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 회)

제 3 장

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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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한껏 무르익어서 5월도 허리를 꺾고 초여름으로 넘어섰다.

작은 포도송이같이 드렁드렁 드리운 뽀뿌라나무열매들에서 하얀 씨솜들이 탁탁 튀여나 따뜻한 바람에 눈송이처럼 흩날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실창가에서 복숭아나무의 락화가 울긋불긋하게 깔린 정원을 내려다보시였다. 꽃이 떨어진 나무아지들에는 참새의 염통만한 풋열매들이 새파랗게 조랑졌다. 봄의 녀신은 자기의 목걸이에서 하나하나 떼여낸 구슬들을 꽃이 진 나무가지끝에 매달아놓고 소리없이 떠나가려 하는듯싶다. 짤막한 봄은 소박한 열매를 남겼지만 그것은 미구에 크고 향기로운 과일로 무르익을것이다. 봄의 진정한 의미는 큰것을 남긴데 있는것이 아니라 클수 있는것을 남겼다는 탄생의 노력에 있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나간 봄계절에 맺어진 소중한 열매들을 하나하나 더듬어보시였다.

예술영화 《피바다》, 그것은 영화혁명의 불길속에서 태여난 첫 열매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성과에 토대하여 《한 자위단원의 운명》과 《꽃파는 처녀》를 비롯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 몸소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로 옮기는 사업을 계속 줄기차게 벌려나가며 나아가서 수령님의 존귀하신 영상을 모신 혁명영화까지 창조하실 결심이였다. 이번에 영화촬영에 동원된 백두산창작단의 재능있는 창작가, 예술인들은 모두 자신과 함께 이 봄날의 열매를 가꾸었고 앞으로 영화계의 풍년가을을 안아올 동지들이다.

자신께서도 당중앙위원회일군들로 독서조를 뭇고 한 3년동안 진행해오신 고전연구를 이 봄에 전부 거의다 끝내시였다.

며칠전 당중앙위원회 도서실에서 로동계급의 100년사상사총화에 바쳐진 3년을 돌이켜보며 최원식이 하던 말이 떠오르시였다.

《아마 김정일동지께서 그동안 보신 책들을 다 쌓아놓으면 지금 건설하고있는 천리마거리의 제일 높은 고층아빠트만 할것입니다.》

어느 정도 과장된 말같기도 하지만 결코 그보다 작게는 생각되지 않으시였다. 문제는 읽고지나간 고전의 페지수나 책의 두께에 있는것이 아니라 바로 그로 하여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상의 독창성을 뚜렷이 립증할수 있게 되였고 주체사상을 새롭게 정식화할수 있는 리론적기초가 마련되였다는데 있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치와 경제, 군사와 문화, 체육과 보건은 물론 국가활동과 인간생활의 모든 분야에 어버이수령님의 사상과 리념, 구상과 의도를 완전무결하게 관통시켜나갈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바라보고계시였다. 머지않아 세계는 동방의 작은 나라인 조선이 사회주의의 모범으로 일떠선 자랑스러운 력사가 다름아닌 우리 수령님의 력사라는것을, 우리 민족은 명실공히 김일성민족이며 수령님을 떠나서는 그 존재와 운명, 미래에 대해 생각조차 할수 없는 김일성조선이라는것을 똑똑히 알게 될것이다.

며칠전에 쏘련에서 발행된 신문을 보면서 느끼셨던 격정이 새삼스럽게 되살아오르시였다. 신문에는 《새로운 군사과학과 인간》이라는 제목을 달고 국제군사과학연구토론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모스크바에 온 조선인민군대표 김순일과 본사기자와의 단독회담내용이 실리였는데 필자는 취재자의 이야기를 전재하면서 이렇게 자기의 해석을 달았다.

《만약 조선인민군이 자기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실천하려는 의지앞에 그분에 대한 매혹과 신뢰를 놓는다면 이는 김순일장령이 론의하는 사상령역보다 종교적신앙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것이다. 신앙이란 문자그대로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할수 없는 신비로운 우상에 대한 추종을 의미하며 이것은 오래동안 군사분야에 존재하여왔다. 세계적으로 가장 오랜 전쟁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실례든다면 수천년전에도 군사가들은 신의 의사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단 한명의 병졸도 움직일수 없었다. 그러나 인민군장병들이 그처럼 신뢰하고 친어버이로 따르는 김일성동지는 현존하는 우리의 동시대인간이시다. 그의 이야기가 사실이고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전쟁에 미친 영향이 그처럼 거대할진대 어째서 이것이 군사과학분야에서 배제되여야 하는가. 하물며 저 서방세계에서 가장 비과학적인 종교도 과학으로 정립하고있는 시대에 이처럼 현실적이고 정당한 주장을 도외시한다는것은 참으로 의문스럽고 유감천만한 일이다.》

타국의 한 기자가 우리의 사상론을 종교적신앙과 비교한데 대해서는 그리 달갑지 않으시였으나 그 필자의 주장보다는 김순일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끌리시였다. 소박한 이야기속에 깊은 철학이 깃들어있었다.

얼마전 렬차칸에서 만나신 후에도 여러차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릎을 마주하고 우리 식의 군사전법과 리론에 대하여 허심한 의견을 나누면서 그를 훌륭한 교육자, 쟁쟁한 리론가로만 생각하여오시였는데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그처럼 뚜렷한 인생관이 자리잡고있었다는것이 무척 놀랍고 기쁘시였다. 그러고보면 그가 그토록 자신의 마음을 끌어당긴것이 해박한 지식이나 론리만이 아닌것같았다. 그는 무척 진실하고 소탈한 사람이였다. 그의 아들도 아버지를 닮은것이 분명하였다. 이번에 석도에서 사고가 났을 때도 그가 직접 바다물속에 들어가 물속에 잠긴 ㄷ형강들과 전마선을 찾아냈다고 한다.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정치지도원이지만 최진성이네 중대를 생각할 때마다 안경을 낀 젊은 군관의 모습이 우렷이 떠오르면서 커다란 믿음이 가슴속에 차오르군 하시였다.

리철봉도 이번 외국방문기간에 느낀 감상을 국제우편으로 보내여왔다.

그는 이번 군사연습참관과 외국방문을 통하여 대국군사가들의 허약한 대적관과 전쟁의지를 통감하였다고 하면서 이제부터는 다른 나라의 발전된 기술과 장비에 대한 그 어떤 미련도 없이 주체적인 해상전법을 창조하는데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겠다고 결의하였다. 뒤끝에 그는 어린시절의 돈 50전으로부터 시작된 김정숙어머님의 깊은 사랑과 숭고한 뜻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아왔노라고 심심한 반성까지 하였다.

리철봉이 떠날 때 따로 말씀하신것은 없지만 자신께서 하고싶으셨던 말을 그자신이 이미 다 한셈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맞은켠벽에 걸린 벽시계를 바라보시고나서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이제 한시간후에 최현과 리철봉, 김순일이 평양비행장에 도착한다. 아무리 바빠도 오늘은 꼭 마중을 나가야 하겠다고 결심하시였다. 자신께서 나가지 않는다면 필경 최현이 먼저 찾아올것이다.

기별도 없이 문득 자신의 집무실에 찾아올 때마다 나이많은 로투사를 앉은자리에서 마중하는것이 늘 옹색하시였는데 오늘처럼 비행기도착시간까지 알고도 먼저 나가지 않으면 일이 손에 잡힐것같지 않으시였다.

곧 집무실을 나설 차비로 책상우에 놓인 문건들을 간종그리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총참모부와 련결된 송수화기를 들어올리시였다. 수화기에서 반가움에 넘친 오진우의 석쉼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오진우동지, 안녕하십니까? 오늘 최현동지가 돌아온다고 하기에 제가 부탁했던것이 어떻게 되였는가 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 최현동지의 집 말입니까? 그러지 않아도 래일이나 모레쯤 보고를 드리려던참인데… 이제는 도배를 하고 마감정리만 하면 됩니다. 제가 어제밤에 나가봤는데 보내주신 설계대로 괜찮게 된것같습니다.》

《그래요? 역시 군대가 빠르긴 빠릅니다. 말을 뗀지 스무날도 못되였는데 벌써 다 지었단 말이지요?》

그러자 저쪽에서 무척 난감해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집은 다 지어놨지만 이사조직을 어떻게 하겠는지… 제가 일전에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시였다. 바로 최현이 와르샤와로 떠나기 며칠전에 오진우와 나누셨던 이야기가 떠오르시였다.

《오진우동지, 최현동지가 수도물도 잘 나오지 않는 낡은 집에서 몹시 불편을 느끼고있지 않습니까?》

《불편하다뿐입니까? 하지만 집을 새로 짓겠다고 하면 큰일난것처럼 야단을 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요전번에 한번 말을 뗐다가 어떤 비판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제가 춤추고싶으니까 동서더러 춤추라고 한다는겁니다. 그런 면에서는 철호동지도 짝지지 않습니다.》

《그러길래 본인이 모르게 슬그머니 집을 지으면 되지 않습니까?》

《집을 짓는건 문제될것이 없는데 이사를 시키는게 걸려서 그럽니다.》

《그건 그때 가서 보기로 하고 당장은 집부터 짓고봅시다. 설계는 제가 좀 연구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되여 최현이 모르게 새 집을 짓는 일이 시작되였던것이다.

오진우의 난감해하는 어조로 미루어 이제는 슬그머니 발을 뽑고싶어하는 눈치인데 당장은 자신께서도 최현의 고집을 꺾어낼만한 수가 딱히 떠오르지 않으시였다. 새 집을 열두채 지어놓았다고 해도 본인이 이사를 못하겠다고 뻗치면 어쩌는수가 없게 되는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래도 이 문제만은 어버이수령님께 보고드려 해결을 받는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시며 집무실을 나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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