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 회)

제 3 장

봄의 의미

3

(1)

 

최현은 료양을 마치고 보름만에 은률군을 떠났다.

온천의 약효가 좋아서인지, 산골공기가 맑아서인지 몸도 한결 가벼워지고 아침마다 손발이 붓군 하던것도 퍽 가라앉았다. 그러나 귀로에 오른 최현의 낯색은 그리 밝지 못했다. 료양도중 뜻밖에 접하게 된 최광의 소식때문이였다. 그날 최현은 차를 타고 료양소정문을 나서는 길로 곧장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을 찾아갔었다. 혁명화를 하러 내려와있는 사람을 개인자격으로 찾아다니는것이 남들이 보기에 별로 좋을것같지 않고 벌어진 일을 객관적으로 알아보려면 본인보다 부위원장을 만나는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였다.

마침 부위원장은 자기 방에서 글을 쓰고있는중이였다.

《시간도 없는데 직방으로 묻기요. 최광이 무얼 제기된게 있소?》

최현의 갑작물음에 부위원장은 좀 놀라는 기색이였다.

그는 민족보위상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왔는가 하는것보다 최광에 대한 최현의 감정이 어떤가를 먼저 타진해보려는듯 한참이나 기색을 살피였다. 마침내 그는 최현의 엄한 표정에서 모든것을 눈치챈듯 속에 있던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놓았다.

《다른건 아니고… 최광동지가 국가재산에 속하는 예비부속품들을 자의대로 타용도에 돌려쓴것인데물론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지만 더러 입빠른 사람들이 그게 다 전직관념을 버리지 못한 교만한 행동이라고 말들을 하더라니… 허허… 사람들의 입을 제 혼자 돌아가며 꿰매놓을수야 없지 않습니까?》

최현은 일이 그렇게 되였다면 본인을 데려다가 따끔히 비판도 하고 일을 바로잡아야 할게 아닌가, 전직관념은 최광이보다 동무들이 더한것같다고 어성을 높이였다.

《최광이 여기 내려와있으니 이제는 동무들이 바로 그의 지휘관이란 말이요. 어째서 비판을 못하오? 그건 사람을 더 못쓰게 만드는거요. 난 여기 일에 이래라저래라할 권한이 없지만 최광의 옛 상관으로서 그리고 전우로서 부탁하는거요. 그를 진심으로 생각한다면 뒤공론을 할것이 아니라 앞에서 말해주시오.》

이쯤 말해놓고 쓴입을 다시며 인민위원회를 나섰다.

그 사람이 아래에 내려와서도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그런 관료주의 행세를 한단 말인가!

생각같아서는 당장 달려가서 한바탕 꾸중을 하고싶었지만 가뜩이나 마음고생을 하고있을 사람에게 욕이 나갈것같지 않아 그냥 돌아서고말았다. 료양소에 돌아와서는 갔던 일이 어떻게 되였는가고 묻는 안해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최현의 승용차는 어느덧 사택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집을 눈앞에 두고 승용차가 멎어서더니 부르릉거리며 뒤걸음을 친다. 웬일인가 해서 앞창을 내다보니 웃쪽에서 화물자동차 한대가 들들 굴러내려오고있었다. 좁은 외통길이니 내려오는 차에 먼저 길을 내주자는것같았다. 한치한치 바투 다가내려오는 화물차를 지켜보던 최현의 눈이 이상스럽게 껌벅거렸다.

《로친네, 저기 차에 실은게 우리 집 누운향나무가 아니요?》

김철호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듯 눈을 흘기며 앞창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그 나무가 옳다. 생각없이 시래기타래를 한번 널었다가 령감이 큰일났다고 야단을 쳐서 도로 거두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 나무로 말하면 최현이 체신상을 그만두고 당중앙위원회 부장으로 임명되던 날 집뜨락에 새로 심은 누운향나무였다. 그날 최현은 소담한 향나무를 뜨락에 심어놓고 이렇게 말했었다.

《여보, 이 누운향나무는 높이 자라지 않소. 항상 자기를 낮추고 가지를 옆으로만 뻗치지. 그래도 잎은 사시절 푸르거던. 난 우리 수령님앞에 한생을 이 누운향나무처럼 살겠소.》

그런 맹세가 깃든 나무여서인지 평생 화분 한번 제손으로 가꾸어보지 못한 최현이 이 향나무만은 아침저녁으로 물도 주고 때때로 가위를 들고나와 다듬이질도 해주었다. 그렇게 가꾸어온 나무를 화물차의 적재함에 실었다고 알아보지 못할리가 없다. 더구나 이 골목에 들어앉은 집들이라야 손안에 든것처럼 환한데 누운향나무를 심은 집은 자기 집밖에 없었다. 화물차는 어느새 최현의 승용차와 어기여 저만치 지나간다.

《저 나무를 어디로 싣고가는걸가요?》

김철호가 뜨아하게 물었다. 최현은 일체 대꾸를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있더니 운전사더러 차를 돌리라고 하였다.

《집엔 안 올라가겠어요? 올라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구

《당신은 떨어지오. 난 저 차가 어디 가는지 좀 알아봐야겠소.》

최현은 그자리에서 차를 돌려가지고 화물차의 뒤를 좇기 시작하였다. 좁은 골목길에서 차를 돌리느라고 시간이 좀 걸린데다 먼저 빠져나간 화물차가 인차 큰길에 들어서는통에 따라잡기가 베차게 되였다.

화물차와 승용차사이에 숱한 차들이 늘어서서 차의 뒤꽁무니는 보일락말락했지만 적재함우에 실은 향나무가 우뚝해서 놓쳐버릴 념려는 없었다. 향나무를 실은 자동차는 종로거리를 지나 보통문쪽으로 빠져서 한동안 강기슭을 끼고 달리더니 어느 나지막한 야산언덕에 이르러 덩실한 2층짜리 가옥으로 쑥 들어갔다.

《세워라!》

최현은 자동차가 들어간 집에서 50m쯤 떨어진곳에 차를 세워놓고 집주변을 두루 살피며 걸어올라갔다. 활짝 열려진 대문을 들여다보니 여라문명의 군인들이 적재함에서 향나무를 부리우느라고 야단법석이였다.

어찌나 정성스레 나무를 떴는지 물독만한 뿌리흙덩이에 새끼줄을 빼곡이 돌려감은것이 보기에도 무척 단단하였다.

《아, 동무들, 조심조심! 가지가 상하지 않게 이쪽을 좀 받쳐주오.》

아! 저 귀에 익은 음성

최현은 후닥닥 놀라며 대문안으로 달음질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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