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 회)

제 3 장

봄의 의미

8

(1)

 

최광은 운전사 창일이와 함께 은률군의 경내에 들어섰다. 부속품예비를 자체로 마련하는데 필요한 설비를 해결하기 위해 화물자동차를 타고 수백리 떨어진 북천자동차공장에 다녀오는 길이였다. 올해 갓 스물세살인 창일이는 자그마한 군급차사업소에서 무슨 부속품생산까지 하겠는가고 불평을 부리였지만 정작 선반을 싣고 돌아오면서부터는 사기가 충천하여 차를 몰았다. 그자신도 국가에서 대주는 부속품들에만 매달려 걸핏하면 차를 세우군 하는 사업소의 실태때문에 어지간히 애를 먹었던것이다.

최광은 은률군에 내려온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피동에 빠져있는 사업소실태를 제꺽 료해하고 축전지나 기관같은것은 몰라도 치차류나 웬간한 예비부속 같은것은 자체로 깎아서 보충하기로 결심하고 생산공정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그에게 그런 결심을 더 굳혀준것은 지배인사업을 시작한지 이틀째되는 날인가 창일이와 함께 군안의 공장, 기업소들에 배치된 화물자동차들의 가동상태를 점검하러 다니다가 길가에서 만난 병사들이였다.

어슬녘이 되여 차사업소로 돌아오던 최광은 길옆에 세워놓은 군대화물차의 기관실뚜껑이 열린것을 보고 몇발치앞에 차를 멈춰세웠다.

두손이 온통 그리스투성이가 된 하사가 휘딱 제껴놓은 기관실뚜껑아래 군모를 삑 돌려쓴 머리를 틀어박았고 그곁에는 시동돌리개를 어깨에 둘러멘 상등병이 송아지 우물구멍 들여다보듯 기관수리하는것을 기웃이 들여다보고있었다. 최광은 그들가까이로 다가가며 물었다.

《어디가 고장이요?》

기관실에 올라앉은 하사는 들은척만척하고 그옆에 붙어섰던 애숭이 상등병이 반색을 지으며 돌아섰다.

《배전기회전자가 부러져 이 고생이 아닙니까? 아직도 갈길이 먼데…》

《부대가 어디 길래?》

《우리 부대는…》

상등병이 말을 떼는 찰나 《여!》하고 마뜩지 않게 부르는 소리가 우에서 내리꼰졌다.

《사민들앞에서 아무 말이나 망탕…》

하사는 차머리에 걸터앉았던 엉치를 떼며 훌쩍 뛰여내렸다.

그리고는 군모뒤에 꽂았던 담배 한가치를 뽑아 불을 붙여물며 뒤쪽에 멈춰선 화물차를 슬쩍 바라보더니 입귀 한옆으로 연기를 피씩 뿜어던지면서 최광을 능청스럽게 쳐다보았다.

《아바이두 운전사인것같은데 자기 배전기라두 뽑아주겠습니까?》

최광은 《사민》이요, 《운전사》요 하는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인차 자기를 다잡았다. 아까 군대차를 보고 내려설 때까지만 해도 자기의 마음속에 《총참모장》이 자리잡고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눈언저리가 불로 지지는것처럼 뜨거워났다.

《대답을 못하시는걸 보니 아바이두 그저 그렇구만요. 그럼 같은 운전사인것을 고려해서 담배나 있으면 몇대 주고 갈길을 가보십시오. 괜히 군사비밀을 이것저것 묻지 말구요.》

최광은 검댕이투성이의 하사를 슬쩍 밀어내며 차앞에 붙은 번호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틀림없는 37사의 번호였다.

《아직 수백리를 더 가야겠군. 부대가 광도리에 있지?》

푸실푸실 연기만 내뿜던 하사가 불에 덴것처럼 후들쩍 놀랐다.

《하, 이 아바이가 보통이 아니다? 아바이 혹시 간첩 아니요?》

하사가 익살을 부리느라고 한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옆에 있던 애숭이가 시동돌리개를 두손으로 바싹 감아쥐며 슬그머니 다가왔다. 최광은 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여 하사의 손에 쥐여주며 털털 웃었다.

《간첩은 무슨… 나두 한때 그 사단에서 복무했어.》

한사단에서 복무했다는 최광의 말에 운전사와 조수는 외지에서 고향사람을 만나기라도 한것처럼 대번에 찰떡같은 친구들이 되여버렸다.

《야, 그랬댔구만요. 그런걸 우린… 이자는 정말 안됐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단 어디서 무얼 하셨습니까?》

최광은 자기들의 옛 사단장도 몰라보는 풋병아리들의 엉치를 한대씩 쥐여박고싶은것을 꾹 참고 그저 동무들처럼 운전사를 했노라고 둘러치고나서 창일이에게로 뛰여갔다.

《예비부속창고에 배전기 있지? 얼른 가서 창고장에게 이야기하구 여기로 하나 가져오라구. 난 여기서 기다릴테니.》

창일이를 보내고난 최광은 다시 그들에게로 왔다.

《좀 기다리라구. 배전기를 가지러 갔으니까. 회전자가 부러졌으면 교체해야지 여기서 꿀지락거린다구 무슨 수가 있나?》

하사는 기름발린 손등으로 코밑을 뻑 문대며 최광을 희한하게 쳐다보았다.

《아바이 정말 다시 보게 되는데요? 도대체 누구십니까?》

애숭이상등병도 손에 들었던 시동돌리개를 땅바닥에 내려세우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최광을 올려다보았다.

《나야 그저 지나가던 사람이지. 그런데 동문 운전을 한두해만 한것같지 않은데 장거리운행을 떠나면서 차점검을 안했나? 배전기같은거야 큰것두 아닌데 미타하면 예비를 차구 떠났어야지.》

최광의 핀잔에 운전사와 조수는 둘 다 얼굴을 비틀어돌리며 어이없는 웃음을 웃었다.

《아바이가 운전사를 할 때는 어쨌는지 몰라라 지금 예비부속품 같은게 어디 있는줄 압니까? 우리 차관리장동지가 부속품을 해결해보겠다구 민족보위성산하 자동차공장이라는델 가서 살다싶이하지만 점화전 한개 못받아가지고 돌아옵니다. 부속품을 접수하러 가면 차라리 새차를 받아가라고 한다나요. 듣자니 이전에 총참모장을 하던 사람이 관료주의를 부려서 차수리공장을 모두 생산공장으로 만들어놨다더군요. 이거야 자동보총 한정에 탄창을 서너개 가지고나가면 될 병사에게 자동보총을 서너자루 메워 내보내는 격이 아닙니까? 군벌관료주의라는게 바로 이런거란 말입니다.》

창일이가 가져온 배전기를 갈아끼운 군대운전사들은 거듭거듭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나갔다. 그러나 최광의 가슴에 못박힌것은 고맙다는 인사보다 《탄창대신 자동보총을 서너개 메워 내보내는》 차공장에 대한 힐난이였다. 바로 공장을 그렇게 만드는데 한몫 단단히 한 이전 총참모장이 자기였다는것을 알았다면 그 병사들이 뭐라고 했을것인가.

최광은 아픈 가슴으로 지난날을 돌이켜보았다.

군대가 언제까지 나라에 차를 달라고 손을 내밀겠는가, 우리가 자체로 차를 만들자, 만들바에는 《승리》자동차공장보다 생산대수를 더 늘이자고 하던 김창봉의 희떠운 롱간에 얼리워넘어가 군대안의 차수리공장들과 부속품생산공정들을 모두 헐어 자동차공장을 만들었던 지난날의 과오가 이렇게 자기에게 부닥칠줄은 몰랐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코 나라를 위한 일도 아니였고 수령님의 짐을 덜어드리는 길도 아니였다. 인민경제대학 단기반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느꼈지만 베는 석자라도 틀은 틀대로 차린다고 계획경제를 중추로 하는 사회주의경제운영에서 밥가마를 많이 걸어놓으면 걸어놓을수록 자재와 자금이 헛되이 소모되고 전문기술도 그만큼 퇴보하게 된다.

김창봉이 인민군대에서 자동차를 자체로 만들겠다고 한것은 군대를 국가안의 《국가》로 만들려는 너절한 야심때문이였지만 자기가 그에 동조한것은 바로 경제에 대한 무식때문이였다.

그로 하여 인민군대의 운수기재들이 부속품이 모자라 애를 먹고 부대, 구분대들의 전쟁준비에 지장을 받을것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수령님께서 또 마음을 쓰고계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살이 떨려 견딜수가 없었다. 최광은 자기가 지은 죄를 있는 힘껏 조금이라도 씻고싶었다. 그 하사의 말이 절반만 사실이라고 해도 예비부속이 없어 길에 멎어서는 군대차들이 한둘이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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