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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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익 역시 실무적인 어조로 사업일정과 요구되는 문건을 말했다.
처녀는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는 필요한 문건을 내주며 조용한 옆방에서 사업하라고 말하였다.
백상익은 머리를 저었다.
《난 일주일동안 이 방에서 사업료해를 하겠습니다.》
그의 대답은 아주 례사로왔다.
처녀지배인은 말없이 계획부원총각을 지그시 노려보기만 하였다.
결국 백상익은 일주일동안 지배인의 사무실에 틀고앉아 공장의 사업전반을 구체적으로 료해장악하였다. 그 과정에 처녀지배인의 기업관리능력과 경영사업에 탄복하였다.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그의 사업에는 그야말로 빈틈이 없었다.
그리고 가까이 지내여보면서 결코 거칠거나 무례한 녀성이 아님을 알게 되였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다만 그 인상과 표정이 싸늘할뿐이였다. 처녀에 대하여 깊이 파악할수록 이번 걸음에 자기의 일생문제를 기어이 결정지어야겠다는 결심이 더 굳어지였다.
료해사업을 마치고 공장을 떠나기 전날 그는 당비서를 찾아갔다.
《비서동지! 오늘까지 저의 사업은 전부 끝났습니다. 그러나… 계획했던 한가지 일만은 아직 미결입니다.》
그가 《미결》이라고 력점을 찍어서 하는 말에 당비서의 눈은 덩둘해졌다.
백상익은 그가 무슨 일인가고 묻기 전에 먼저 말했다.
《비서동지! 일단 저의 문제에 관심해주신 이상 오늘은 저와 함께 지배인의 방에 갑시다. 합숙에 말입니다. 전 그 처녀를 기어이 쟁취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며칠동안 공장합숙에서 생활하면서 지배인의 방이 3층 5호라는것을 알고있었던 그는 이렇게 당부하였다.
당비서는 쾌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좋소! 같이 가기요. 한가지라도 미결건이 있으면 안되지.》
그도 백상익의 식으로 《미결건》이라는 단어에 력점을 찍었다.
그날 저녁 두사람은 송영숙의 합숙방을 찾아갔다.
하루사업을 총화짓고 들어와 무슨 실험에 열중하고있던 처녀는 예고없이 찾아온 두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그러나 례의를 지켜 방으로 안내하였다.
그런데 당비서의 말이 더 걸작이였다.
《내 오늘 지배인동무를 합숙생활에서 졸업시키려구 왔소. 이젠 이 방에서 나갈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
당비서의 말에 처녀지배인은 너무 놀라서 나가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설주에 그냥 서있기만 하였다.
그때 당비서의 뒤를 따라 방에 들어선 백상익은 은근히 놀랐다.
그 방은 한개 공장 지배인의 침실이라기보다 처녀대학생의 학습실이고 실험실이라고 해야 할 너무나도 소박한 방이였다. 침대옆에 가득 쌓여있는 과학기술서적들과 당반에 주런이 놓인 시약봉지들, 창문아래 렬을 맞추어 놓여있는 크고작은 여러가지 형태의 실험기구들과 현미경, 약절구와 수동식 작은 분쇄기…
《여긴 〈요정〉들이 사는 집이군요. 이런, 요술막대기도 있구요.》
백상익은 삼각플라스크며 실험유리관을 가리키며 빙긋이 웃었다.
《내가 우리 지배인의 생활을 잘 도와주지 못했소. 침실 하나 제대로 꾸려주지 못했으니까. …》
당비서는 지배인의 조촐한 살림살이가 자기의 무관심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는지 자책으로 얼굴까지 붉혔다. 하더니 결혼식을 한 다음에는 궁궐같은 새 집에서 새살림을 펴도록 하겠다고 다짐하듯 말하였다.
《우리 공장에 배치된 제대군인들도 잔치를 하자마자 덩실한 새 집을 받고 사는데 아무렴 지배인에게야 왜 큰 집을 지어주지 못하겠소? 그저 이달중으로 결혼식을 하기요.》
당비서의 말에 백상익은 싱긋이 웃었다. 그는 실험기구들을 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하지만 난 〈요정〉들이 사는 이 집이 더 마음에 듭니다.》
《마음에 든다? 좋구만! 그럼 아예 오늘부터 여기에 보금자리를 펴라구. 응?》
주규호당비서는 너무 기뻐서 껄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쫓기듯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처녀는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
백상익은 아래방에서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생각에서 깨여났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조용히 아래방으로 내려갔다. 아기는 다시 잠들었는지 꽃포단속에서 쌔근거렸다.
《아직 쉬지 않으세요?》
아기를 다독여주던 안해가 조용히 물었다. 피로에 지친듯 그의 얼굴은 창백하였다. 백상익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지금껏 난 〈요정〉들이 사는 집과 당신 생각을 했더랬소.》
남편의 말에 송영숙은 수집은 웃음을 지었다.
《당신두 참…》
《자! 이젠 밤도 깊었는데 어서 자오. 나도 자겠소.》
백상익은 안해의 담요를 여며주며 정깊은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잠든 아기의 얼굴을 한동안 들여다보다가 일어서서 웃방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