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4
(1)
송영숙은 아침시간에 자재과장을 만났다.
화학공장방면에 위치한 기와공장에서 스레트를 실어오기 위해 자재과장이 자동차로 떠난다는것을 알고 사무실로 불렀던것이다.
《아무렴 고까짓거야 실어다드리지 못하겠습니까?》
화학공장페설물을 두 도람통 실어오라는 기사장의 부탁에 자재과장은 벌씬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녀성기사장이 처음 하는 부탁이여서 페설물이 아니라 고양이뿔이라도 구해다주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러나 오래동안 자재과에서 일해온 그는 공장에 어떤 자재들이 필요한가를 잘 알고있는터여서 머리를 기웃거렸다.
《헌데… 그건 뭘하는겁니까? 페설물이라니 보약은 아닐거구요.》
《바로 보약을 만들자는거예요. 그러나 그자체는 역한 냄새가 나는 걸죽한 액체지요.》
송영숙은 자기가 표현한 그 역한 냄새가 금시 풍겨오기라도 하는듯 이마살을 약간 찌프렸다.
자재과장은 그를 보며 벙글 웃었다. 남달리 인중이 길고 웃입술이 기와집지붕같은 그는 그 생김새뿐아니라 성격 또한 유모아적이여서 공장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좋아했다.
《앞으로 보약을 만들면 나한테두 조금 줘야 합니다, 페설물은 떨구지 않구 보장해드릴테니까요.》
송영숙은 빙그레 웃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자재과장이 돌아간 후 송영숙은 곧장 지배인방으로 갔다.
지배인방에는 김춘근당비서도 있었다. 지배인을 만난 다음 당비서를 찾아가려고 했었는데 마침이였다.
송영숙이 가볍게 인사를 하며 방에 들어서자 지배인도 당비서도 웃는 얼굴로 그를 반겨주었다.
《기사장동무구만. 어서 들어오시오.》
그들은 친절하게 옆자리를 권했다.
녀성기사장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기업소의 어려운 모퉁이마다에서 일자리를 푹푹 내고있는데 대하여 여간만 미더워하지 않는 지배인과 당비서였다.
더우기 하반년부터 공장첨가제와 수입첨가제를 절반씩 섞어서 생산을 보장하게 된 지금에 와서 녀성기사장에 대한 그들의 기대와 믿음은 더욱 커졌다.
사실 비교측정결과에 대한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지배인이였다. 그날 지배인은 땅을 구르며 만세삼창이라도 부르고싶은 심정이였다. 기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라면 기사장을 업고 공장을 한바퀴 돌았을것이다.
수입첨가제를 보장하기 위해 누구보다 머리도 많이 쓰고 밤길도 많이 걸으며 마음고생 또한 많이 해온 지배인이다 .
그런데 이제는 그 수고를 절반 줄이게 되였다. 실지로 첨가제의 덕을 보게 되였으니 경사라면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으랴.
장병식지배인은 연구소에서 공장으로 내려온 정의성이 처음 국산화된 우리 식의 새로운 첨가제를 만들겠다고 하였을 때 눈빛이 사색적이면서도 야심만만한 배짱이 엿보이는 그를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의 연구조건을 보장해주면서 적극 고무도 해주었다.
기사장의 의향대로 첨가제생산실도 번듯하게 새로 지어주었다.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언제 그 덕을 보랴 했었다. 그의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첨가제연구는 제자리걸음으로 한해 또 한해를 보내였었다. 송영숙이 수입에 의존하지 말고 우리의 원료, 자재로 생산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뛰여다닐 때에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면서 그가 생산문제보다 기술적인 문제를 우선시한다고 은근히 언짢은 마음까지 품었었다.
그런데 오늘은 실지로 첨가제의 덕을 보게 된것이다.
(기사장이 생각하는 품이며 일하는 잡도리가 사내 열, 스물보다 훨씬 낫거던. …)
장병식은 젊은 녀성기사장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지배인동지!》
송영숙은 지배인을 부르면서도 당비서의 얼굴도 번갈아 바라보면서 두사람과 의논하는 심정으로 말하였다.
《저두 짬시간을 내서 첨가제연구에 필요한 시험을 좀 해보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작은 실험실 한칸을 꾸렸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실험실을?》
장병식은 의아한 눈길로 송영숙의 말을 되물었다. 그리고는 의논하듯이 당비서를 쳐다보았다.
당비서도 전혀 뜻밖인듯 눈가에 의문을 담고 쳐다보았다.
지배인은 인츰 자기의 생각을 터놓았다.
《기사장이 실험실을 꾸리겠다는거야 좋은 일이지요, 실험실에서 공장을 위한 좋은 일을 할테니까.》
《예, 나두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니 실험실을 잘 꾸려주어야지요.》
당비서도 지배인을 지지했다.
《그런데 어디다가…》
장병식지배인은 얼마전까지 기사장에 대해 품었던 언짢은 마음이 죄스럽게 생각되여 사죄하는 심정으로 그에게 좋은 방을 내주고싶었다.
하지만 실험실로 꾸릴만한 곳이 선듯 짚이지 않았다. 실험실이라면 적어도 조용하고 깨끗하며 채광조건도 좋고 또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곳이여야 하는데…
《사무청사안엔 자리가 없구… 알깨우기직장옆에 있는 건물은 조용하긴 해두 너무 외딴곳인데다가 낡았거던. … 참! 문화회관 2층에 넓구 환한 방이 하나 있는데.》
지배인의 말에 당비서는 머리를 저었다.
《거긴 너무 소란스러울겁니다.》
《정말 그렇겠구만, 노상 풍짝거릴테니까. 그렇다면…》
지배인은 공장건물들을 하나하나 세여넘기듯 눈앞에 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