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 회)
제 3 장
봄의 의미
10
(1)
복은 쌍으로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석도진지공사장에는 요즘 경사에 경사가 겹치였다.
맨 처음으로 꼽을만한 경사는 ㅎ제강소 로동자들이 수백m나 되는 소철레루와 광차부속을 《석도군민선》에 실어보낸것이였다.
두번째 경사라고 한다면 석박골의 적위대장이 석철룡부중대장과 자기 동생의 약혼식날자를 잡아가지고 섬에 들어온것이다. 석철룡은 잔치야 진지공사가 끝난 다음에 보자고 하지 않았는가고 펄쩍 뛰였지만 적위대장은 적위대장대로 그러길래 약혼식이라고 하지 않는가, 오늘 마지막발파를 한다니 약혼식을 해도 큰일날것이 없다고 막무가내로 잡아끌었다.
최진성과 정치지도원까지도 그게 옳은 말이라고 곁들이로 춰주는통에 적위대장은 마지막발파가 끝난 다음 석철룡을 아예 데리고갈 잡도리로 섬에 주저앉았고 석철룡은 그 제의에 동의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실 이것은 지휘관들사이에만 오고간 말인데 그것이 어떻게 병사들속에 소문이 났는지 왁자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냈다.
약혼식을 석박골에서 한다면 결혼식은 석도에서 해야 한다거니, 약혼식때에는 신부될 녀자가 시켠 친척들에게 두루거리로 인사를 하는 풍습이 있는데 석철룡부중대장의 친척이란 우리 병사들이니 아마 형수님이 단단히 내야 할것이라느니, 결혼식때에는 《석도군민선》에 신랑신부를 태우고 섬을 세바퀴 돌아야 한다거니, 큰상에는 꼭 석도의 문어를 올려놔야 한다거니…
곁가마가 먼저 끓는다고 병사들은 자기들이 결혼식을 주관하기라도 하는것처럼 별의별 궁리를 다 해내며 사기를 돋구었다. 그중에서도 한결같은 말은 이러니저러니해도 잔치국수를 하루빨리 먹으려거든 석도진지공사부터 앞당겨 끝내야 할것이라는것이였다. 이리하여 석도에는 또 한번 새로운 활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최진성은 이 기세로 냅다 밀면 올가을에는 진지공사를 얼마든지 마무리할수 있으리라는 가슴뿌듯한 생각으로 마지막발파를 앞둔 공사장을 향해 걸음을 다우치였다.
어디선가 와 하는 웃음소리가 터졌다.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한발파를 끝낸 병사들이 작업장에 빙 둘러앉았는데 가운데는 싸리안전모를 쓴 정치지도원이 앉아있고 영범이가 뒤더수기를 벅벅 긁으며 서있다. 작업의 여가시간마다 벌어지군 하는 문답식학습인데 아마 영범이가 왕청같은 대답을 한 모양이였다.
《자, 그럼 이번엔 누가 대답해보겠소?》
정치지도원이 병사들을 빙 둘러보자 일전에 문어에게 손가락을 물렸던 막냉이가 버쩍 일어섰다.
《옛, 제가 대답하겠습니다. 우리 당이 제시한 군건설의 4대전략적로선은 전군간부화, 전군현대화, 전민무장화, 전국요새화입니다! 이상입니다!》
《그러면 전군간부화란 무엇이요?》
자리에 앉으려는 막냉이에게 정치지도원이 재차 물었다.
《옛! 모든 군인들이 한등급이상의 높은 직무를 수행할수 있게 준비하는것입니다!》
《그럼 전군간부화방침을 실현하기 위해 동무
《옛, 저는… 분대자동보총수로서 저보다 한등급 높은 분대장동지의 임무를 원만히 수행할수 있게 준비되여야 합니다.》
《그건 왜 그래야 하오?》
《옛, 준엄한 싸움판에서 분대장동지가 희생되는 경우…》
신바람나게 엮어나가던 막냉이가 《아이쿠.》 소리를 지르며 허리를 꺾었다. 옆에 앉았던 분대장이 막냉이의 장딴지를 꼬집어놓았던것이다.
《여, 희생되긴 누가 희생된다구 그래? 이 분대장이 동무보다 먼저 죽는단 말이야?》
병사들은 또다시 폭소를 터뜨리며 배들을 그러안았다.
멀찌감치 병사들의 등뒤에 앉아있던 석철룡이도 어깨를 털썩거린다.
《옳소, 명남동무가 분대장의 임무를 수행할수 있게 준비하겠다는것은 좋지만 분대장이 먼저 희생될수 있다고 한건 내 보기에도 별로 신통한 생각같지 않소.》
정치지도원이 안경너머로 막냉이를 건너다보며 웃음을 머금고 이야기하자 병사는 아예 울상이 되여버렸다.
정치지도원은 안경을 추스르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는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수많은 적들과 대치하고있다, 이런 형편에서 우리는 사회주의건설도 해야 하고 조국보위도 해야 한다, 한손에는 총을 쥐고 다른 한손에는 마치를 들고 사회주의건설을 내밀다가 일단 적들이 덤벼들면 전체 인민이 군복을 입고 전장에 나서야 한다, 이로부터 전민무장화로선이 제시되는것이다, 그러나 어제까지 공장에서 일하던 로동자들이 오늘 군복을 입었다면 그들의 군사지휘는 누가 하겠는가, 그때는 분대장동무가 소대장이 되여 한개 소대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면 그 분대는 누가 지휘하겠는가, 바로 명남동무가 해야 한다, 이래서 전군간부화로선이 제시되는것이다. …
최진성은 시무룩이 웃었다.
저 《쁠류스안경》이 재간은 재간이다. 뻔히 알것같으면서도 책대로 외우자면 무척 까다롭고 알쑹달쑹한 리론문제들을 삼척동자도 알아듣게 구수한 이야기로 설명하는데는 최진성도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정치지도원의 이야기는 어느사이 《전군현대화》를 거쳐 《전국요새화》로 넘어갔다.
《…바로 이렇게 되여 그 로선관철의 한 부분인 석도진지공사가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여기서 삽과 곡괭이, 정대와 함마를 들고 암반과 싸우고있는것이 아니라 당의 군사로선을 관철하기 위한 총포성없는 전선에서 명령을 집행하고있는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동무들속에서는 아직도 자기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전투부대에 있는 동무들만 부러워하고있다는데… 강일석동무!》
한쪽구석에 고개를 틀어박고 앉았던 1소대 자동보총수가 푸시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런 동무들이 있소, 없소?》
그는 잠시 쭈밋쭈밋하더니 고개를 들고 되알지게 말하였다.
《한명 있습니다!》
《그게 누구요?》
《바로 접니다!》
여기저기서 키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음, 알긴 아는구만. 그래 이제라도 전투부대에 보내달라오?》
《가더래도 당에서 맡겨준 공사과제를 다 끝내고 가겠습니다.》
자동보총수가 제자리에 쑥 앉자 정치지도원은 느슨한 미소를 짓고 이야기하였다.
《동무들, 공사가 끝나면 우리도 곧 전투부대에 인입될것입니다. 군단정치위원동지가 나와 직접 약속했소. 그땐 아마 일석동무가 다른 부대에 가겠다고 한걸 단단히 후회하게 될거요.》
최진성이 스적스적 다가오는것을 띄여본 정치지도원이 오늘 문답식학습은 이만하겠다고 끝을 맺었다. 석철룡도 진성이 다가온것을 인차 눈치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허리를 펴면서 《일어섯!》구령을 내리려는것을 최진성이 손을 들어 제지시키고 다음작업을 시작할데 대한 짤막한 임무를 주었다. 군인들은 소대별로 작업장으로 진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