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 회)

제 3 장

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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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루한 생각을 하느라니 발이 시린것도 좀 멎고 속이 뜻뜻해나는것같았다. 최현은 반두채를 량손에 갈라쥐고 그물을 쫙 폈다. 그리고는 물가의 넙적한 바위밑을 겨누고 슬슬 그물을 밀고나갔다.

산천어란 얼음같이 찬물을 좋아하는 놈들이여서 밤에는 물에 나와 놀기도 하고 먹이사냥도 하지만 해가 뜨면 서늘한 바위그늘속에 들이배긴다. 최현은 바위그늘을 목표로 그물을 몰고나가는데만 정신이 팔려서 물이 점점 무픞을 넘어 허벅다리까지 차오르는것도 몰랐다. 김철호는 령감이 저러다 훌꺽 물구뎅이에 빠져들지 않겠는가고 걱정을 하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가슴만 조이고 섰다. 무척 조심스럽게 그물질을 하는 남편의 잔등에 바스락소리라도 얹었다가는 물고기가 달아난다고 벼락을 칠것같아서였다. 운전사가 발목만 풀치지 않았어도 데리고왔겠는데 하고 속생각을 하는 찰나 바위뿌리에 반두를 쿡 찔러박았던 령감이 《이크!》 소리를 치며 팔을 들어올린다. 반두안에 고기가 얼마나 들었는지 채를 들어올린 두팔이 홧들홧들 떨었다.

《잡았다!》

최현의 벅찬 탄성이 좁은 산골짜기에 쩌렁 메아리쳤다.

싱글벙글거리며 물밖으로 나온 최현은 자갈밭우에 반두를 좌락 펼쳐놓고 퍼들쩍거리는 산천어들중에서 손바닥만큼 큰 놈들만 골라 바께쯔안에 넣고 나머지는 도로 물에 뿌려던졌다. 그렇게 골라냈는데도 무지개빛이 아롱아롱한 산천어들이 열댓마리나 바께쯔에 들었다.

사기가 부쩍 오른 최현이 다시 반두를 사려드는데 산봉우리웃쪽에서 와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등에 자동보총을 메고 권선기를 허리에 찬 군인들 대여섯이 개울 저편에 달려내려왔다. 선로검열을 나갔다 돌아오는 통신초소 군인들이였다.

《아니, 민족보위상동지, 산천어잡이를 하십니까?》

최현은 군인들에게 볼썽사나운 모양을 들킨것이 면구스럽다는 생각도 잊고 기분이 흡족해서 맞받아 소리를 쳤다.

《이 령감이 생선국생각이 나서 그래! 씨를 말리진 않을테니 못본척하구 올라가라구!》

그러자 병사들은 자동보총과 권선기를 벗어놓고 물에 들어설 잡도리를 하였다. 최현은 기겁을 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고기가 다 달아나겠다. 이건 내 손으로 잡아야 돼! 늬들 손으로 잡은건 맛이 없어!》

그러건말건 군인들은 군복을 벗어놓고 맨몸으로 물속에 뛰여들었다. 그러더니 어느사이 허리를 넘는 담소를 쑥쑥 건너왔다.

《그물을 이리 주십시오. 우리가 잡겠습니다!》

범같은 최현이였지만 이 하루강아지들을 말릴 도리가 없었다.

하는수없이 반두를 뺏기운 최현은 호박물부리를 입에 물고 자갈밭에 주저앉아서 물속으로 들어서는 군인들에게 잔소리만 듬뿍 먹였다.

《절대루 상하지 않게 조심조심 잡아라. 비늘 한개두 떨어지면 안돼. 손바닥보다 큰 놈은 건지구 작은 놈은 놔줘라. 정히 잡아야 돼!》

제잡담하고 잔소리를 했지만 젊음이 젊음이고 토배기들이 토배기들이였다. 군인들은 두어시간도 못가서 바께쯔를 다 채우고 쑥대를 꺾어 만든 한발짜리 꿰미 두개에 살이 통통 진 산천어를 그득히 꿰여놓았다.

김철호가 이만하면 된것같다고 소리치지 않았다면 하루종일이라도 건져낼 잡도리였다. 점심도 건느고 물고기잡이를 도와나섰던 군인들은 바께쯔와 물고기꿰미를 들고 료양소마당까지 따라내려왔다.

군인들속에서 나이가 그중 많아보이는 한 중사가 최현의 곁에 묻어내려오면서 산천어는 매운탕보다 살짝 말리웠다가 기름에 튀겨먹는것이 제일 맛있다는것, 말리울 때는 소금을 약간 뿌려서 기름기를 좀 뽑고 그늘에 말리워야 한다고 착실한 설명을 달았다. 김철호는 한발 먼저 내려와서 과일이며 말린 낙지며 사이다와 빵 같은것을 한구럭 준비해놓고 기다리다가 군인들에게 들려주었다. 최현은 받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군인들을 엄하게 닦아세웠다.

《늬들 민족보위상한테 갔다가 점심도 못얻어먹고 왔다는 뒤소리 하지 말구 올라가서 나눠먹어라. 밥 한그릇씩 먹여보내재두 여긴 사회료양소니까 내게 있는 군대식권으로는 통하지 않아서 그래.》

간식구럭을 받아든 중사는 빳빳이 허리를 펴고 거수경례를 하더니 병사들을 휘저어가지고 와르르 초소쪽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사라져간 골짜기에서 한참동안이나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였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골짜기쪽을 바라보고섰던 최현은 병사들의 웃음소리가 아주 멀어지자 호박물부리를 뻐금뻐금 빨며 김철호의 곁으로 다가들었다.

《로친은 못들었지? 아까 그 중사가 그러는데 산천어는 소금을 살짝 뿌려서 그늘에다 말려야 한다누만. 저기 버드나무그늘밑에 깨끗한 종이를 펴구 어서 산천어를 널자구.》

김철호는 아무리 급하면 밸도 따지 않고 말리울셈이냐고 핀잔을 하더니 식칼을 얻어오겠다고 식당주방쪽으로 갔다. 최현이 바께쯔안에서 아직도 푸들쩍거리는 산천어를 흐뭇하게 내려다보고있는데 정문쪽에서 키가 꺽두룩한 료양소소장이 씩둑썩둑 걸어들어오다가 꾸벅 인사를 하였다.

《기분이 무척 좋으셨습니다. 오늘은 사슴을 잡으셨습니까? 아이구, 이거 산천어잡이를 하셨구만요. 굉장한데요!》

최현은 료양소소장의 노죽을 밉지 않은 눈으로 여겨보다가 문득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소장! 이 주변에 고양이나 개 기르는거 없지?》

《없기는 합니다만 구해오라면…》

《에끼, 없으면 됐어. 그러니 사람만 주의하면 되겠군.》

《예?》

《이 산천어인즉 내 중히 쓸데가 있어 그러니 소장이하 이 료양소직원들이 눈요기도 해서는 안되겠네. 그리 알구 아래사람들에게 신칙을 하게. 마리수를 딱 세놓겠어!》

소장은 기다란 몸을 쭉 펴며 《알았습니다!》하고 큰소리를 질렀다. 식당에서 칼과 그릇을 빌려가지고 나오던 김철호가 그 모양을 띄여보고 허리를 엎질렀다. 최현은 소장의 옆구리에 낀 가방을 띄여보고 어디에 갔다오는 길인가고 물었다.

《군에 회의갔댔습니다.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이 노발대발했더군요.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는 차마 욕을 못하구 괜히 다른 기관책임자들만 두루거리루…》

《누가 뭘 잘못했기에 제 아래사람을 욕두 못해?》

《제가 말을 안했습니까? 총참모장을 하던 최광동지말입니다.》

쩔러덩하고 식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최현은 최광이 여기에 있다는 말을 듣느니 처음이였다. 외국출장을 갔다오자마자 여기로 왔으니 아마 자기가 없는 사이에 내려온 모양이였다.

《최광이가 여기서 뭘하는데?》

《차사업소 지배인이지요. 모르고계셨습니까? 일을 시작한지 한달이 채 못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무슨 일을 잘못해서 비판을 받아?》

소장은 최현의 눈에 심상치 않은 빛이 어리기 시작하는것을 눈치채고 어지간히 당황해졌다.

《글쎄 이름도 꼭 짚지 않고 그저 일반적으로 말하기에 회의때는 몰랐는데 나오면서 다른 기관책임자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그 아바이가 차부속들을 다른데로 빼돌렸다고 하더군요.》

《빼돌려? 차부속을 가지고는 어쩐다는게요?》

최현의 목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오해겠지요. 설마 그 아바이가…》

소장은 슬그머니 말꼬리를 사리며 사무청사쪽으로 사라졌다.

산천어바께쯔에 손을 담그고앉은 김철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최현을 올려다보았다.

《한번 가서 만나봐야 하지 않을가요? 소장도 뒤에서 들은 말이라는데… 정말 오해일수도 있지 않아요?》

《그러지 않아도 사실여부를 알아보지 않고는 밥도 목구멍에 넘어갈것같질 않소!》

최현은 아직도 접질린 발목을 절뚝거리는 운전사를 일으켜 승용차에 붙들어앉히고 부리나케 료양소정문을 나섰다.

경적소리에 놀란 소장이 사무청사에서 뛰쳐나오더니 먼지를 일구며 정문밖으로 달아나는 승용차의 꽁무니를 아연실색하여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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