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1 회)
제 3 장
봄의 의미
6
(1)
화차방통의 맨 뒤쪽에 달린 차장차는 거무틱틱한 철판을 용접하기도 하고 리베트못을 쳐서 씌운것이 일반 유개화차나 별로 다름이 없어보였으나 실내는 분통같이 말쑥하고 무척 아늑하였다. 앞뒤와 량옆을 감시하기 편리하게 사방으로 낸 창문들마다에는 연분홍빛명주천으로 창가림을 씌웠는데 극장무대의 눈섭막처럼 덧가림도 살짝 드리우고 가장자리에는 꽃물결모양의 레스까지 달아놓았다. 바닥에 못박아 단단히 고정시켜놓은 좁은 침대는 잠들기 위해 만들어놓은것이라기보다 앉기 위해 만들어놓은 기다란 포의자같았다. 밑으로 쑥 드리운 모포의 량끝을 침대다리에 비끄러매서 빳빳하게 잡아당겨놓은데다 벽쪽에는 두부모를 잘라놓은것처럼 네모반듯한 베개와 칼날같이 모서리를 다듬은 하늘색모포가 정돈되여있어 군대병실에 들어온것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침대가 놓인 창문의 반대켠에는 도색을 하지 않은 옹이박이나무책상 하나와 의자대용으로 쓰는 상자 같은것이 놓였고 책상우에는 마분지로 곱게 만든 세칸짜리 책꽂이에 알뜰하게 가위를 씌운 소설책들과 학습장들이 빼곡이 꽂히였는가 하면 황동으로 깎아만든 닭알모양의 먹통이며 반들반들한 왕참대를 빗사선으로 뚝 잘라 만든 필통도 오똑하게 서있다. 타원형의 유리거울이 걸린 출입문에는 《확인 또 확인》이라는 붓글표어와 함께 《담배를 피우지 맙시다》라고 자작 쓴 종이쪽지도 붙었다. 이 차칸의 주인인 처녀차장은 무척 깨끗하고 산뜻한것을 좋아하는 모양이였다.
어제 임철정치위원으로부터 리철봉이 앓는 안해를 병원에 두고 평양으로 떠나려 한다는 전화를 받으신
《세포비서동무, 내 해군사령부에 볼 일이 있어 진포에 좀 갔다올가 하는데… 다른 일이 없겠습니까?》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바쁜 일인것같은데 어서 다녀오십시오.》
《참, 이번달에는 어째서 나에게 분공을 주지 않습니까?》
세포비서는 몸둘바를 몰라하며 제발 분공에 대해서만은 더 말씀하시지 말아달라고 애원하였다.
《그 분공때문에 제가 동무들에게 계속 비판을 받습니다. 가뜩이나 일감이 많으신데 분공조직까지 엄청나게 해서 부담을 덧드린다고 말입니다. 사실 이때까지 조직한 분공두 어디 제가 드린것이야 있었습니까. 모두 스스로 맡아안으신것인데 부서동무들은 그것두 모르구 저보구만 나무람을…》
《당원이 당조직으로부터 분공을 받아 수행하는것은 당규약의 요구인데 뭘 그럽니까. 그리고 젊은 사람이 분공을 받을바에야 어렵고 힘든걸 맡아야 보람도 있을게 아닙니까.》
세포비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방금 덮었던 책을 들어
《자꾸 그렇게 요구하시기에 이달에도 이렇게 분공조직을 했댔습니다. 보시다싶이 부모님들을 모시고 사는 박동무의 가정방문을 하고 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풀어주는것으로 하였댔는데 알고보니 이틀전에 벌써…》
결국 분공을 받기 전에 먼저 수행하신셈이였다.
그러나
《그러면 또 새로운 분공을 주어야지 그렇게 어물쩍 넘기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얼마전
차장차는 량켠으로 내다보기 편리한 창문들도 있고 출입문을 열고 나서면 세면으로 확 트인 로대도 있어서 화차가 멈춰서는 역전들은 물론이고
통과역전들의 상태를 관찰하는데도 무척 편리하였다.
모두 열세개의 역을 지나왔는데 그중 기술역이 두개 있었고 작은 역전들이 열한개였다. 그 열한개의 역전을 지나오는 구간에 중량레루를 다 설치한 구간이 여덟개이고 아직 시작을 하지 못한것이 세개였다.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레루문제가 빠른 속도로 해결되였다고 볼수 있지만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철길대들에는 어떤 사정이 있고 걸린 고리가 무엇인가에 마음이 씌우시여 손에 든 수첩장우에 《8:3》이라고 써넣고 《3》이라는 수자쪽에 동그라미를 몇번 덧그으시였다.
이때 견인기쪽에서 《부-웅-》하는 기적소리가 웅글지게 들리더니 렬차의 속도가 차츰 떠지기 시작하였다. 씩씩 하고 제동변에서 김이 빠지는 소리에 이어 덜커덩덜커덩 차량련결부위가 맞부딪치는 진동이 마쳐오는 찰나 거울이 달린 출입문이 절컥 열리며 처녀차장의 동실하고 말쑥한 얼굴이 나타났다.
《진포역입니다!》
처녀는 성함도 직무도 모르고 오직 급한 사정으로 화차에 오르지 않으면 안된 손님이라고만 생각했던분, 그러나 철도의 일을 두고 그토록 세심히
묻고 따져보시며 수첩에 하나하나 적고 사색을 이어가시던분, 차장사업이 힘들지는 않는가, 한번 평양을 떠나면 며칠만에 돌아오며 휴식은 어떻게
하는가 하고 그처럼 다정히 물어주시던
모자채양아래로 흘러내린 두어가닥의 머리카락이 설아의 마음처럼 바람에 흩날렸다. 딛고선 발밑으로 두줄기 레루가 끝없이 흘러나간다.
같은 렬차를 타고 같은 길을 가도 기관차의 시창을 내다보는 기관사에게는 모든것이 가까이 다가서는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차장차에 서있는 설아에게는 항상 모든것이 멀어지는것처럼 보였다.
그렇다! 모든것이 멀어져간다.
협주단에서의 생활도, 진성이와의 인연도, 삼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