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3 회)
제 3 장
봄의 의미
10
(2)
정치지도원도 병사들속에 섞이여 작업장으로 향하였다.
막냉이가 정치지도원의 팔에 매달리며 무엇인가 속살거린다.
무슨 말이 오갔는지 둘이서 한바탕 웃고는 더욱 바싹 붙어서 저벅저벅 걸어간다. 최진성이 그 모습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고있는데 석철룡이 슬그머니 등뒤로 다가들었다.
《진성동무, 이게 지금 우리 중대가 옳소?》
최진성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석철룡이 뿌잇한 눈으로 병사들과 어울려가는 정치지도원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니요. 이전날의 우리 중대가 아니란 말이요. 난 지금껏 이 중대가 석철룡의 중대라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저 사람의 중대가 되지 않았소?》
최진성은 묵묵히 걸음을 옮기면서 정치지도원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이따금 코에 걸군 하는 쁠류스안경때문에 선비같이 유약한 느낌만 주던 사람…
그러나 지내놓고보면 얼마나 강의하고 성실한 인간인가.
최진성은 얼마전 리오송정치위원으로부터 저 정치지도원이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되여 여기 석도로 오게 되였는가에 대해 자상히 알게 되였다.
그만한 배경이면 정치지도원도 쟁쟁한 군사가로 발전할수 있었을것이다. 그의 어릴적 희망도 군사일군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정치일군이 되였다. 군사대학을 지망했던 그가 정치대학으로 방향전환을 하게 된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그것은 리오송정치위원이 47군단 부
한번은 리오송이 관하단위에 내려가 병사들과 함께 행군훈련에 참가한적이 있었다. 행군의 휴식참에 병사들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리오송은 둘러앉은 군인들의 고향이며 나이 그리고 앞으로의 희망이 무엇인가를 한담삼아 물어보다가 별안간 낯색을 흐렸다. 모여앉은 군인들중에 군관이 되겠다는 병사들은 많았지만 태반이 다 군사대학을 지망하였기때문이였다. 리오송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동무들, 내 길지 않은 생을 살아오면서 제일 후회되는게 뭔지 아오? 바로 정치일군이 되지 못한것이요. 어렸을 때는 그저 손에 총을 들고
싸우는게 제일이로다 해서 싸움하는 법만 익혔는데 그래서인지 우리 항일투사들중에 군사지휘관은 많아도 능력있는 정치일군들은 그리 많지 못했소.
생각들 해보우. 총이나 대포는 우리에게도 있고 적들에게도 있소. 그러면 우리가 백전백승할수 있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모든 군인들을
우리
리오송은 《3. 1월간》의 주필이였던 리동백이며 《종소리》의 주필이였던 최경화를 비롯하여 빨찌산의 쟁쟁한 문필재사들과 웅변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다가 목이 꽉 메여버렸다.
《물론 젊은 시절의 희망이야 다 각자의 소견이지. 하지만 내 동무들에게 꼭 이야기하고싶은게 있소. 지금 당중앙위원회에는 우리 항일투사들이
백두산시절부터
그 행군이 있은 뒤에 한 병사가 군사대학지망을 거두고 정치대학으로 갔다. 그가 바로 저 《쁠류스안경》이였다고 한다.
그는 항일투사의 말 한마디에 자기의 인생행로를 바꾸었을뿐 아니라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누구나 오기를 꺼려하는 우리 중대에 서슴없이 자진해왔다. 내가 석박골중대로 온것과는 전혀 다른 걸음이다. 나는 민족보위성에서 특별히 관심한다는 《특수한 중대》에서 발판을 닦아 앞으로의 발전에 든든한 주추돌을 고이려는 개인적인 명예심을 안고왔다면 그는 섶을 지고 불속에 뛰여들었다고 할가, 군벌관료주의자들에게 맹종맹동했다는 딱지가 더덕더덕 붙어있던 중대에 제발로 찾아온것이다.
리오송정치위원으로부터
어쩌면
이제 진지공사가 끝나면 당중앙위원회에 계시는
그리고 북통을 안고 협주단으로 가던 길에 정치일군이 없어 애로되는것이 없는가고 물으시던
최진성이 골똘한 생각에 잠겨 가는데 뒤따르던 석철룡이 퍼그나 사색깊은 어조로 말하였다.
《난 요즘 자주 이런 생각을 하군 하오. 만약 이전에 저 안경쟁이가 곁에 있었다면 이 석철룡이두 과오를 범하지 않았을거라구 말이요. 어디서 저런 사람이 우리 중대에 굴러들었을가?》
최진성은 생각깊은 어조로 대꾸하였다.
《당에서 보내준 우리 정치지도원이 아닙니까.》
《정치지도원이라…》
석철룡은 깊은 생각에 잠겨 말없이 걷다가 우뚝 멈춰섰다.
《진성동무, 솔직한 말로 저 정치지도원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우리
최진성은 석철룡의 손을 으스러지게 마주잡았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나도 요즘 자기자신이 그저 보통군관이 아니라 수령님의 전사, 당의 전사라는 자각을 더 자주 하게 됩니다.》
두사람은 말없는 눈빛으로 오래도록 마주 보았다.
마지막발파준비작업은 불이 번쩍나게 진행되였다. 광차로 푹푹 퍼내는 버럭은 눈깜짝할사이에 말끔히 없어지고 병사들은 새로 드러난 암벽에 마지막발파구멍을 뚫었다. 도화선에 불을 단 공병조가 대피장소로 뛰여온지 얼마 안되여 섬을 뒤흔드는 웅근 발파소리가 련거퍼 울리였다. 발파소리를 하나, 둘 세여보던 최진성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왜 여섯번일가? 일곱 구멍을 뚫었는데…》
곁에 앉았던 정지치도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눈이 밝은 사람들은 귀가 어둡군요. 일곱번 다 울렸습니다.》
최진성은 주먹을 쥔 왼손과 새끼손가락 하나만 편 오른손을 정치지도원의 눈앞에 내흔들었다.
《그런데 난 왜 여섯개요?》
《아까 세번째와 네번째 발파소리가 겹쳐서 울리지 않았습니까. 따당! 이렇게요!》
말을 듣고보니 그렇게 울린것같기도 하였다. 최진성은 그의 말을 확인하려는듯 석철룡을 돌아보았다. 석철룡도 일곱개의 손가락을 내밀어보였다. 마지막발파는 성공한셈이였다. 중대는 아침에 계획한대로 발파가스가 다 빠질 동안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였다. 최진성이 군인들을 데리고 식당으로 내려가려는데 석철룡이 다가왔다.
《중대장동무, 내 정치지도원과 좀 토론할게 있어 그러니 먼저 식사를 하오. 인차 따라내려가겠소.》
최진성은 작업장입구에 버티고앉은 정치지도원을 곁눈질해보며 의아해하였다.
《무슨 일이기에 이 중대장도 모르게 둘이서 토론한다는겁니까?》
《챠, 이런… 잔치를 앞둔 사람이 토론할게 오죽 많소? 이제 동무두 때가 돼보우.》
최진성은 비주름히 웃으면서 돌아섰다.
그럴만도 하지. … 다 튀여나갔던 혼사를 붙여준 정치지도원이 아닌가.
나이는 퍽 젊었지만 자기도 앞으로 이러루한 일이 생기면 저 정치지도원과 모든것을 무랍없이 토론할것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