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 회)

제 3 장

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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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류수라더니 칠흑같던 머리카락 한복판의 가리마를 따라 희끗희끗한 서리가 설피게 앉았다. 흘러간 세월도 세월이지만 남편을 따라 농촌에 내려와서 자진 농사일을 한다니 이래저래 고생도 많을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신께서 좀 더 일찍 찾아왔더라면 옥순어머니의 흰 머리카락이 다문 얼마라도 적어지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마저 드시여 마음이 저려오시였다. 한참만에야 마음을 진정한 김옥순이 그이의 손을 잡아 방으로 이끌며 령감이 늘 장군소리를 하더니 정말 복도 없지 하고 울먹거렸다.

《최광동지가 어디 가셨습니까?》

《한 열흘전에 북천에 있는 자동차공장으로 떠났다우. 예비부속품때문에 노상 나가살지요. 자체로 생산기지를 꾸린다는데 이제 자동차공장에만 갔다오면 웬만한 부속품들은 만들수 있는가봐요.》

김정일동지께서는 토방에 걸터앉으시며 이렇게 작은 군에서 부속품을 얼마나 쓰기에 자체생산기지까지 꾸리는가, 우에서 부속품공급이 잘 안되던가고 물으시였다.

《아마 군대차들이 부속이 없어서 군경내에 자꾸 멎어서는 모양인데 그걸 보구 그냥 지나치질 못해서 일판을 벌려놨지요.》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이 뭉클해나시였다.

인민군당 제4기 제4차전원회의 확대회의가 있은 후 차부속을 대량생산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고있지만 아직 그 수효를 다 충당하지 못하고있다. 군대차들에 차부속이 모자라게 된 원인을 누구보다 잘 아는 최광이 이런것을 그저 지나칠리가 없다.

몸은 비록 자그마한 농촌군의 차사업소에 내려와있어도 총참모장시절의 마음을 잃지 않고 군대운수사업의 걸린 고리를 하나라도 풀어보자고 애쓰는 최광의 얼굴이 금시 보이는것만 같으시였다.

김옥순은 그이의 바지가랭이에 붙은 털가막사리들을 뜯어내기도 하고 흙이 묻은데는 수건으로 문대기도 하면서 속토정을 하였다.

《그런데 글쎄 어떤 사람들이 령감더러 이제는 총참모장도 아닌데 자기 맡은 사업이나 잘하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차사업소지배인이 국가물자를 가지고 제 낯내기를 한다고 뒤말들을 더러 하는 모양이예요. 내 그래서 령감을 단단히 비판했지요. 그런 쓸데없는 소리에 마음 흔들리지 말고 일단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야 한다구요. 부속품을 자체로 만든 다음에야 군대차에 넣든 사회차에 넣든 이게 다 수령님을 받드는 길인데 무서울게 뭐가 있는가구 했더니 이젠 그런 말을 더 안한다우.》

김옥순은 문득 그이앞에서 푼수없이 제 자랑을 한것처럼 느껴졌는지 입을 가리며 어줍게 웃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마음이 한껏 흥그러워나시여 함께 웃으시였다.

《하하하… 어머니가 아주 말씀을 잘하셨습니다. 빨찌산시절처럼 그렇게 이따금 비판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재미나게 사셔야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쩍 힘이 나신듯 토방에서 일어서며 부엌문이 달린쪽으로 내려서시였다. 김옥순이 덴겁을 하며 달려와 그이앞을 막아섰다.

《부엌을 거두지 못해서… 방에 들어가 앉아계세요. 내 얼른

김정일동지께서는 둥그런 고리모양의 부엌문손잡이를 놓지 않으신채 흔연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어머니, 갑자기 제앞에서 무슨 내우를 하시면서 그럽니까. 저야 이전에도 오다가다 댁에 들려서 어머니, 시원한 김치 한그릇 좀 주십시오. 하면 선자리에서 사발에 푹 퍼담아주는 김치물을 달게 마시군 했는데 오늘도 그저 집에서 자시던대로 한그릇 얻어먹읍시다.》

그이께서 끝내 문을 열고 부엌에 들어서시는데 매캐한 그을음냄새가 확 풍겨나왔다. 흙매질이 툭툭 터갈라진 아궁은 까맣게 그슬었고 방금 불이 사그라진듯싶은 재속에서는 아직도 실연기가 끄물끄물 피여올랐다.

나무가 바른 고장이여서인지 한구석에는 아궁에 먹이다가 남은 짚검부레기와 당년초가지들이 푸설푸설하게 흐트러졌는데 얼핏 눈에 띄우는것은 자그마한 찬장과 그옆에 기대여세운 망돌 한짝, 수지다반을 덮어놓은 오지독 두개와 상보를 씌운 네모밥상뿐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저으기 안색을 흐리시며 오지독우에 덮은 수지다반을 들어올리시였다. 부엌안이 어두워서인지 독안이 텅 비여있는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바닥에 무엇이 깔려있는것같아 손을 넣어보니 두어되박이나 될가말가한 강냉이쌀이 쥐여진다. 또 다른 독에는 절반가웃에 막돌 서너개를 지질러놓았는데 시크무레한 오이절임냄새가 풍겼다. 김옥순은 모처럼 찾아오신 그이께 볼썽사나운 집안꼴을 보여드리게 된것이 부끄러워서 손에 감아쥔 타올수건을 비틀며 어쩔바를 몰랐다.

《식량은 이게 답니까?》

그이께서 오지독우에 뚜껑을 도로 덮으며 조용히 물으시였다.

《저 저는 농장에 나가다보니 가을분배를 받을 때까진 아직… 하지만 일없습니다. 아무렴 쌀고장에서 밥을 굶겠습니까.》

그러니 최광이 국가에서 받는 식량을 가지고 두사람이 살림을 하고있는셈이다. 그나마 고지식한 최광이 출장을 떠날 때마다 꼭꼭 량표를 떼가지고가겠으니 집안에 쌀이 모자랄수밖에 없을것이다.

문득 해방직후에 어머님께서 늘 쌀때문에 고생하시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국가의 수반이시였지만 일반공무원들이 받는 식량과 생활비외에 따로 더 들여오시는것이 없었다. 그것을 가지고 온 가족과 하루도 번짐없이 찾아오는 손님들, 멋모르고 문을 두드리던 고아들, 류랑민들, 심지어 뭇사람들의 눈을 피해 찾아들어온 두명의 일본처녀들까지 돌보느라 어머님께서는 종종 가마치우린 물만 들군 하시였다. 이따금 닭알만한 누룽지 하나를 자신의 손에 쥐여주시면서 오늘은 이것으로 한끼 때자꾸나 하실 때면 항상 밝은 웃음만 넘치던 어머님의 눈가에도 어쩐지 시름같은것이 서리군 했었다. 그러면서도 언제한번 남다른 특혜를 바라거나 그 누구에게 손을 내미는 법이 없으시였다.

자신께서도 수령님과 어머님의 그런 검박과 겸허에 습관되시였고 그렇게 하는것이 세상에서 가장 옳은것이고 응당한것이라고 생각해오시였다. 그러나 왜서인지 오늘은 이 부엌에 놓인 텅 빈 쌀독이 가슴저린 아픔을 불러일으키시였다.

과연 이것을 어버이수령님의 슬하에서 혁명을 배운 투사들의 겸허성과 검박성으로만 보아야 하겠는가.

누구 한사람이라도 여기에 와보았다면, 이 쌀독을 열어보았다면…

김정일동지께서는 아직 한번도 만나보신적 없는 이곳 일군들을 눈앞에 그려보시면서 그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동무들은 이분들이 어떤분들인지 모른단 말인가?!

이들은 지난날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청춘과 생명을 내걸고 싸운 투사들이다. 이런분들이 있어 오늘 동무들이 당일군도 하고 혁명도 하고있는것이다. 그런데 혁명가는 고사하고 인간의 도리로 보아도 이들의 생활을 어떻게 수수방관할수 있는가. 혹시 동무들은 최광동지의 내외가 높은 직위에서 철직되여 내려왔다고 하여 그들을 꺼리는것은 아닌가. 사랑하는 전사들에게 아픈 매를 드신 어버이수령님의 뜻을 동무들이 너무도 모르고있는것은 아닌가.

아마 수령님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당장 여기로 오자고 하실것이다. 동무들, 어쩌면 사람들이 이럴수 있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방금 덮어놓으신 수지다반우에 손을 얹고 격한 마음을 애써 누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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