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3
(1)
호수가에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방뚝아래켠에 드문히 서있는 앙상한 버드나무들이 찬바람에 휘감기여 몸부림쳤다.
립춘이 지났지만 날씨는 아직도 대소한무렵처럼 차고 맵짰다. 며칠전에 내린 눈도 다 녹지 않은채 길옆이며 방뚝아래의 음달진 곳에 을씨년스럽게 웅크리고있었다.
그러나 호수가의 얼음을 까내고 감탕을 파내는 사람들은 그 추위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것같았다.
호수가 여기저기에서 웃옷을 벗어던진 청년들이 삽과 곡괭이를 휘두르며 감탕을 파올리고있었다. 맞들이를 쥔 젊은이들은 입김을 펄펄 날리며 파올린 감탕을 직장표말이 서있는 자동차길까지 나르느라 달음박질하듯 뛰여다녔다.
공장에서는 겨울철이면 로력들을 총동원하여 감탕파기전투를 조직하였다.
수십개의 크고작은 하천들이 흘러들고 주위가 진펄로 되여있는 이곳 호수가에는 질좋은 감탕이 두텁게 깔려있었다. 이 감탕에는 오리의 영양에 좋은 광물질과 조지방, 조단백질이 많아서 오리의 비육도를 높이고 알낳이률을 높이는데 없어서는 안될 좋은 보충먹이로 리용되고있었다.
직장별로 1년분의 감탕을 채취하기 위한 경쟁이 조직되여 호수가는 여느때없이 들썩하였다. 여기저기에서 붉은 기발이 펄럭이면서 경쟁바람을 돋구었고 붉고 푸른 색갈의 직장표말들이 경쟁의욕을 북돋아주었다.
어느 직장에서는 록음기까지 가지고나와 흥겨운 노래소리까지 울리면서 사기를 불러일으켰다.
송영숙도 지배인과 함께 호수가에 나왔다.
그들은 직장별 감탕무지들을 돌아보면서 실적을 종합하였다.
그들의 걸음은 《생산2직장》표말이 있는 곳에서 멈추어졌다. 다른 직장들에 비해 두배나 큰 감탕무지였다.
《생산2직장에서는 윤흥식직장장이 직접 사람들과 함께 아침일찍부터 호수가에 나왔는데 하루이틀이면 과제를 넘쳐할겁니다.》
송영숙은 호수가 아래켠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장병식지배인은 머리를 끄떡끄떡하였다.
《한가지가 열가지요.》
그는 석쉼한 목소리로 한마디 하였다. 그의 말에는 호수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있어서 여름철에 배합먹이의 덕도 크게 보지 못하는 불리한 조건이지만 무슨 일에서나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생산2직장에 대한 믿음이 담겨져있었다.
송영숙은 지배인과 삽을 들고 흩어진 감탕덩이들을 모았다.
그들은 높아지는 무지들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돼오자 사람들은 작업도구를 거두었다.
그들은 로동의 희열과 기쁨을 웃음에 담아 축포처럼 터치며 얼음진 호수우를 건너가고있었다.
《왜 다들 메고치쪽으로 가는거요?》
지배인은 의아한 눈길로 호수 건너편으로 가는 사람들을 턱짓하였다.
송영숙은 흘러내린 목수건을 등뒤로 가볍게 던지며 빙긋이 웃었다.
《종금1직장장동무가 오늘 점심식사는 저희네 직장에서 한상 내겠다고 했답니다.》
《그렇소? 참 좋구만.》
장병식은 머리를 끄떡끄떡했다. 그는 웃음이 담겨진 눈길로 얼음진호수를 건너 솔숲이 우거진 메고치며 골방고치쪽으로 가고있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문득 지배인이 송영숙을 돌아보았다.
《참! 기사장동문 왜서 호수건너편 저기를 메고치와 골방고치라구 부르는지 아오?》
지배인의 물음에 송영숙은 《예, 압니다.》하고 대답했다.
사실 그는 처음 공장에 왔을 때 메고치며 골방고치라는 향토적인 지명의 유래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몇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모두 머리를 저었다. 호수가에 태를 묻고 자란 서정관도 잘 모르겠다면서 어색한 웃음을 짓는것이였다.
《다들 그렇게 부르니 나도…》
그는 이렇게 얼버무렸다.
송영숙은 그저 그렇게 스쳐버리고싶지 않았다. 자기가 살게 될 고장의 지형지물은 물론 기후조건이며 유적유물 그리고 지명의 유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싶었다.
송영숙에게 지명의 유래에 대하여 정확한 대답을 준 사람은 유상훈박사였다.
《왜서 메고치라고 부르는가 하면…》
그날 박사는 가금학의 오묘한 리치라도 가르치는듯 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리고 느린 말투로 이야기했다.
《옛적부터 호수를 건너와 배를 대던 곳이라구 해서 처음엔 배고치라고 부르다가 점차 메고치로 되였다고 합니다.
그리구 이 호수는 예로부터 수질이 좋아서 물고기두 많았지만 크구 맛좋은 조개와 골뱅이가 많았다구 합니다. 허지만 특별히 바가지로 퍼담을만큼 많았던 저 후미진 곳은 어느때부터인지 골방고치로 불렀다구 합니다.》
그날 박사는 메고치의 푸르른 솔숲은 우리 나라에서 제일 큰 백로살이터라고 말해주었다.
해마다 봄날이면 수백마리의 백로들이 날아오는 이 고장은 참으로 아름답고도 신령스러운 곳이라고 자랑하였다.
박사의 말을 들으며 송영숙은 토색적이고 정서적인 두 지명에는 자원이 풍부하고 아름다운 호수에 대한 이 고장 사람들의 애착이 응축되여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럴수록 이 호수가가 나서자란 고향처럼 친근하게 안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