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 회)

제 3 장

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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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최광은 군소재지입구에 자리잡고있는 경무단속초소에 예비부속품들을 장만해주면 하다못해 군내에 멎어서는 차들만이라도 도와줄수 있을것같았다. 사업소창고에도 예비가 풍족한것은 아니였지만 앞으로 부속품생산기지를 꾸려 보충하기로 하고 먼저 차부속들을 날라다 경무초소에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어느날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차사업소에 내려와 부속품창고를 돌아보았다.

《설마 했더니… 부속품들을 모두 경무초소에 가져다주었다는게 사실입니까?》

《군대차들이 부속이 없어 고생하길래 좀 가져다주었소. 모자라는것은 인차 보충해놓겠소.》

최광의 대답을 들은 부위원장은 궁근 헛기침을 짖었다.

《글쎄… 군대를 돕는거야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사람들이 뒤에서 두루 말들이 있습니다. 국가물자를 가지고 낯내기를 하는게 아닌가 하구요. 물론 저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습니다만 지배인동지야 그런 일에 마음을 쓰기보다 당에서 맡겨준 일을 직심스럽게 잘하는게 오히려 과오를 빨리 씻는 길이 아닐가요?》

최광은 모멸감에 얼굴이 달아올랐으나 꾹 눌러버렸다.

《어쨌든 부속품때문에 운수계획을 미달한다는 소리가 나면 재미가 적을것같아 미리 충고를 드리는겁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위원장은 꼿꼿한 뼈가 배긴 말을 남겨놓고 떠나갔다.

최광은 사람들의 오해가 두렵고 괴로왔다. 그럴수록 억척같이 일을 하였다. 젊은이들과 꼭같이 괭이질도 하고 진흙을 이겨 토피도 빚고 제재칸에 들어가 아름드리통나무를 그러안고 배밀이도 하였다. 그렇게 일한 보람이 있어서 작고 소박한것이기는 하지만 자체부속품생산기지의 건물이 완성되고 변압기와 전동기도 들여놓았다.

이제 이 선반만 가져가면… 물론 베트와 후라이스반, 주물로를 비롯해서 부족한 설비들은 더 장만해야 할것이다.

장거리운행에 지친듯 눈을 비비적거리던 창일이가 깊은 생각에 잠긴 최광을 슬쩍 곁눈질해보더니 《저 …》하고 머밋머밋 입을 열었다.

《지배인아바이, 이전에 군대에서 총참모장을 했다지요?》

최광은 대답대신 시무룩이 웃어보였다.

《글쎄 아바이가 군대들 일에 별로 극성이다 했지요.》

《허, 녀석두… 그건 내가 총참모장이였기때문이 아니라 군대일을 돕는게 공민의 본분이기때문이야. 군대가 있고야 나라도 있거던.》

여느 사람이 말을 걸었으면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최광이였지만 갈수록 정이 폭폭 드는 이 청년앞에서는 묵묵부답을 할수가 없었다. 지배인이 이쯤 응수를 해주자 창일이는 더 신이 나서 한가지 더 물어도 좋은가고 푸접을 들이였다.

《지배인아바인 항일무장투쟁때 어버이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싸웠다는데 그것두 맞아요?》

최광은 괴로운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창일은 발동기소리때문에 그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지배인의 침묵을 말없는 긍정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였다.

《야, 그것두 맞구만요. 그러니 아바인… 야! 얼마나 영광이예요? 수령님가까이에서 잠두 자구 식사두 하구 싸움두 하구…》

창일이는 제 흥에 잔뜩 겨워서 최광이 대답을 하건말건 줄폭탄으로 질문을 던졌다. 수령님께서 노하시면 눈에서 번개불같은것이 인다는데 사실인가? 하모니카를 그렇게 잘 부신다고 하는데 들어본적이 있는가? 수령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실 때가 있는가?

최광은 그 모든 물음들에 통채로 대답하듯 창일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창일이, 우리 수령님은 창일이가 얻어들은것보다 몇천만배나 더 위대한분이시야. 뭐라고 말해야 할가? 우리들과 꼭같은 보통분이시면서두 우리 천만전사들을 다 합쳐도 비길수 없는 특별한분이시라고 할가? 하늘이 낸 영웅이시고 뜨거운 어버이이시지. 난 문필가도 아니니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겠소. 그래서 몇해전에 회상기를 쓸 때두 애를 먹었지.

회상기를 쓰던 때의 일을 생각하니 젊음에 넘치신 김정일동지의 따뜻한 미소가 떠오른다.

최광동지는 군사학교 교장사업을 한것만큼 함께 데리고 일하던 교원과 함께 글을 쓰면 더 헐할것이라고 하시며 몸소 군사학교에까지 찾아가 글을 잘 쓰는 로교원을 집에까지 데리고오셨던 김정일동지

자기가 첫 글을 써냈을 때 친히 서툰 문장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고 최광동지가 글을 잘 쓰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좀 멋을 부린것같다고, 험로역경을 헤쳐온 로투사답게 글을 소박하고 진실하게 써야 후대들에게 간고했던 투쟁의 나날을 실감있게 안겨줄수 있다고 어휘표현과 문구 하나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가르치심을 주시던 그이

자기의 엄중한 과오를 두고 함께 싸우던 동지들까지 경멸하고 외면할 때 매일과 같이 인민경제대학 당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학습과 생활에 대해 알아보시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진성이에게 부모님들이 맥을 놓지 말고 투사답게 살기 바란다는 고무와 격려의 당부도 전해주신분…

언제면 그 자애에 넘친 안광을 떳떳이 다시 마주뵙게 되랴, 나에게 그런 날이 다시 오랴 하는 생각에 최광의 눈가에는 맑은것이 맺히였다. 최광은 곁에 앉은 창일이 볼세라 눈굽에 맺힌 눈물을 팔소매끝으로 슬쩍 닦아냈다.

최광이 선반을 싣고 차사업소에 들어서니 경비를 서던 늙은이가 마중나오며 집의 아주머니가 아까부터 몇번이나 사업소에 나왔다 들어갔노라고, 방금전에도 또 왔다갔는데 집에 무슨 급한 일이 생긴것같다고 전하였다. 최광은 마음이 불안해지는 속에서도 싣고온 설비를 부리워 생산현장에 들여놓는 작업까지 다 마무리하고서야 집으로 갔다.

김옥순은 부엌아궁앞에 쭈그리고앉아 눈물을 흘리고있다가 불깃해진 눈두덩으로 최광을 맞더니 어디 갔다가 이제야 왔는가, 왜 좀 더 빨리 오지 못했는가고 일장 통곡을 하였다. 최광은 떨리는 손으로 안해를 붙들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말을 해야 알게 아닌가고 다그쳤다.

그이께서 김정일동지께서 오셨댔어요. 저렇게 부뚜막수리두 해주시구 여기 이 부엌칼까지 숫돌에 갈아주시면서 한겻이나 당신이 오길 기다리시다가 조금전에 떠나셨어요. 어쩌면 당신은… 이제야 온단 말이예요?》

최광은 자기의 가슴을 쾅쾅 치는 안해를 부둥켜안으며 푸륵푸륵 경련이 일어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몸안에 흐르던 더운 피가 한꺼번에 왈칵 뻗쳐오르는듯 목이 꽉 부어나고 이마전이 징징 울었다.

그이께서 오시다니!

이 궁벽한 산골에 나같은 사람을 찾아 먼길을 달려오시고 한겻동안이나 기다리시다니!

흙매질이 터진 짬으로 연기가 자꾸 새여나와 안해가 물절반 눈물절반으로 밥을 짓는것을 보면서도 언제한번 손을 댈 생각을 못했던 아궁을 그이께서 몸소 고쳐주시다니!

최광은 그이께서 자기를 기다리시며 하많은 생각을 담아 부엌칼을 갈고 또 가셨을 숫돌을 으스러지게 그러쥐고 끝끝내 오열을 터뜨렸다.

량주가 그렇게 한참이나 울고났을 때 김옥순이 눈굽을 씻으며 그이께서 집에 오신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일이 있어 이곳에 왔다가 당신이 보고싶어 들렸다고 하시더군요. 찬밥이나 한술 달라고 청하시는데 어디 그이께 대접할만한게 있어야지요. 어쩔수없이 강낭밥에 부루쌈만… 그런데두 그이께선 별맛이라고 하시며 얼마나 달게 드시던지. … 난 그저 자꾸 눈물만 나와서…》

최광은 아직도 거두지 않은채로 부뚜막 한구석에 올려놓은 자그마한 네모밥상을 내려다보았다. 강낭밥이 두어숟갈 되게 남은 밥사발, 맹물밖에 떠놓지 못했을것이 분명한 말쑥한 국사발, 부루이파리가 몇개 깔린 손바닥만한 비닐접시와 식료상점에서 사온 막된장 한종지…

그렇게 귀한분, 그리도 고마운분께 이 최광이내외가 대접할수 있었던것이 고작 이뿐이였단 말인가!

항일무장투쟁시기도 아니고 전쟁시기도 아닌 이때에, 아무리 농업군이라고 해도 한개 군급기업소의 지배인인 이 최광이네 집에서!

너무하구나, 너무해! 어쩌면 운명은 나에게 이다지도 가혹한 벌을 내린단 말인가!

김옥순은 네모밥상모서리를 두손으로 그러쥐고 흐득흐득 흐느껴우는 남편의 등어리에 손을 얹었다.

《여보, 그이께서 떠나시면서 하신 말씀을 난 한글자두 놓치지 않구 다 새겨두었어요.》

김옥순은 마치도 그이께서 최광을 앞에 앉혀놓고 말씀하시듯 정말로 한마디한마디를 또박또박 외웠다.

《밥사발 한개 변변한것이 없던 산속에서도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온 어머니가 집을 이렇게 꾸리고 사는것을 보니 섭섭합니다. 물론 이곳 일군들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나는 어쩐지 최광동지나 옥순어머니가 처벌을 받았다고 해서 맥을 놓고 주저앉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령님께서는 최광동지가 혁명화를 내려왔다고 하여 잊으신적도 없고 차별하신적도 없습니다. 수령님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최광동지가 혁명의 먼길을 함께 가야 할 혁명동지입니다. 이것은 나의 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처벌을 받았다고 하여 주눅이 들어 생활하는것은 사람이 되라고 아픈 매를 드는 어머니에게 또 한번 아픔을 주는것으로 될뿐입니다. 나는 최광동지가 지난날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싸워온 혁명가답게 자기가 맡은 초소에서 당을 받들어 충직하게 살것이라고 믿고 떠나겠습니다.》

최광은 자신을 더 억제하지 못하고 부엌문을 차고나갔다.

그리고는 토방우에 올라서서 저 멀리 평양쪽으로 뻗어간 길을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굳어져버린 눈동자에서 맑은것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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