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5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11
(1)
차수정의 머리를 손질하던 방송화는 얼핏 창문쪽으로 눈길을 돌리였다. 커다란 벽거울을 통하여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미용실마당에 들어서는것이 보였던것이다.
그는 쥐고있던 꼬리빗을 얼른 수정의 머리에 꽂아놓고 문밖으로 나갔다. 남편은 어찌된 영문인지 자전거를 타고 한손으로는 자전거를 끌면서 불편한 자세로 마당에 들어섰다.
《무슨 자전거를 두대씩이나 끌구 다녀요?》
방송화는 눈치있게 자전거를 세워주며 물었다.
《하나는 기사장거요.》
서정관은 오후에 내갈테니 기사장의 자전거를 미용실안에 들여놓으라고 일렀다. 방송화의 눈살은 대번에 꼿꼿해졌다. 그는 퇴매지게 물었다.
《당신은 뭐 기사장 하인이요?》
안해의 뒤틀린 목소리에 서정관은 눈을 지릅떴다.
《기사장이 방금전에 해산했기때문에 그러니 딴말말구 들여다놓소.》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으름장을 놓았다.
남편의 말에 방송화의 작은 눈은 커졌다.
《예에? 기사장이 해산했다구요?》
팥알같은 그의 눈동자는 재미나서 춤추기 시작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서정관은 자전거에 올라 씽 가버렸다.
남편의 뒤모습을 지켜보던 방송화는 웃음집이 흔들거려 흐드득 하고 웃었다. 새로운 이야기거리가 생긴것이 못내 즐거웠다.
(기사장이 아일 낳았다구? 이런 참…)
방송화가 기사장에 대하여 곱지 않은 마음을 품고있는데는 그가 남달리 뒤소리를 좋아하고 남의 허물을 잘 들추어서만이 아니였다.
송영숙이 처음 기사장으로 왔을 때 방송화는 남편과 일심이 되여 그를 비웃고 미워하였다. 하면서도 겉으로는 그와의 관계를 잘 가지려고했었다. 지금껏 공장일군들의 아주머니들에게 미용봉사를 해주면서 가깝게 지낸것처럼 새로 온 젊은 기사장도 자기의 단골손님으로 만들어서 그를 떡주무르듯 하고싶었던것이다.
그런데 송영숙은 한번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자기가 미용사라는걸 몰라서 그러는가 하여 만나는 기회때마다 잊지 않고 미용실에 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맙다는 말만 할뿐 전혀 반응이 없었다.
방송화는 은근히 안달방아를 찧었다. 미용사의 눈으로 볼 때 기사장은 잘생긴데다가 머리숱이 많고 머리모양도 남달리 고와서 조금만 품들이면 눈에 띄게 아름다운 녀성이다.
기사장의 머리를 미용해준다는 그 한가지로써 많은 녀성들을 자기에게로 끌수 있고 또 기사장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오고가고하느라면 좋은 일이 많을것이라고 타산하였다. 그래서 더욱 욕심이 났다.
그런데 얼마후에 기사장이 한인민반에서 살고있는 리발사녀인에게서 미용을 한다는걸 알게 되였다. 그것도 저녁시간에 집에 초청한다는것이였다. 알아보니 그 리발사는 도소재지에서 미용사를 하다가 이곳으로 시집온 젊은 녀인이였다.
그때부터 방송화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기사장을 더 비난하고 헐뜯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그는 자전거를 끌고 미용실에 들어서기 바쁘게 손과 혀바닥을 동시에 만가동시켰다.
《녀자가 매련두 없지. … 남보기 부끄럽지도 않을가? …》
그는 입을 비죽거리며 험담을 시작하였다.
자기 생각에 옴해서 그린듯이 앉아있던 차수정은 의아한 눈길을 들었다.
《누가 아일 낳았대요?》
호기심이 촉발된 관중의 눈길앞에서 더욱 신바람이 나는 방송화였다.
《누군 누구겠어? 기사장이지. 요즘 별로 둥둥해서 다닌다 했더니…》
《기사장이 정말 아일 낳았대요?》
수정은 한창 미용중이라는걸 깜박 잊고 홱 돌아앉으려다가 다시 거울을 마주하였다. 그는 거울속에 비친 방송화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온 공장이 들썩할거야. 헌데 그 녀잔 남들이 손가락질하는걸 모르는 모양이지? 흥! 겉으로는 원칙입네- 하면서두 밑구멍으로는 호박씨만 까면서…》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꺼내여 험담을 늘어놓던 방송화는 차수정이 기사장과 보통사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약간 주춤하였다.
수정이 다사스러운 녀자는 아니지만 그의 입타격만은 당할자가 없다는걸 알고있는터여서 은근히 두렵기까지 하였다.
아닐세라 잠자코있던 수정의 성격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였다.
《누이!》
수정은 본남편의 둘째누이인 방송화를 예전대로 불렀다.
《남편 있는 녀자가 아일 낳은게 무슨 흉이나요? 나같으면… 남들 혀바닥에서 보풀이 일더라도 아일 낳았으면 좋겠군요. 흥!》
그는 속시원히 코방귀를 뀌였다.
워낙 눈에 거슬리거나 어스크레한것을 까밝히고 찔러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그는 방송화에게 자극을 줄 말이 더 없을가 하고 궁리하였다. 험담을 즐기는 그를 푹 찔러주고싶은데 적중한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아 속이 요글요글해났다.
사실 수정의 말은 진심이였다.
그는 아이를 낳은 송영숙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랐다.
세상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것보다 더 큰 녀성의 의무가 무엇이랴. 세상에 만물의 령장인 인간을 창조하는 어머니보다 더 성스러운 사람이 누구랴. …
생각할수록 송영숙을 헐뜯는 방송화가 밉살스러웠다. 그의 손길 또한 역스러웠다. 수정은 자기의 머리가 별로 흉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왜 벌써?》
수정에게서 보기 좋게 한꼴 먹고 메사해졌던 방송화는 다시 앉으라고 손목을 까딱까딱했다. 아무리 괘씸한 녀자라 해도 자기를 찾아오는 손님에 대해서는 최대의 봉사성을 기울여 인기를 끌려고 애쓰는 그였다.
《잠간이면 멋있게 될텐데 조금만…》
그는 애교스럽게 웃었다.
수정은 한쪽입귀를 실그러뜨리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멋있으면 어쩌나요? 별루 곱지 않아두 뒤소릴 듣군 하는데… 안그래요?》
그는 또 한번 퉁을 놓았다.
수정이 공장을 위해 책 한권이라도 더 받으려고 군출판물보급소에 자주 찾아가고 보급소장을 몇번 집에 초청한 일을 두고 바람이 나서 뭇사내들을 끌어들인다고 뒤소리를 했던 방송화였다.
칼로 입은 상처는 아물어도 혀바닥이 낸 상처는 아물지 않는 법이다.
그 말이 낸 상처때문에 오래동안 모대김을 하였던 수정은 오늘 이때라싶게 혀바닥침을 휘둘렀던것이다.
방송화는 또다시 말문이 막혀 붕어입이 되고말았다.
그는 무안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방송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자전거는 내가 건사했다가 돌려주겠어요.》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온 그는 이 길로 곧장 송영숙이를 찾아갈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해산하는 날까지 쉬지 못하고 생산지휘를 위해 뛰여다니던 그가 방금전에 해산을 하고 쓰러졌을텐데 이제 찾아가면 그를 위해서도 그렇고 위생학적으로도 나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더우기 빈손으로는 가고싶지 않았다.
(며칠 지나서 애기옷을 사가지고 가야지. 참, 산모의 간호때문에 어머니가 바쁠텐데 당분간 경아는 내가 데리구있어야지. …)
큰엄마, 큰엄마 하면서 찰찰 감겨도는 경아의 모습을 그려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음순간 아들일가, 딸일가 하는 호기심이 머리를 쳤다.
아들, 아들 하는 경아 할머니의 소원대로 떡돌같은 아들을 낳았으면 얼마나 경사랴. 눈앞에는 춤이라도 출듯 하는 문춘실의 모습이 보이는것같았다.
하지만 무우와 아이는 뽑아보아야 안다는데… 그러나 아들이든 딸이든 아이를 낳은 송영숙이 그저그저 부럽기만 하였다.
나이 마흔살이 되도록 아이를 낳아보지 못한 그에게는 아이처럼 부러운것이 없었다.
언제인가 문춘실은 이렇게 말했다.
《수정아! 너두 수의사와 살림을 합치구 고운 애기도 낳아라. 그래야 사는 재미두 있구 보람두 있을게 아니냐? 네가 아일 낳으면 내가 다 시중들어주겠다.》
진정이 담겨진 그 말을 되새겨보던 수정의 눈앞에는 문득 리병우의 누르퉁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은 지난가을 공장 부업밭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시켜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