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4

(1)

 

송영숙은 전화종소리를 잠결에 들었다.

꿈을 꾼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꿈길을 이어가려는데 곁에 누운 남편이 조심스럽게 움직이였다. 이어 목소리를 낮추어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린다.

(이것도 꿈일가? 그런것같지는 않은데…)

그러나 피곤에 몰려 눈이 떠지지 않는다. 얼마후 반쯤 눈을 떠보니 남편이 자기를 내려다보고있었다.

《무슨 전화예요?》

그는 잠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 들었소?》

단잠 든 안해를 깨운것이 못내 민망스러운지 남편이 조용히 되물었다.

지난밤에도 알깨우기직장 랭온풍기설치때문에 한밤중에 들어온 안해였다.

남들 같으면 산전휴가를 받고 휴식해야 할 때지만 첫 아이를 낳을 때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휴가같은건 안중에도 없는것같다. 한창 몸이 무거울 때 잠이라도 실컷 자게 할수 있다면 좋으련만 걸려온 전화내용이 심상치 않은것이여서 어쩔수 없었다.

《지금 몇시예요?》

안해는 어느새 전등을 켜고 시계를 올려다본다. 시계는 새벽 4시 15분을 가리킨다. 날이 밝자면 아직 두어시간은 있어야 하는데…

《시험호동에서 사고가 났다누만.》

백상익은 안해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송영숙의 큰 눈은 대번에 휘둥그래졌다. 그는 어지간히 큰 목소리로 다우치듯 물었다.

《시험호동에서요? 무슨… 사고래요?》

《새벽먹이를 주려고 보니 시험오리가 몇백마리나 죽었다누만.》

《그렇게 많이?!》

송영숙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백상익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무슨 일인지 어서 나가보오.》

그는 이불을 한옆으로 밀어놓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송영숙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편이 먼저 일어나 옷장안에서 옷가지들을 꺼내여 앞에 놓아주었다. 송영숙은 남편이 내주는 옷들을 주섬주섬 받아서 입기 시작하였다.

그가 배띠를 옥조이자 남편은 미간을 찌프렸다.

《너무 조이지 마오. 그속에서 애가 어디 숨이나 쉬겠소?》

그러나 송영숙은 아무 대꾸없이 솜옷을 껴입고 수건을 목에 둘렀다.

아래방으로 내려가자 방금전에 아침밥을 지으려고 일어났던 어머니가 못마땅한 눈길로 혀를 찼다. 품들여 준비한 정월대보름날 아침식사를 함께 먹지 못하게 된것이 민망스러워서였다.

그는 더운물에 빵이라도 한개 먹고 나가라고 말했다.

송영숙은 《괜찮아요.》하고 외마디대답을 하며 출입문을 열었다.

순간 그는 문가에서 주춤하였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새벽하늘 중천에 떠서 환히 웃으며 내려다보고있었다. 마당이며 저켠 큰길쪽모두가 조명등을 켜놓은것같았다. 송영숙은 저도 모르게 호- 한숨을 내그으며 달빛이 흐르는 마당가에 내려섰다. 그는 자전거를 끌고 마당을 지나 큰길에 나섰다.

(무엇때문일가? 조류독감이 발생했을가? 아니면 첨가제때문일가? …)

그의 생각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시험호동을 책임진 정의성은 제염소에서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씩 들어오군 하는 그는 닷새후에야 완전철수하게 된다.

년간 첨가제생산에 필요한 소금밭이끼 전량을 수송하고야 제염소를 떠나게 되여있었다.

《애아버진 그동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기사장동지나 소장동지에게 먼저 알리라고 당부했어요. …》

며칠전 서정옥이 한 말이다. 결국 정의성은 자기와 유상훈박사에게 그동안의 일을 부탁하고 떠난셈이다.

(닷새후면 정기사도 들어올텐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자전거에 오른 송영숙은 발디디개를 힘껏 밟았다.

불빛이 환한 시험호동에는 어느새 련락을 받았는지 유상훈소장과 청년직장장, 생산부기사장과 방역부원이 나와있었다.

서정옥과 리봄순은 죽은 오리들을 한켠으로 모으고있었는데 방금전까지 울었는지 눈등이 부어있었다.

호동에 들어서는 기사장을 본 그들의 눈가에는 또다시 맑은것이 고여올랐다. 하소연할길 없는 안타까움과 구원을 바라는 애절한 마음이 얼굴마다에 씌여있었다.

《어떻게 된거예요?》

송영숙은 정옥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느때와 달랐다. 무뚝뚝하기도 하고 다소 신경질적이기도 하였다.

정옥은 무어라고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갑자르기만 하였다.

송영숙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물었다.

《어제밤에 마지막먹이를 줄 때는 다른 일이 없었어요?》

《예, 없었습니다.》

《먹이조성을 자체로 바꾸지는 않았겠지요?》

송영숙은 오리들에게 눈길을 준채 또 물었다. 그러나 곧 후회하였다.

책임성높은 서정옥과 리봄순은 도저히 그럴 사람들이 아니기때문이다.

《죽은 오리를 발견한건 언제예요?》

《4시에 일어나 새벽먹이를 주려구 보니 여기저기 죽은 오리가…》

그때의 놀랍고 당황하고 무섭기만 하였던 심정이 되살아나 정옥은 말까지 더듬다가 끝내는 여물구지 못하였다. 지금도 정옥의 온몸은 자꾸만 후들후들 떨리였다.

송영숙은 놀이장안을 둘러보다가 저켠 먹이그릇앞에 앉아있는 유상훈소장에게 다가갔다.

《무슨 원인인것같습니까?》

《아직… 먹이엔 이상이 없는것같은데…》

박사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조류독감은 아닙니까?》

송영숙은 긴장한 마음으로 다시 물었다.

그는 박사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한켠에 몰켜서 박박거리는 오리들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그중 한놈을 잡아들었다. 그리고는 다리를 쥐고 거꾸로 쳐들었다. 두세놈을 같은 방법으로 쳐들며 찬찬히 살펴보았다. 입에서 점액이 흐르는 놈은 없었다.

송영숙은 놀이장을 오가면서 오리들의 호흡증상과 함께 변두상태며 배설물들도 꼼꼼히 살펴보았다.

가금류와 철새류, 야생조류들의 호흡기증상을 비롯한 여러가지 전신증상을 나타내는 페사률이 높고 전파력이 빠른 급성전염병인 조류독감은 비루스를 보유한 철새들의 이동시기인 겨울과 봄철에 많이 나타난다.

앓거나 죽은 가금, 야생조류를 통하여 전파되는 이 조류독감은 페사률이 보통 50~80%, 지어는 100%에 이른다.

조류독감에 걸린 가금들은 우선 먹성이 떠지고 우울하며 푸른색설사를 하고 변두가 검푸른색을 띠면서 숨쉬기 가빠하고 이상한 호흡음을 내게 된다. 그리고 한곳에 웅크리고 앉아서 조는데 거꾸로 들면 입에서 점액이 흐르는것이 특징이였다.

송영숙이 살펴보니 시험호동안의 오리들중에서 조류독감으로 의심할 징조는 거의나 없었다.

사실 공장에서는 겨울철에 들어서면서 조류독감의 피해를 막기 위한 수의방역사업에 큰 힘을 넣어왔다. 우선 책임적인 사람들로 24시간 감시근무를 조직하고 오리들과 날새들, 집짐승에 대한 감시와 통보체계를 구체적으로 조직하였다.

그리고 종업원들에게 조류독감의 발생원인과 전파경로, 방지대책에 대하여 잘 알려주고 모두가 이 사업에 적극 떨쳐나서도록 하였다. 그뿐 아니라 초소원들의 역할을 높여 외부인원들의 출입을 철저히 막고 출입성원들이 소독을 하여야 통과하는 규률도 그 어느때보다 강화하였다. 또한 수입첨가제와 배합먹이에 대한 검색사업도 놓치지 않았다.

(조류독감도 아니라면 과연 무엇이 원인일가? …)

날이 밝을무렵 장병식지배인이 당비서와 함께 시험호동에 나왔다.

지배인은 바삐 나왔는지 늘 쓰고 다니던 털모자도 없이 맨머리바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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