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4
(2)
김춘근당비서도 손바닥으로 구레나룻자리를 슬슬 올리쓸며 실험실이 될수 있는 장소를 찾아보았다.
그들을 지켜보던 송영숙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을 틔워주었다.
《실험실로 쓸 방을 제가 이미 찾았습니다.》
《그렇소? 어느 방이요?》
《운수직장안쪽에 창고로 쓰던 방입니다. 가보았는데 괜찮을것같더군요.》
《운수직장안에? … 오! 수도칸쪽에 있는 맨 끝 창고 말이요?》
공장의 구석구석을 손금보듯 알고있는 지배인은 눈을 흡뜨며 석쉼한 소리로 물었다. 하더니 대바람 이마살을 찌프리고는 《에 에…》하며 팔을 홱홱 내저었다. 하필이면 습기차고 구석진 곳에 자리잡은 그런 방을 택했느냐 하는 기색이였다.
(아무렴 이 큰 공장에 그보다 나은 방이 없을라구? 정 없다면 새로 짓기라도 할텐데…)
《거기 말구 다른 방이 없을가?》
당비서도 그 변변치 못한 창고가 마음에 안드는지 혼자말로 물었다.
지배인과 당비서의 마음을 헤아려본 송영숙은 명랑하고 활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 보기엔 거기가 제일 좋다고 생각됩니다. 우선 사무실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데다가 현장을 오가면서 짬짬이 들릴수도 있구 또 다른데보다 조용하구… 수도칸도 앞에 있으니 여러모로 편리할것같습니다.》
그의 표정과 어조는 적극적이였다.
그는 운수직장안의 창고보다 더 좋은 곳은 없는듯이 말하였다.
사실 남들이 잘 모르는 그 구석지고 채광조건도 시원치 않은 그 창고는 송영숙의 의도에 꼭 맞는 곳이였다.
《글쎄 기사장동무가 좋다면야 나도 반대없지요. 난 그저 더 좋은데가 없을가 해서 그러는데 비서동무 생각은 어떠시오?》
지배인은 여전히 딱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당비서를 쳐다보았다.
《나도 지배인동무와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기사장동무 말을 들으니 무슨 궁리가 있어서 거길 정한것같은데요.》
김춘근당비서는 구레나룻자리를 올리쓸며 침착하게 말했다.
역시 당비서에게는 상대방의 속내를 들여다볼줄 아는 남다른 눈이 있는것같았다.
장병식지배인은 그제야 큰 머리를 끄덕끄덕하였다. 하면서도 그 방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털어버릴수 없는지 얼굴색은 여전히 어두웠다.
송영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결정된 일로 생각하고 오늘부터 실험실을 꾸리겠습니다. 실험실이라야 그저 시간이 있을 때 장난삼아 분석이랑 해보자는겁니다.》
그는 좋은 실험실을 꾸려주지 못해 마음쓰는 지배인과 당비서를 쳐다보며 즐거운 어조로 말했다.
그가 표현한 《장난삼아…》라는 말이 무척 재미나고도 친근하게 들려 지배인도 당비서도 다같이 빙그레 웃었다.
송영숙은 지배인의 방에서 나온 다음 자기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운수직장으로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던 그는 괜히 마음이 뒤설레여 의자에 앉았다. 실험실을 꾸리는데 대해서는 지배인과 당비서와도 의논이 되였으니 이제는 실험설비들을 갖추는 일만 남았다.
맘속으로 필요한 설비들을 하나하나 꼽아보았다.
우선 합성반응기와 교반기, 진탕배양기 그리고 농축기가 있어야 한다.
문득 기술준비소에서 고장난 합성배양기를 본 생각이 났다. 거기에서는 별로 쓰지 않으니 설비부기사장에게 말하여 고친 다음 가져오면 될것이다. 농축장치와 곤로는 지금이라도 만들수 있는것이고 유리관이며 플라스크, 비커를 비롯한 기구들은 이미 가지고있는것이면 충분했다.
(중요한건 교반기인데…)
생각에 잠겼던 그는 교반기도 설비부기사장에게 부탁하면 당장이라도 해결해줄것이라고 믿었다.
(페설물과 염산 그리고 가성소다용액 같은것은 자재과장에게 부탁했으니 해결된셈이고… 그러니 교반기만 있으면…)
송영숙은 설비부기사장 최금천의 얼굴을 그려보았다. 성실하고 책임성이 높으면서도 먹성이 좋고 언제봐야 식욕이 왕성한 그는 무척 재미있는 사람이였다. 먹는 일에 열성이였고 그에 못지 않게 성실하였다.
선풍기의 바람결에 흩날리는 귀밑머리를 쓸어넘기던 송영숙은 저도모르게 《아!》하며 외마디소리를 내였다.
제일 중요한 배풍장치에 대하여 잊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쳤던것이다. 독성이 강한 페설물의 피해를 어느 정도 막기 위해서는 배풍장치가 잘 돼야 하는데 그러자면 또다시 설비부기사장의 손을 빌려야 한다.
그러나 최금천에게 그것까지 부탁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시작하기 전부터 무슨 큰일이나 하는것처럼 소문을 내고싶지 않았다.
(먹성인자를 찾기 위한 연구는 철저히 비밀로 되여야 한다. 그러자면…)
문득 생산부기사장 서정관의 방에 놓여있는 키높은 선풍기가 떠올랐다.
거기에다가 자기앞에 놓인 탁상선풍기 두대면 배풍장치를 거의 대신할수 있다고 생각하던 송영숙은 곧 머리를 저었다.
지나치게 사교적이여서 진실성이 희박해보이는데다가 입이 가볍고 실속이 없는 서정관에게 그런 부탁을 하고싶지 않았다.
더우기 서정관과 정의성은 처남매부간이 아닌가.
송영숙이 먹성인자를 위한 연구를 하면서 제일 비밀에 붙여야 할 대상은 다름아닌 정의성이였다.
송영숙은 자기가 하는 실험과 연구에 대하여 소문을 내지 않자면 모든것을 자체로 준비하고 혼자서 해내야 한다고 다시금 마음다졌다.
(지금은 우선 이 선풍기 한대로 실험을 시작하자, 부족되는건 앞으로 보충하기로 하고…)
그는 계획대로 모든 준비를 하나하나 소문없이 갖추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