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2 회)

제 4 장

붉은 단풍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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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고마비의 계절, 하늘이 높아지고 말들이 살찐다는 가을이다.

이른새벽부터 해무가 끼여 자욱한 안개속에 잠겼던 영천리앞바다는 정오가 지나서부터 활짝 맑아지면서 짙푸른 물면이 연푸른 하늘과 맞붙어 청청일색으로 시원하게 펼쳐졌다.

빨갛고 노란 풀씨들이 알알이 영글어가는 바다가의 나지막한 모래뚝우에는 당 제5차대회에 참가한 각 도와 시, 군, 기업소단체들의 대표들이 어버이수령님께서 관람대에 나오실 시각을 기다리고있었고 그 뚝을 넘어 뒤쪽벌판에 대기하였던 해안포들, 땅크들, 장갑차들, 형형색색의 기동기재들과 무기전투기술기재들이 일제히 발동을 걸고 푸르스름한 연기를 피워올리며 바다기슭의 진지를 향해 기동하고있었다.

뚝우에 올라선 대표들은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릴것같은 우람찬 무쇠철마들과 굵은 포신을 쭉쭉 비껴멘 포차들이 모래땅을 물어뜯으며 뚝을 넘어설 때마다 와와 하고 함성을 지르기도 하고 박수도 치면서 환호를 올리였다. 수령님을 모시게 될 관람대주변의 호위조직정형과 관람석의 안전상태를 다시 따져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리철봉을 비롯한 군사연습지휘부 일군들이 자리잡은 야전지휘소로 내려가시다가 모래뚝우에 서있는 대표들중에서 낯익은 처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손저어 부르시였다.

가뜬하게 뒤머리를 꽁진 날씬한 처녀가 그이를 알아뵙고 달려와 거수경례를 드리였다. 제낀깃양복에 분홍색샤쯔를 받쳐입은 처녀의 봉긋한 앞가슴에 권총 두자루를 ×모양으로 부각해놓은 메달들이 번쩍거렸다.

한달전 사회주의나라군대 군사3종선수권대회 사격종목에서 우승을 한 2. 8국방체육단의 사격선수였다.

《선옥동무로구만. 이번에 인민군 당대표로 선출된 소식을 들었소. 싸우는 조선의 상징종목과도 같은 사격경기에서 우승한 군대사격선수야 응당 대표자격이 있지. 이번 경기땐 선수권보유자와 맞다들렸댔다면서? 장하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방아쇠에 손가락을 바로 걸지 못하여 애를 먹던 처녀였다. 처녀는 가슴을 들먹이며 자기들은 지금도 그때 남기고가신 어버이수령님의 싸창을 바라보며 훈련을 하고있다고, 선수들이 다들 뵙고싶어한다고 말씀올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께서 요즘 일이 바빠 국방체육단에 별로 가보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하여 체육인들과 정이 멀어진것이 아니라고 하시며 인차 한번 나가겠으니 훈련들을 잘하라는 당부를 남기시고 걸음을 옮기시였다.

이때 여기저기서 김정일동지를 알아뵈온 여러 대표들이 와르르 달려내려오며 그이를 에워쌌다.

이태전에 백두산에 함께 오르셨던 량강도당 책임비서와 도인민위원장도 달려왔고 만수대예술단의 지휘자, 당중앙위원회청사에 방사포차를 끌고왔던 군수공장의 책임기사,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인민배우도 달려와 인사를 드렸다. 항일투사들인 오백룡, 김익현, 리종산, 김철호의 얼굴도 보이고 그사이 수령님과 함께 인민군부대들을 돌아보시며 낯을 익히신 젊은 지휘관들이 또 몰려들었다. 그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시는데 이번에는 ㅎ제강소의 낯익은 작업반장이 어느결에 사람들의 틈새로 뚫고들어와 굽석 인사를 올리였다.

《아, 제강소에서도 오셨구만요. 〈피바다〉영화는 보셨습니까?》

작업반장은 두손을 모두어잡고 다시 허리를 숙이였다.

《고맙습니다. 약속을 지켜주셔서… 영화배우들이 직접 영화를 가지고나와 새로 일떠선 회관에서 우리와 함께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제강소로동계급의 사기는 그야말로 충천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께서가 아니라 어버이수령님께서 직접 ㅎ제강소에 영화배우들을 내려보내도록 조치를 취해주셨다고 하시며 앞으로도 일을 더 잘하기 바란다고 말씀하시였다.

모래뚝에 주런이 선 당대회대표들은 관람대아래서 펼쳐진 이 광경을 놀라운 눈길로 바라보면서 저렇듯 머리허연 장령들과 영웅들, 온 나라가 다 아는 인민배우들속에 계시는 젊으신분이 누구이실가 하고 제나름으로 웅성거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낯익은 당대표들과 헤여져 모래언덕우에 쇠말뚝을 박고 위장그물을 얹은 지휘소로 올라가셨을 때 뜻밖에도 례복앞가슴에 주런이 훈장을 단 최현이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그의 모습을 알아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다. 오늘 연습참관일정에는 민족보위상이 수령님과 동행하여 나오는것으로 되여있는데 어떻게 여기에 나와있는지 모를 일이였다. 최현은 자기를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시는 그이께 곁에 서있는 부관을 가리켜보이며 이곳으로 먼저 나오게 된 사연을 말씀드리였다.

《이녀석때문에 내 어제 톡톡히 땀을 뺐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먼저 나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부관이 얼굴을 붉히며 뒤통수에 손을 얹었다.

어제 중화쪽에서 진행된 반항공연습때 있은 일은 김정일동지께서도 이미 알고계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최현과 함께 관람석으로 나오시였을 때 두명의 녀성군인이 꽃다발을 안고나왔다. 수령님께서 꽃다발을 받으시는것을 바라보고섰던 최현은 한 녀성군인이 자기 가슴에 꽃다발을 안겨놓고 거수경례를 하자 황급히 그것을 뒤로 감추며 부관이 넘겨받으라고 툭툭 흔들었다. 그런데 부관이 미처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다보니 최현은 수령님과 함께 꽃다발을 든채로 관람석으로 오르게 되였다. 연습이 끝난 다음 최현은 자기 부관을 눈물이 쑥 나게 닥달질한것은 말할것도 없고 연습참모부 지휘관들까지 불이 번쩍 일게 닦아세웠다.

수령님께서 나오시는데 꽃다발을 나에게까지 주는건 무슨 버릇없는짓이요? 이건 대체 누가 이렇게 조직했나?》

연습참모부 일군들은 뒤걸음을 치며 우리들은 잘못이 없다고, 수령님께서 그렇게 교시가 계시였고 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나와서 직접 조직했다고 말해주었다. 말문이 막힌 최현은 《꽃다발사건》이 또 생길가봐 행사일정이고 뭐고 아예 지휘소에 나와 올방자를 튼것이였다.

수령님과 나란히 걸을 때면 그이의 그림자라도 밟게 될가봐 이리저리 몸을 피하는 최현이고보면 십분 리해되는 일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변함없고 순결한 로투사의 진정에 눈굽이 젖어드는것을 느끼시며 철갑모의 턱끈을 바싹 조여맨 리철봉에게 오늘연습일정에 대하여 일일이 물으시였다. 얼마전에 검열연습을 보면서 미흡한 점들을 지적도 하고 새로운 방향도 그어주었지만 왜서인지 자꾸만 무엇을 놓친것처럼 생각되시였다.

이윽고 모래뚝우에서 《만세!》의 함성이 터지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급히 옷매무시를 바로잡으시며 최현과 함께 관람석쪽으로 달려올라가시였다. 녀성군인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고계시던 수령님께서 가쁜숨을 헐떡이며 올라오는 최현을 알아보시고 곁에 선 간부들에게 말씀하시였다.

《최현동무가 바다에 나오더니 멀미를 하는게요. 민족보위상이란 사람이 자기가 설 자리도 모르는걸보니!》

꽃다발을 안받겠다고 자리를 피한줄을 다 아시고 일부러 하시는 말씀이였다. 최현은 두손을 앞으로 모아쥐며 《그래서 이렇게 날래 뛰여오지 않았습니까.》하고 서둘러 말씀올리였다. 좌중에 웃음이 터져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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