음은 오늘에 와서 활화산처럼 폭발하고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어제 오늘에 생겨난 감정도 아니고 그 누가 지어낸것도 아닙니다. 우리 인민은 어버이수령님을 혁명의 진두에
모신 첫 시기부터 그이를 민족의 태양으로, 운명의 구세주로 믿고 따라왔습니다. 지난 시기의
기성리론에는 당이라는 개념이 〈특별히 선발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라고 되여있었는데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당은 곧 수령님이시고
수령님을 떠난 당이란 우리 인민들의 마음속에 존재해본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만들면서 일반적으로 당원들의 혁명성만
강조하다보니 수령님에 대한 주인공의 흠모선을 놓쳤습니다.》
사색에 잠겨 고개를 수그리고있던 4. 15문학창작단 작가 석윤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가에 서계시는 그이를 향해
돌아섰다.
《말씀을 듣고보니 확실히 우리가 중요한것을 놓쳤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창문에서 시선을 떼시면서 흥분한 작가를 손짓으로 눌러앉히시였다.
《아니, 영화는 잘되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높이 평가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것은 좀 다른
문제인데…》
김정일동지께서는 인민군협주단 창작가들이 앉은쪽을 바라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인민군협주단에서 이 영화를 가지고 혁명가극을 한번 만들어볼수 없겠는가 하는것입니다. 가극은 영화와 생리가 다른것만큼 원작의 종자와 주제를
그대로 살리면서도 주인공의 흠모선을 절절하게 형상할수 있을것입니다.》
로일수부국장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맡겨만 주시면 기어이 형상해내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시며 부국장동무는 나서지 말고 작품을 맡아야 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그러자 인민군협주단 단장이 벌떡 일어섰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김정일동지께서는 흠칫 놀라시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시였다.
처음으로 들으시는 호칭은 아니였다.
그러나 군복을 입은 군인에게서 듣기는 처음이시였다.
사회의 영화예술인들속에서 맨 처음 울려나온 이 부름을 더이상 퍼져나가지 못하게 막으시려고 말씀은 얼마나 많이 하시고 엄한 추궁은 또 얼마나
하셨던가!
그러나 이 부름은 걷잡을수없이 퍼져서 이제는 당중앙위원회 일군들까지도 이렇게 부르고있었다. 자신을
어버이수령님의 평범한 전사로만 여겨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런 부름앞에 설 때가
무척 괴로우시였으나 어쩐지 군복입은 예술단체의 지휘관에게서 터져나온 그 부름에는 가슴이 뭉클해지시였다. 협주단단장의 입에서 힘있는 대답소리가
울려나왔다.
《우리는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인민군협주단의 전통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명심하고있습니다.
어찌보면 주인공 강연옥에 대한 이야기는 전화의 불길을 헤치고 최고사령부를 찾아갔던 우리 인민군협주단에 대한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혁명가극으로 형상해야 한다면 응당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민군협주단 창작가들속에서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마주앉은 사회의 창작가들도 열렬한 박수로 호응하였다. 로일수는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반쯤 일어서기까지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협주단동무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니 매우 기쁜 일이라고 하시며 그러면 이
혁명가극은 인민군협주단에서 창조하는것으로 결론짓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러되 제목은 가극의 성격에 맞게 고칩시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영화를 보시면서 강연옥이야말로 우리 당의 참된 전사,
당의 참된 딸이라고 교시하신것만큼 작품의 주제와 종자에도 맞게 〈당의 참된 딸〉이라고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군복입은 창작가들이 일시에 일어서며 《알았습니다!》 하고 큰소리로 대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