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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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근당비서의 눈길은 서정옥의 뒤켠에 머리를 다소곳하고 앉은 봄순에게로 옮겨졌다.
《봄순동무한텐 뭐 애로되는게 없소? 일밖에 모르는 아버지를 모시고 사느라 속상한 일이 한두가지 아닐텐데 어려워말고 말해보오, 응?》
당비서는 꼭 친딸을 대하듯이 각근하게 물었다.
화제가 자기에게로 돌려진것을 느낀 처녀는 몸을 옹송그렸다.
얌전하고 수집음을 잘 타는 처녀를 건너다보며 당비서는 빙긋 웃었다.
《참! 청년동맹창립절때 보니 봄순동문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더구만. … 이 휴계실도 봄순동무가 다 꾸렸다지?》
김춘근당비서는 꽃으로 울긋불긋 장식한 벽거울이며 창턱에 놓인 화분들과 알른알른한 방의 꾸밈새를 둘러보며 말했다.
머리를 숙인 처녀는 목덜미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를 보며 당비서는 자못 긍지스럽게 말했다.
《봄순동무네도 온 가정이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장을 위해 산다고 말할수 있지. 우리 공장엔 진주보석같은 사람들이 많소.》
당비서의 말을 긍정하듯 기사장도 머리를 크게 끄덕였다.
김춘근당비서는 한동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험호동에 자주 나오군 하였지만 사업일정이 바빠서 인츰 돌아서군 하였는데 오늘은 여느날과 달랐다.
어느덧 그는 첨가제문제에로 이야기를 돌렸다.
《내 언젠가 책을 보니 100리길을 가는 사람은 90리를 절반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있더구만. 아마 결승선을 가까이했을 때가 제일 힘들기때문일거요.》
당비서는 구레나룻을 손으로 쓸며 말했다.
《오늘은 첨가제연구의 중간총화라고 할수 있지. 그동안 정말 수고많았소. 첨가제가 완전히 성공하는 날엔 온 공장이 떨쳐나 잔치를 차리겠소. 우리 같이 성공의 날을 향해 신들메를 더 든든히 조이고 달리기요.》
당비서는 그들모두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는 관리공들을 도와 수채관도 수리해주고 칸막이도 옮겨주었다.
김춘근당비서는 어스름이 깃들 때에야 기사장과 함께 시험호동을 나섰다.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당비서는 송영숙에게 몸을 돌보면서 일하라고 당부하였다.
《사실 이번 일은 기사장동무의 성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난 일밖에 모르는 기사장이 앓아누울가봐 항상 걱정입니다.》
그의 말은 진정이였다.
했으나 송영숙은 빙긋이 웃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해산후 휴가기일이 되기 전에 출근했을 때에도 그랬다.
그날 김춘근당비서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었다.
《산전산후휴가는 국가의 법입니다. 기사장이 몇달 없다구 생산이 안될가봐 그럽니까? 딴생각말구 어서 들어가시오, 어서!》
그는 눈까지 부라리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그럴수록 송영숙은 더 밝게 웃으며 명랑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날 저녁 김춘근은 퇴근하여 집으로 들어오는 백상익을 만났다.
그는 백상익에게 안해의 건강은 전적으로 남편에게 달려있다면서 산후몸조리를 잘하면서 충분히 휴식하게 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이보라구, 자네네 집사람은 한가정에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는걸 잊지 말라구. 이건 우리 공장의 운명과도 같은 문제요. 알겠나?》
김춘근은 그루를 박으며 말했다.
그러나 백상익은 싱긋이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헌데 내 힘으로는 좀… 불가능합니다.》
《그건 왜?》
김춘근은 눈을 흡떴다.
《우리 집사람 고집은 누구두 꺾지 못합니다. 정치위원동지가 당권을 써서 처벌휴식시키면 어쩔는지…》
《뭐? 처벌휴식?》
《예, 하여튼 내 말은 아예 안듣습니다.》
백상익은 무슨 즐거운 소식이라도 전하듯 싱긋싱긋 웃으며 말했다.
김춘근은 그만 떡심이 풀리였다.
(음, 음… 군복을 벗으니 이젠 옛 정치위원의 말도 아무런 맥을 추지 못하누나. …)
그는 입만 쩝쩝 다시고말았었다. …
김춘근당비서는 지금도 기사장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건강미 흐르는 그의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끼였다.
그 시각 기사장 송영숙을 생각하는 사람은 김춘근당비서만이 아니였다.
분석실에 앉아 먹이처방표를 쓰고있는 정의성의 눈앞에는 송영숙의 얼굴이 자꾸만 확대되여 안겨왔다.
비교측정 전기간 기사장의 얼굴은 예상외로 어두워있었다.
해산을 한 다음 부석한감은 있어도 몸이 더 실해지고 앞가슴도 풍만해진 송영숙은 시종 긴장하면서도 생각깊은 얼굴로 앉아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첨가제연구의 성과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을 때에도 그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더우기 얼마전에 당비서와 함께 시험호동에 모여앉았을 때에도 송영숙의 기분상태는 여전했다.
김춘근당비서도 자기들의 성과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기사장만은 달랐다.
여느때에는 자그마한 성과도 크게 여기면서 자기의 일처럼 기뻐하던 그였는데 오늘은 침묵만 지키고있는것이 못내 이상했다.
정의성은 도무지 그의 마음을 짐작할수 없었다.
(무엇때문일가? 기대했던것보다 성적이 낮아서 그러는가? …)
다음순간 그의 입가에서는 허구픈 웃음이 새여나왔다.
(그거야말로 지나친 욕망이 아니겠는가? …)
하지만 곰곰히 되새겨보니 송영숙의 표현적인 눈빛에는 허영심과 욕망, 그 어떤 불만이라고 쉽게 단정할수 없는 보다 심중하고 무거운것이 담겨져있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가? …)
하지만 종내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정의성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