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 회)

제 3 장

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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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는 김철호와 함께 부엌칸안에 계시였다.

《…어머니가 허리를 쓰기 불편할것같아서 수도꼭지와 물탕크를 이렇게 설치하구 부뚜막두 높여놨습니다. 구멍탄은 저기 뒤쪽 부엌창고에 있고… 참, 여긴 김치독을 넣을 자리입니다. 겨울에 땅에 내다 묻느라 하지 말고 여기에 두십시오. 더운 방에 있다가 김치를 푸러 밖에 나가면 감기에 걸리기 쉽거던요.》

최현은 그이의 말씀을 더 들어내지 못하고 기다란 전실복도를 따라 활짝 열어놓은 미닫이문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알른알른한 장판우에 빼곡이 들어찬 자개박이장농이며 참대와 호랑이를 유리그림으로 그려넣은 이불장과 옷장…

그곁에는 보기만해도 푹신한 침대며 탁상등과 책꽂이가 놓인 알른알른한 량수책상, 전화기가 놓인 옆탁. …

새로 이사온 집이 아니라 누군가 살다가 금방 나간 집처럼 모든것이 다 갖추어진 알뜰한 주택이였다.

최현은 자기에게 이런 새 살림집이 차례진것을 생각하니 먼저 떠나간 전우들생각에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안해를 맞아 따뜻한 살림 한번 해보지 못하고 이국의 광야에서 숨진 오중흡이, 박락권이, 김주현이

폭격에 흙먼지가 부스러져내리는 반토굴집에 처자를 남겨두고 전선에서 싸우다가 숨진 김책이, 강건이

동무들은 들었는가?

우리 빨찌산들에게 황금으로 륙간대청을 지어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하신 수령님의 말씀을.

우리같은것을 당의 보배라고 하신 장군의 말씀을 들었는가?

당신들모두가 다 살아서 이런 하해같은 은덕을 함께 받아안을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 혼자 살아 이런 은혜를 누리자니 하늘에 죄를 짓는것만 같아 머리를 들수가 없구나. …

최현은 문설주에 머리를 기대고서서 소낙비처럼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념도 하지 못했다.

받아안는 은총이 산같을수록 이제 더 젊어지지 못하는것이 억울하고 분하였다. 저 뜨락에 심은 누운향나무와 같이 푸르싱싱하게 젊어져서 먼저 떠나간 렬사들의 몫까지 내가 다 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는 못할망정 수령님께서 가라고 하신다고 하여 료양이나 다니고 휴식이나 해서야 어떻게 그 몫을 다 한단 말인가.

그러나 최현은 김정일동지께서 바로 이 새집에 주인들이 모르게 이사짐을 옮겨놓으시려고 자기네 량주를 다 은률에 휴양보내도록 어버이수령님께 청을 드리신줄은 꿈에도 알수 없었다.

최현의 내외에게 집열쇠까지 넘겨주고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기쁜 마음을 안고 당중앙위원회로 향하시였다. 수령님께서 걱정하시던 문제들중에서 큰 문제가 하나 해결된셈이다.

《ㅌ. ㄷ》의 시절부터 함께 싸워온 혁명동지들을 늘 잊지 못해하시며 그들의 이름과 고향, 혁명투쟁에 참가한 년대와 가정래력까지 어느 하나도 기억에서 지우지 않고계시는 수령님이시다.

해방후 혁명가유자녀학원을 제일 먼저 일떠세우고 투사들의 혈육들을 한명도 빠짐없이 품에 안아키워주시고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 더 해주고싶어하시며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내손으로 밥이라도 한끼 먹일수 있고 훈장이라도 달아줄수 있지만 공화국이 창건되기 전에 희생된 동무들은 영웅메달도 달아주지 못했다고 가슴아파하시는 수령님이시다.

영웅메달…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이께서는 오래전부터 구상하여오신 혁명렬사릉에 금별메달을 크게 부각하여 수령님의 그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려야 하겠다는 결심이 다시한번 굳어지시였다.

이렇게 떠오른 사색은 계속 깊어갔다.

렬사릉의 봉분은 어떤 형식으로 하며 이름은 어떻게 새길것인가?

이름만 새기기보다는 매 봉분에 그들의 반신상을 세워 후대들이 그 모습을 두고두고 바라볼수 있도록…

위치는 어디에 정할것인가?

금수산, 모란봉, 대성산… 하고 평양시안의 수려하고 풍치좋은 봉우리들을 하나하나 꼽아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천리마동상이 자리잡은 만수대가 떠오르시는 순간 가슴이 울렁거리시였다. 만수대언덕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앞으로 인민들을 위한 큰 궁전을 짓자고 하시며 아껴두신 자리였다.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평양에서 제일 아름답고 경치가 좋은 그곳에 응당 우리 수령님의 기념비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시였다.

동지들과 인민들밖에는 그 무엇도 생각지 않으시는 수령님.

그이께서는 혁명동지들을 위하여 황금으로 집을 지어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하시지만 정녕 금상을 세워 하늘끝에 모신대도 그 은공을 다 갚아드리지 못할분은 바로 우리의 위대한 수령님이 아니시던가!

방금전 최현도 자기는 빨찌산시절 어버이수령님께 귀틀집 한채 지어드린것이 없는데 이처럼 큰 집을 안겨주시였으니 이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하겠는가고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했다.

ㅎ시의 제강소로동자들도, 군수공장 로동계급도, 최전연의 병사들도 어버이수령님의 부르심이라면 산도 허물고 바다도 메울 각오로 투쟁하고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수령님께서 한평생 위대한 사상과 고매한 덕망으로 우리 인민들을 친자식처럼 품어안아 키우시였기때문이다. 그래서 인민은 그이의 뜻을 받드는 길에 어깨보다 먼저 심장을 내대며 세상이 알지 못하는 기적을 창조하는것이다.

수령님의 손길에서 날아오른 천리마가 만수대기슭에 서있다면 그 천리마를 조선의 하늘에 날려주신 위인의 기념비는 응당 그 만수대의 언덕우에 높이 모셔야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혁명렬사릉을 건립하고 항일투사들의 반신상을 세우기 전에 어버이수령님의 동상부터 모시는것이 혁명전사들의 도리로 보아도 응당하고 인민들의 념원으로 보아도 옳으며 《개인미신》반대에 얼이 나간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에 조선혁명가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시였다.

지금 당중앙과 내각앞으로는 혁명의 수도 평양에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하루빨리 모시게 해달라는 편지와 제의서들이 끝없이 올라오고있었다. 얼마전에도 김일제1부수상이 그 제의서를 가지고 수령님께 찾아갔다가 엄한 추궁을 받고 자신을 찾아왔었다.

그때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사업은 수령님께서 만류하신다고 하여 그만 두거나 지체할수 없는 사업이라고 하시면서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60돐을 맞으며 만수대언덕에 그이의 동상을 밝고 정중하게 모시자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자신께서 직접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정중히 모시는데 동원될 설계집단도 정해주시고 필요한 조직사업과 대책들도 하나하나 세워주시였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설계도 나오고 건설력량도 동원되게 될것이다. 그러나 그이께서도 아직은 어버이수령님께 이 사실을 보고드릴수 없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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