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회)
제 2 장
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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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리철봉에 비해 키가 약간 크고 이마가 훤칠하게 벗어진 김순일은 느슨하게 뒤짐을 지였던 손을 풀면서 걸음을 늦추었다. 굽실굽실한 머리카락을 훤듯하게 빗어넘긴 너부죽한 얼굴에 후렁후렁한 옷차림을 한 김순일은 얼핏 보기에 지성미가 짙은 학자형으로 보였지만 총이 센 두터운 눈섭이며 강렬한 빛을 발산하는 억실억실한 눈, 굵은 피줄이 주럭주럭 살아오른 관자노리에는 역시 감출수 없는 군인의 강기가 느껴졌다.
《나는 이번에 하마트면 토론회에 참가하지도 못할번 했소. 글쎄 주최측에서 내 토론요지를 검토해보고는 군사과학과 련관이 없는 주제를 설정했기때문에 보류하겠다는것이 아니겠소?》
《그럴리가 있습니까? 전번에 부총장동지는 〈조국해방전쟁에서 이룩된 승리의 요인과 산악전과 관련한 몇가지 문제〉라는 제목으로 토론하겠다고 하신것같은데… 군사과학과 련관이 없다는것은 무슨 억지입니까?》
김순일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눈으로야 그렇게 불만도 했지. 내가 토론하려고 한 승리의 요인이라는것은 어떤 물리적힘이 아니라 군인들의 대중적영웅주의와 희생정신의 원천 즉 정신적령역에 대한것이였으니까…》
《예. …》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생각에 잠겼던 철봉은 다시 얼굴을 쳐들어 김순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말씀을 들어보면 종당에는 토론회에 참가했다는 의미인것같은데 그들이 어떻게 견해를 바꾸었습니까?》
《사실 나는 그들과 더 론쟁하고싶은 생각이 없었소. 듣지 않겠다면 말하지 않는것이지. 우리 학생들에게 강의하는것하고야 다르지 않소?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것을 품들여 설명해줄 의무는 없는것이고… 첫날에는 그냥 숙소로 돌아왔소. 그런데 저녁에 어떤 기자가 나를 찾아왔더군.》
그날 저녁 김순일을 찾아온것은 알렉싼드르 쥬가노브라고 하는 40대중엽의 《쁘라우다》신문사 기자였다. 쥬가노브는 군사과학연구토론회의 소식을 어떻게 내탐해냈는지 김순일의 이름이며 토론제목, 그것이 보류되게 된 동기까지 낱낱이 알고 찾아왔다. 전형적인 슬라브인의 우둥퉁한 얼굴에는 직업적인 호기심이 짙게 내풍기였다.
《실례입니다만… 저는 얼마전에 국제철학연구토론회도 취재한바 있습니다. 그때 조선에서 온 한 사회과학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지요. 어째서 조선사람들은 사회주의건설에서 사상의 우위성을 계속 주장하는가? 혹시 조선사람들은 이데올로기의 목적보다 이데올로기자체에 더 큰 매혹을 느끼는것이 아닌가? 용서하십시오. 나는 기자로서 진심으로 문의하는것입니다. 의식과 물질가운데서 물질이 1차적이라는것은 맑스나 엥겔스가 내놓은 유물론적철학이기도 하지만 실지에 있어서 보통인간이 이데올로기와 흘레브중에서 어느것을 먼저 선택하겠습니까? 나는 내나름의 주장으로 확언합니다만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종국적승리도 결국은 물리적대결에서의 승리외에 다른 길이 없는것이 아닐가요? 군사적으로는 군비경쟁에서 이겨야 할것이고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더 부유한 물질생활을 창조해야…》
김순일은 손을 들어 기자의 말을 끊어버렸다.
《당신도 문필가일테니 무슨 경제학을 론하기보다는 차라리 한 인간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것이 어떻소? 반대하지 않는다면 말이요.》
말문이 막힌 상대가 자기의 물음을 외면하는것이라고 짐작한 쥬가노브는 어떤 이야기이든 뉴스감이 될만한것이라면 마다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록음기를 꺼내들었다. 기자가 취재준비를 끝내자 김순일은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이야기인즉 내가 살아온 이야기인데… 나는 어려서 가난한 산골농가에서 태여났소. 얼마나 째지는 살림이였는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일찍 장가를 든 형님과 형수, 세살난 조카와 나까지 여섯식구가 사는 집안에 재산이라고는 젖짜는 어미염소 한마리가 전부였소. 그러니 학교라는것은 꿈도 꿀수 없었지. 나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워 견딜수가 없었소. 그래서 어느날 마음씨 무던한 형수와 작당을 해가지고 집안에 한마리밖에 없던 염소를 이웃마을에 팔아버렸소. 그 돈을 쥐고 서울로 달아났소. 염소값을 려비로는 한푼도 쓰지 않고 문전걸식을 하다싶이 하면서 보름동안 길을 걸어 서울에 도착하고보니 내가 가지고 온 돈이라는것은 학비와 숙식비로 쓰기엔 두어달분밖에 되지 않더군. 어쨌든 발을 붙이고 앉은 다음에 보자는 배심으로 하숙집에 틀고앉았는데 이튿날 서울에 뒤쫓아온 형에게 덜미를 붙들렸소. 형님은 무서워서 부들부들 떠는 나에게 불이 나게 귀뺨을 붙이더니 내 희망의 전부였던 돈을 몽땅 빼앗아가지고 울면서 고향으로 돌아갔소. 뺨은 내가 맞았지만 눈물은 형님이 더 많이 흘리더군. 공부하고싶어서 집을 나간 제 친혈육의 손에서 염소값을 도로 빼앗아오지 않으면 하루도 살아갈수 없을만큼 험악한 세월이였소.》
심드렁하게 듣고있던 쥬가노브의 눈빛에는 점점 호기심이 짙어갔다.
《그러던 내가 처음으로 학교문전에 들어선것은
김순일의 이야기는 계속되였다.
꿈에도 뵙고싶던
《…그런데 일은 정말 교장선생이 이야기하던 그대로 되였소. 글쎄
쥬가노브기자는 점점 더 호기심에 끌려 록음기를 손에 든채 김순일의 가까이로 바투 다가앉았다.
…
사무실안을 오락가락하던 교장이 머리를 푹 수그리고 방에 들어선 김순일을 큰소리로 꾸짖었다.
《이녀석! 네가 그래도 제일 머리가 크길래 좀 온전한 대답을 할줄 알았는데 그런 철없는 청을 드리다니!
사실 김순일의 집에는 결혼한지 한해밖에 안되는 열여섯살짜리 안해가 있었다. 김순일이 형의 뒤를 따라 서울에서 돌아온 후에도 계속 공부바람이 나서 돌아가는것을 본 아버지가 일찍 장가를 보내면 가사에 몸이 붙을거라고 하여 억지로 붙여준 네살터울의 안해였다. 들고싶지 않은 장가를 억지로 든데다 색시라는것이 코흘리개 아이같아서 따뜻한 정을 나눈적은 없었지만 학원에 와서 미끈한 군복을 받아입고 제식훈련을 하면서부터는 자기의 의젓한 모습을 나어린 안해에게 보이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치솟군 했다. 하지만 김순일
그날
《교장선생님, 저는 이제 당장 학원에서 쫓겨나도 일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엄한 표정을 짓고있던 교장은 금시 눈물을 쏟을듯이 얼굴을 이그러뜨리며 김순일을 와락 그러안았다.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