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3 장

봄의 의미

2

(1)

 

산골물이란 워낙 날씨가 더울 때에는 발이 저리게 차겁고 추운 날씨에는 김까지 문문나게 미지근한 법이다. 때는 초여름의 한낮이라 응당 물이 차려니 하고 생각은 했지만 정작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들어서니 바늘같은것이 발등을 꼭꼭 찌르는것같기도 하고 쩡한 기운이 등골로 치솟아서 눈이 쿡 쑤시게 머리가 아파났다. 그래도 최현은 눈을 질끈 감고 매끈매끈한 돌들을 발더듬으로 짚으며 무릎이 잠길 때까지 개울복판에 들어섰다. 산전수전 다 겪은터에 이쯤한 산골물이 무엇인가고 내심 이발을 사려물기는 했어도 나이탓인지 심장이 활랑거리고 등허리가 뻐근해왔다. 발을 옮겨보려 했지만 무릎이 얼어붙었는지 움직여주지를 않는다.

최현은 손에 들었던 반두채를 세워서 지팽이처럼 꾹 짚고 섰다. 개울가에 바께쯔를 내려놓은 김철호가 걱정스레 물었다.

《령감, 일없겠수? 물이 차지요?》

최현은 머리를 쑥 돌려 마뜩지 않은 눈으로 로친을 바라보았다.

《누굴 뭘루 알구 그래? 이제 당장 씨비리에 떨궈놔두 얼어죽진 않아!》

호통은 쳤지만 턱이 둘둘 떨리는것만은 막아낼길이 없어 이제는 뭐라고 물어도 대답을 하지 말자고 입을 꽉 다물었다.

최현이 료양소가 자리잡은 골짜기의 맨 막바지까지 물고기잡이를 올라온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며칠전 모스크바에서 돌아오는 길로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온 최현은 부인과 함께 료양소에 가서 며칠동안 휴식을 하고와야 하겠다는 뜻밖의 말씀을 받아안게 되였다. 방금 외국에 가서 바다바람을 쏘이고 왔는데 하루빨리 일을 하고싶다고 말씀올렸으나 수령님께서는 당조직의 결정이니 두말말고 가라고 하시면서 동무가 군대료양소에 가면 군복입은 소장들을 강권으로 눌러놓고 휴식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하기때문에 이번에는 사회료양소로 보내겠다고 하시며 은률군에 위치한 온천료양소를 꼭 짚어주시였다. 이렇게 되여 료양을 오게 되였는데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하루를 보내고나니 가뜩이나 《억지휴식》을 온 최현은 좀이 쑤셔서 견딜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기상나팔소리라도 듣고 군인들의 대렬합창하는 모습이라도 좀 봐야 밥맛도 나겠는데 얼굴이 해사한 관리원처녀의 사근사근한 목소리며 침대에 깔아놓은 두툼한 비단이불이며 원탁우에 놓인 둥근 어항까지도 모두 사회맛이 나서 맥살이 풀리는것같았다.

이틀째 되는 날 아침, 최현은 하루 삼시 인사차로 방에 들리군 하는 료양소소장에게 퉁명스레 물었다.

《이보라구, 소장 여기 어디 총질할만 한데가 없나?》

소장은 말뜻을 몰라서 눈을 뜨부럭거리였다.

《사냥할만 한게 없나 말이야?》

그제서야 키가 꺽두룩한 소장은 긴장해졌던 얼굴에 화락한 웃음을 피워올렸다.

《왜 없겠습니까? 꿩두 있구 산토끼두 있구 사슴두 있는데요.》

《사슴이 있어?》

최현은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어디에 그런게 있는가고 다우쳐물었다.

《사슴이라고도 하구 노루라고도 하는데 잘 모르긴 하겠지만 한놈 있긴 있습니다. 요 앞산너머에 높은 바위산이 하나 있는데 듣자니 그 꼭대기 굴에서 산답니다. 헌데 그놈이 얼마나 날쌘지 봤다는 사람은 많아두 아직 잡았다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최현은 삽시에 눈에 생기가 돌고 흐뭇한 웃음이 입가에 떠올랐다.

《임잔 사냥문셀 잘 모르는군. 바로 그렇게 날쌘놈을 따라다녀야 총질할 재미가 있는거야. 원, 이 최현이보구 꿩잡이를 하라고 하다니…》

사실 최현이 사슴소리에 귀맛이 동한것은 산짐승이 욕심나서가 아니였다. 료양소로 오기 전에 수령님을 만나뵈오면서도 느꼈지만 어쩐지 요즈음 자기를 바라보시는 그이의 안광에 자주 근심어린 기색이 어리군 하였다.

내놓고 말씀을 하신적은 없지만 그때마다 최현은 자기의 나이를 세여보시는 그이의 서운함을 륙감으로 느끼였다. 그래서 수령님앞에 나설 때면 늙은티를 없애느라 우정 어리광도 부려보고 거수경례도 씩씩하게 하느라고 하는데 마음뿐이지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아 애를 먹는다. 그런즉 자기가 료양을 와서 사슴까지 한놈 쏘아잡았다는 보고를 들으시면 수령님께서 잠시나마 《최현이가 아직 펄펄하군.》하고 기뻐하시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 바짝 구미가 동했던것이다.

최현은 로친이 정신나갔다고 떼말리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운전사와 함께 산으로 올랐다. 사냥에 미립이 튼 최현은 한창 햇풀이 덮이기 시작한 산판을 샅샅이 훑으며 사흘만에 사슴의 흔적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찾아놓고보니 사슴같기도 하고 노루같기도 하다던 소장의 말이 옳았다.

붉은 밤빛바탕에 다박다박 흰점이 박힌것으로 보면 사슴같은데 이맘때면 머리우에 돋아있어야 할 뿔이 없는것으로 미루어 노루비슷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슴이면 어떻고 노루면 어떠랴.

최현은 쌍알배기렵총을 고누어들고 벼랑턱에 올리붙은 점박이를 겨누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야 사거리가 짧은 렵총이나 가지고는 그렇게 멀리 탄알을 날릴것같지 않았다. 저렇게 조심성이 많은 놈들은 일단 한번 선불을 놓으면 다시 맞다들기가 어렵기때문에 열백번을 재여보고 한번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최현은 총에서 손을 떼고 다시 산을 톺아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놈이 어디 바위굴에서 산다고 한것같은데 거기까지라도 올라가볼 심산이였다. 그러나 끝내 도중에 포기하고말았다. 벼랑이 깎아세운것처럼 가파로운데다 멀리서 보기와는 달리 어찌나 높은지 말배때기에 거꾸로 매달려 휘파람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던 독립군의 련락병시절이였다고 해도 엄두를 내지 못할것같았다. 그나마 제가 좀 젊었노라고 흰소리를 치며 벼랑에 올리붙었던 운전사녀석이 데구루루 굴러서 발을 풀치고 주저앉는 통에 사슴대신 사람을 메고 내려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총질은 하지 않았지만 벼랑밑에 와서 소란을 피운 인적기에 위협을 느낀 점박이는 그때부터 굴밖으로 코도 내밀지 않았다. 이래저래 부아가 동한 최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낚시질이라도 해서 갑갑한 속을 풀어볼양으로 료양소뒤뜰에 있는 담소에 나갔다.

하지만 그것도 해볼만한 일이 못되였다. 원래부터 고기가 없는지, 한해에도 몇차례씩 오고가는 료양생들이 다 건져냈는지, 아니면 최현의 낚시질이 서툰것인지 하루종일 잡은것이 손가락같은 모래무치 대여섯마리에 망챙이처럼 못생긴 뚝지 두마리였다. 워낙 고기를 잡아도 그물로 끌어서 대번에 몇두름씩 잡아야 성차하는 최현은 제 보기에도 멍청이짓같아보이는 낚시질에 끝내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침실로 돌아오고말았다.

최현의 속마음을 잘 아는 김철호가 군대들냄새를 정 맡고싶으면 이 료양소 웃골짜기에 자그마한 통신초소가 하나 있다는데 운동삼아 거기라도 올라가보시구려 하고 부추기였다. 그렇게 되여 《통신초소구경》을 갔던 최현이 산에서 내려오자바람으로 로친네를 일으켜세우며 래일부터 당장 물고기잡이를 하러 올라가자고 복닥소동을 피웠다.

《아니, 원, 고기를 잡으러 산에 올라간단 말이요?》

《거기 통신초소밑에 큰 소가 하나 있는데 37mm고사포탄만 한 산천어가 득실득실해! 잔말말구 큼직한 바께쯔나 하나 얻어놓소. 반두는 내가 소장에게 부탁해보지.》

김철호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령감이 늘그막에 환장을 하셨구려. 아이들처럼 반두질까지 하겠어요? 정 물고기생각이 나면…》

《내가 뭐 비린내생각이 나서 그러는줄 아나? 당신두 생각나지? 수령님께서 백두산밀영에 계실 때 김정숙동지가 구워올린 소백수산천어가 참 별맛이였다고 추억하시던 일말이요. 전문섭이가 그러는데 지금두 늘 그때를 잊지 못하셔서 삼지연쪽에 가시면 곰취랑 병풍이랑 뜯군 하신다는거요. 그러니 우리가 산천어를 잡아올리면 여북이나 기뻐하시겠소?》

최현의 말을 듣고난 김철호는 너무 기뻐 어쩔줄을 몰랐다.

《그거 참 좋은 생각을 하셨수다. 이왕 잡을바엔 좀 많이 잡아서 우리 청년장군께두 함께 드리자요. 우리 늙은것들때문에 늘 마음을 많이 쓰시는데 우리가 뭐 특별히 보답한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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