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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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에게서 닭공장의 처녀지배인에 대한 말을 들은 리당비서도 들을수록 귀맛이 고소한지 고개방아를 찧었다.
그들은 이틀후에 처녀와 총각을 맞세우자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송영숙은 《비서동지의 마음은 고맙지만… 전 만나지 않겠습니다.》하고 첫마디부터 딱 잘라버리는것이였다.
주규호당비서는 그만 아연해지고말았다.
절대로 시집을 가지 않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것이 마음에 드는 대상자가 없어서 하는 말이려니 했는데 이제보니 보통 독한 마음을 먹지 않은게 분명했다.
(이거 야단났군. 어쩐다? …)
래일은 일요일이여서 약속대로 총각이 찾아올텐데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도무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쳤다. 총각이 찾아오면 무작정 맞세워보자는것이였다.
(싫든좋든 맞세워보면 답이 나올테지. …)
다음날 아침, 공장접수에서 손님이 찾아왔다는 련락을 받고 정문으로 나갔던 당비서는 우뚤 놀랐다.
이깔나무처럼 미츨하게 쭉 빠진데다가 길쑴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큼직큼직한 총각은 생각했던것보다 더 의젓하고 잘생긴 사람이였기때문이다. 몇마디 말을 시켜보니 성격 또한 시원시원하고 활달한게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 이런 멋쟁이라구야. …)
총각을 데리고 지배인의 방으로 올라가는 당비서는 웃음집이 흔들거리는걸 애써 참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잘생기고 훌륭한 경력까지 갖춘 총각을 마다하는 처녀는 하늘아래 없을거라고 장담하며 싱글벙글 웃었다.
지배인의 방앞에 이른 그는 총각에게 혼자 들어가서 자기소개나 하면서 얼굴 한번 보고 자기 방으로 오라고 귀띔하였다.
진지한 이야기는 조용한 시간에 하라고 덧붙이는것도 잊지 않았다.
총각은 당비서의 각본에 따라 지배인의 방에 들어갔다. 방금전까지 전화로 자재부원과 함께 배합먹이수송문제를 토의하던 송영숙은 문기척소리를 크게 울리며 들어선 봄가을양복차림의 청년을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누굴 만나러 왔습니까?》
그때 백상익은 송영숙을 곧바로 쳐다보면서 지배인을 만나러 왔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요? 무슨 일때문에요?》
처녀지배인은 다소 상냥한 어조로 물었다.
백상익이 주춤거리자 그는 어디서 왔는가고 다시 물었다.
《군인민위원회 계획부에서 왔습니다.》
백상익은 용기를 내여 청청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군인민위원회 계획부라구요?》
처녀는 그의 말을 되물었다. 다음순간 전날 당비서가 말하던 대상자문제가 떠올랐는지 얼굴에 약간 무안해하는 표정을 실었다. 이윽고 처녀는 눈길을 떨구며 쌀쌀하게 말하였다.
《난 동무를 만날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돌아가보세요.》
그는 더 상대하지 않겠다는듯 무슨 책을 펼쳐들었다. 손님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시 송수화기를 들더니 자재부원을 찾았다. 부재중이라는 대답에 들어오면 자기한테 보내라고 말한 다음 송수화기를 놓았다.
주규호당비서의 말대로 자기소개나 한마디 하면서 처녀의 얼굴을 한번 보고 되돌아나오려던 백상익은 처녀의 불손한 태도에 그만 격해지는 감정을 누를수 없었다.
지배인이라는 직위에 어깨를 잔뜩 올리고 사람들을 코아래로 보는데 습관된 이 덜된 처녀에게 례절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처녀앞으로 몇걸음 다가갔다.
《동무! 동문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대합니까? 누가 무슨 용무로 찾아오든 동문 항상 이런 태도겠지요? 예?》
《?!》
되돌아나갈줄 알았던 청년이 앞으로 다가와 근엄한 어조로 꾸짖는 바람에 처녀지배인은 그만 당황해서 눈길을 허둥거렸다.
《동문 례절부터 배워야겠습니다. 손님을 대하는 초보적인 례절부터 말입니다.》
백상익은 그루를 박아서 한마디 더한 다음 곧 돌아서서 방에서 나와버렸다. 그는 후끈 단김에 당비서도 만나지 않고 공장을 나섰다. 군인민위원회로 돌아온 그는 전화로 주규호당비서를 만나 덜된 처녀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였다.
당비서는 제켠에서 미안한지 더 말을 못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그의 눈앞에는 처녀지배인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처녀가 별로 례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오히려 자기쪽에서 우둘렁대면서 주제넘게 놀았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리당비서인 큰아버지나 닭공장 당비서가 한번 더 찾아준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생각만 간절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일이 다 틀려진줄 알았는지 두번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은 바라는대로 흘러가는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영 암담한것도 아니였다.
운명은 그에게 일주일동안 닭공장의 생산과 계획사업을 지도할데 대한 과업을 주었던것이다.
허리에 빨간 띠를 두른 농촌뻐스를 타고 읍에서 30리 떨어진 닭공장으로 가면서 백상익은 처녀지배인을 어떻게 만날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어쩐지 처음과 달리 자기쪽에서 더 가슴이 두근거렸다.
공장에 도착한 그는 먼저 당비서부터 만났다. 처음 주규호는 처녀를 다시 만나려고 찾아온줄 알고 무등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난 아예 마음이 돌아앉은줄 알았지. 지내보면 우리 지배인같은 처녀는 없소. 백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는데 이번엔 아예 맞도장을 누르기요.》
당비서는 큰 주먹으로 도장을 누르는 형상까지 해보였다.
백상익은 빙긋 웃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전 지배인을 만나러 온게 아닙니다. 부서에서 조직한 계획사업지도차로 내려온겁니다.》
그의 말에 당비서는 우뚤 놀라기까지 했다. 그러나 인츰 껄껄 웃었다.
《좋구만. 엉? 뽕두 딸겸 님두 볼겸…》
이윽고 그들은 함께 지배인의 방으로 갔다.
현장에 나가려고 방을 나서던 처녀는 두사람을 보고 우뚝 서버렸다.
당비서로부터 계획사업지도차로 내려왔다는 말을 들은 처녀지배인은 이미 상급기관으로부터 지시를 받은터였지만 도무지 미덥지 않은듯 싸늘한 눈길로 얼핏 쳐다보는것이였다. 이윽고 그는 무엇이 필요되는가고 랭담하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