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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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영숙은 저녁식사를 마친 남편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여보, 미안해요.》

그는 벌써 두번째로 같은 말을 하였다.

친정어머니까지 딸을 낳았다고 시무룩해있으니 그의 마음은 옹색하기 그지없었다. 꼭 자기의 불찰로 생겨난 일 같았다. 그러나 남편만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대해주니 송영숙에게는 더없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안해의 그 마음을 읽은 백상익은 싱긋 웃었다.

《미안할게 있소? 나라의 왕이 또 한명 태여났는데…》

그는 안해의 어깨우에 흘러내린 수건을 올려놓아주며 딴 생각말고 푹 쉬라고 일렀다.

웃방으로 올라온 그는 곧 콤퓨터앞에 마주앉았다. 한동안 건반을 눌러가던 그는 누군가 자기를 유심히 지켜보고있다는 느낌을 받고 눈길을 들었다.

다음순간 책상우에 놓인 결혼사진이 눈에 띄였다.

연분홍빛치마저고리를 입고 머리며 앞가슴을 꽃으로 단장한 안해는 자기와 나란히 팔을 끼고 서서 수집게 웃고있었다.

백상익은 사진속의 안해를 이윽토록 마주보았다.

선이 고운 얼굴에 크고 정기어린 눈이 인상적인 안해, 그 눈가에서 마를줄 모르는 지혜와 창조의 샘이 솟구치다가도 일단 성이 나면 범접키 어려운 불꽃이 튕겨나군 했다.

안해의 그 얼굴은 점차 우유빛안개에 휩싸여 사라지고 눈앞에는 대머리진 얼굴에 후더운 마음이 엿보이는 장년의 사나이가 떠올랐다.

닭공장 당비서 주규호였다.

잊을수 없는 그 모습은 백상익의 생각을 어느해 이른 봄날로 이끌어갔다. …

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닭공장 당비서 주규호는 그때 나이 서른을 넘긴 처녀지배인 송영숙이때문에 은근히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답답한것은 처녀가 제 나이를 다 잊은듯 무섭게 일만 하는것이였다.

처음 당비서는 3대혁명소조생활을 마치고 공장에 남은 몸매 갈람하고 크고 맑은 눈가에 웃음이 찰랑거리는 나이찬 처녀를 그닥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다.

(오래지 않아 꽃본 나비에게 홀리워서 어디론가 날아갈테지. …)

그러나 처녀는 헛눈 한번 팔지 않고 직심스럽게 일만 하는것이였다. 인츰 성격도 얼굴표정도 달라졌다.

맑고 청아한 웃음소리는 사라져버리고 얼굴도 행동거지도 심중하고 무거워졌다. 딴사람처럼 변해버린 처녀는 낮에는 낮대로 현장에서 땀흘리며 일하였고 밤에는 합숙방에서 성장촉진제연구를 계속하였다.

낮과 밤이 따로없이 애쓰고 뛰여다니면서 연구도 하고 생산에 도입하여 몇년후에는 학위까지 받게 되였다.

어느날 주규호당비서는 그에게 이제는 대학도 졸업하고 학위까지 받았는데 녀자의 본분대로 좋은 대상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라고 진정을 말했다.

그때 화석처럼 굳어진 얼굴로 당비서의 말을 듣고있던 처녀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는 천근만근의 무게를 담고 조용히 말하는것이였다.

《말씀은 고맙습니다. 그러나 전… 시집가지 않겠어요.》

송영숙은 자기의 말대로 그 어떤 잡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꾸준히 일하여 현장기사와 작업반장을 거쳐 책임기사가 되였다.

지배인이 도목장관리국 국장으로 소환된 다음에는 그의 사업을 인계받아 처녀지배인이 되였다.

그는 말그대로 일로 빚은 녀자같았다. 출장을 떠났다가 새벽에 돌아와서도 다음날에는 현장에서 꼬박 일했고 배합먹이밭김매기에 나가면 종업원들 맨앞에서 땀을 뚝뚝 떨구며 호미자루를 휘둘렀다.

배합먹이마대를 져나를 때에도 입술을 옥물고 그냥 뛰여다녔다. 기술적인 문제가 제기되면 기술자들과 무릎을 마주하고 앉아 며칠밤을 패며 끝장을 보는것은 례사로운 일이였다.

송영숙은 지배인이 되여서도 고집스럽게 합숙방에 그대로 있으면서 전과 다름없이 생활하였다.

혹시 상급기관 일군들이 찾아와도 합숙방이 너무 조촐하면 공장사람들을 욕한다면서 색다른 가구를 들여놓자고 하여도 자기의 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한사코 머리를 젓군 하였다.

크지 않은 합숙방에 늘어나는것은 책과 실험기구뿐이였다.

처녀치고는 일등처녀이고 일군이라면 전형으로 내세울만한 녀성이였다.

결함이라면 고집이 센데다가 웃는 신경이 아예 마비된듯 언제나 랭랭한 얼굴이였다. 종업원들의 애로조건을 들어주고 밤새우는 기술자들에게 마음을 쓰는걸 봐서는 인정이 무르고 따뜻하지만 그 쌀쌀한 인상때문에 호감을 사지 못하군 하였다. 현장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소조생활을 할 때에도 처녀대학생들중에서 제일 웃음많고 명랑하였다는데 그 말이 잘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러나저러나 주규호당비서는 과년한 딸때문에 불면증에 걸린 아버지가 되고말았다.

사람들은 처녀가 나이 서른을 넘기면 총각에게 시집가기는 틀린 일이라고 머리를 저었다.

그럴 때마다 주규호는 눈을 흘기며 대들었다.

《처녀가 그만큼 일하기가 쉬운가? 남 못하는 일을 하느라 나이는 좀 들었어두 지배인같은 처년 드물어! 두구보라구! 이제 리도령 같은 신랑감이 나서지 않나.》

그는 락심하지 않고 꾸준히 《리도령》을 찾고 탐문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군당에서 열린 회의를 마치고 동호리당비서와 함께 돌아오던 그는 귀가 번쩍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동호리당비서의 조카가 원산경제대학을 졸업하고 군인민위원회 계획부원으로 임명받았는데 군사복무까지 마치고보니 나이 서른을 썩 넘겼다는것이였다. 잘생긴데다가 보통 똑똑하지 않아서 웬간한 처녀는 싫다고 하는데 맞춤한 대상이 없어서 근심이라는 말에 주규호당비서는 철썩 무릎을 쳤다.

《있네! 있어! 금옥같은 처녀가 있다니까.》

그는 너무 기뻐서 대머리를 슬슬 긁으며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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