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7 회)
제 4 장
붉은 단풍계절
1
(3)
수령님께서는 김정일동지의 존안을 의미깊게 바라보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우리 아버님은 공산주의자는 아니였지만 이런 원리를 잘 알고있었소. 그래서 늘 나에게 혁명을 하자면 동지가 많아야
하고 그 동지를 얻자면 동지를 위해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지. 나에게는 정말 좋은 동지들이 많았소. …》
이렇게 수령님의 말씀은 또다시 동지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갔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당중앙위원회 집무실에 들어서시여서도 수령님과
나누신 그날의 대화를 상기하시며 방금전에 대극장에서 들으신 녀성합창 《충성의 노래》의 구절구절을 입속으로 조용히 외워보시였다.
장백의 험한 산발 눈보라 헤치시고
혁명의 수만리길 걸어오셨네
내 조국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인민들은 일편단심 충성을 맹세하네
찬이슬 맞으시며 농장을 찾으시고
눈오는 이른새벽 공장을 찾으시네
크나큰 그 은덕은 만대에 길이 빛나리
인민들은 심장으로 충성을 노래하네
인민을 위하여 너무나 많은 업적을 쌓으시고 그 공적을 모두 혁명동지들에게 돌려주시는 어버이수령님, 그처럼
위대한 사상을 우리의 머리우에 기발처럼 나붓겨주시고도 자신은 조국과 인민앞에 평범한 복무자로만 여기시는
위인께 그 인민이 삼가 드리는 노래였다. 그러나 이 한편의 노래로야 어찌 크나큰 그 은덕을 다 노래할수 있겠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탁우에 놓인 문건을 펼치시였다.
당대회의 주석단배치와 관련한 문건이였다. 맨 첫페지의 상단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져있고 그아래에 공간을 좀 띄워서 김일, 최용건을 비롯한 당과 국가의 주요간부들의 이름이 죽 내리적혀있었다.
오늘 아침 당대회준비와 관련한 문건들을 후열하다가 타자를 맡은 일군에게 수령님의 존함을 다른 사람들의 이름과 나란히
써놓으니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고, 수령님의 존함과 다른 간부들의 이름사이에 공간을 주고 다시 타자를 쳐서 들여와보라고
임무를 주시였었다.
그래서 다시 들여온것같은데 아무리 보아도 마음에 들지 않으시였다. 이전보다 좀 나은것같기도 했지만 수령님의 높으신
권위에 비해볼 때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지시였다.
일찌기 김혁, 차광수와 같은 청년공산주의자들은 조선의 새별을 상징하는 한별이라는 존함도 성차지 않아 10대의 젊으신
지도자께 태양의 존함을 지어드리지 않았던가.
그렇다! 수령님은 태양이시다. 태양의 모습을 어떻게 뭇별들과 꼭같이
그릴수 있겠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참동안이나 문건의 첫페지를 들여다보시고나서 빨간색연필로
오른쪽여백에 힘주어 써넣으시였다.
《부결! 수령님의 존함은 지금보다 활자호수를 더 크게 하여 다시 인쇄하여올것!》
김정일동지께서 문건을 넘기고 다음문건을 펼치시는데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종소리가
울린것은 민족보위성과 련결된 전화기였다.
최현의 얼굴을 눈앞에 떠올리며 송수화기를 드니 처녀교환수의 맑은 목소리에 이어 귀에 익은 굵은 목소리가 진동판을 울렸다.
《장군님!》
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이 툭 튀여나는것같으시였다.
얼마전부터 최현은 자신께서 늘 만류하시던 《장군》이라는 부름뒤에 존칭의 뜻을 나타내는
뒤붙이까지 붙여 《장군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리 나라에 《장군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울수 있는분은 오직 수령님뿐이시라고, 다시 그렇게 부르면 최현동지와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엄한 표정을 지으시다못해
또 당결정을 내리라는가고 엄포를 놓으시였으나 이번만은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의 부관과 운전사에게까지 자신을 만날
때는 그렇게 불러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몇번이나 이 문제를 두고 최현과 이야기를 나누시였지만 기껏해서 다른
사람들이 곁에 없을 때만 그렇게 부르겠다는 양보밖에 받아낼수 없으시였다. 결국 최현은 그이와 단독으로 전화를 한다는
핑게를 걸고 뻐젓이 《장군님》이라고 부르는것이였다.
문득 어버이수령님께서 김혁과 차광수에 대하여 하시던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오르시였다.
그들이 나를 지도자로 받들어주어서 고마운것이 아니라 통일단결의 중심을 내세우고 조선혁명의 새 력사를 개척한
선구자들이기때문에 잊지 못한다. …
자신을 《장군님》이라고 부르는 백전로장의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일반적인 존경만이 아니라 바로 그들과 같은 충실성, 혁명의 장래운명에 대한 로투사의 책임감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니 눈굽이 뜨거워오르고 그 믿음과
기대에 보답해야 하겠다는 결심이 굳어지시였다.
《최현동지,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이렇게 전화를 하셨습니까? 목소리를 들으니 무척 반가운 소식이 있는 모양입니다.》
《래일 영천리앞바다에서 당대회를 맞으며 진행하게 될 해상종합군사연습의 검열훈련이 있습니다. 꼭 장군님을 모시구
지도를 받게 해달라구 해군사령부에서 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우병국동무도 그래, 철봉이도 그래, 정치위원까지 성화를 먹이길래 제가 일단 대답을
해놓았습니다. 당대회준비때문에 무척 바쁘실줄은 알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군요. 그동안 철봉동무랑 군수공장 동무들과 합심해서 우리 식의 새로운 포를 만들어 위력도 더 높이고 함선에 안전하게
설치했다는 말까지는 들었는데 벌써 검열훈련을 한단 말입니까? 그런 일이라면 짬을 내서라도 찾아가야지요. 하지만
〈지도〉라는 말은 빼야 하겠습니다. 저는 그저 축하를
해주러 가겠습니다.》
최현은 그이의 승낙을 받은것이 무등 기쁜듯 그럼 자기는 먼저 나가서 준비를 하겠다고 큰소리로 말씀올렸다.
김정일동지께서도 큰소리로 대답하시였다.
《알겠습니다. 래일 아침일찍 진포로 나가겠습니다.》
송수화기를 내려놓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맞은켠벽에 걸린 벽시계에 시선을 보내시였다.
인민군협주단에서 진행하는 당 제5차대회경축 조선인민군축하단의 시연회를 지도해주셨으면 한다는 로일수부국장의 전화를 아침에 받으시였는데 벌써
시연회시간이 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탁우에 놓인 문건들을 가방에 가득 채워넣으시며 인민군협주단으로
나갈 준비를 하시였다. 쟈크가 닫기지 않을만큼 넣으셨는데도 아직 많은 문건들이 남았다.
저녁에는 모란봉경기장(당시)에서 평양시학생소년들이 준비한 집단체조시연회가 있고 당대회대표들의 숙소준비정형을 알아보러 나가기로 계획하였으니
래일 진포에 다녀오자면 아무래도 또 밤을 새워야 할것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