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회)

제 2 장

파도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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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들과의 담화를 마치고 금봉휴양소를 떠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점심녘에야 당중앙위원회로 돌아오시였다.

오전 한겻동안 작가들과 장편소설초고에 대한 의견도 주고 새로 만들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더 나누시였다. 작가들은 그이께서 내놓으신 의견과 대안들을 절대적으로 찬성하였고 흥분하였다.

그 흥분이 자신께도 마쳐온듯 차안에서 밤을 꼬박 새우셨는데도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으시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시려던 그이께서는 문득 이상한 느낌에 옆을 돌아보시였다.

복도 저쪽에서 문이 열리다가 황급히 닫기는것이 보였다. 아마 김량남이 문을 열고 나오다가 자신의 기척을 느끼고 도로 들어간 모양이다. 부서성원들이 모두 아래단위에 나가있고 남은것은 그뿐이니 틀림없었다. 몇달전 경기장사건으로 비판을 받은 후로는 매번 저렇게 자신을 피하는 김량남이다. 그이께서는 김량남이 저러다가 자신의 절곡한 마음도 모르고 아주 정이 멀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갈마드시였다. 귀한 자식일수록 매로 키운다는 말도 있는데 오히려 그 매는 자신께서 맞는것만 같으시였다. 동지를 매질하는 아픔이 얼마나 참기 어려운 고통인가를 김량남은 알고나 있는지. 방금전까지 미소를 머금고계시던 그이께서는 무거운 안색으로 집무실에 들어서시였다.

하루밤 방을 비웠는데도 집무탁우에는 문건들이 탁상등높이만큼 쌓이였다. 전화로 교환을 찾아 총정치국의 로일수부국장을 련결해달라는 부탁을 하고나서 곧 밀린 문건들을 펼치기 시작하시였다.

2. 8영화촬영소에서 어버이수령님의 교시에 따라 예술영화 《녀성고사총수들》을 수정완성한 정형보고…

만수대예술단 창조성원들을 선발하는데서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

피바다가극단…

당 제5차대회에 드릴 선물을 마련하기 위한 증산투쟁에서 발휘된 소행자료들과 이러한 긍정을 널리 일반화하기 위한 대책…

농촌지원과 관련한 선전선동방안…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제기된 자료…

예술영화 《피바다》창조성원들의 창조정형보고…

그이께서는 문건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신채 전화로 조선예술영화촬영소를 찾으시였다.

《총장동무입니까? 문건을 보니 피바다가 거의 완성되여가는것같은데 조급해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당에서 그어준 수준을 유지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일이라는것은 항상 시작보다 결속이 중요한게 아닙니까. 내 어제 ㅎ제강소에 나가보니 그곳 로동자들속에는 벌써 피바다에 대한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기대가 큰데 영화가 소문보다 못하면 안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현지에 나가있는 영화예술인들의 건강과 집에 떨어져있는 가족들의 생활을 잘 돌봐줄데 대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고나서 다른 문건을 또 끌어내리려다가 손길을 멈추시였다.

아직도 두툼한 문건들…

김량남이 처벌을 벗고 자기 일을 시작하면 이 문건들이 절반은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자신의 부담은 좀 덜어지겠지만 그만한 일감을 가뜩이나 병약한 사람이 걸머지고 뛰여다닐것을 생각하니 새로운 걱정에 가슴이 얼얼해오시였다. 끝내 다른 문건을 펼치지 못하고 기록영화촬영소에 나가있는 신인하부부장을 찾으시였다.

《부부장동무, 현장에 나가있는 부서동무들이 언제 다 들어옵니까?》

피곤이 꽉 몰린듯한 신인하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울려나왔다.

《오늘 14시까지 다 들어오게 되여있습니다. 학습총화도 있고 강연회도 있습니다.》

《참, 그렇군요. 그럼 부서성원들에게 오늘 저녁 학습총화가 끝난 다음 다들 퇴근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전해주십시오. 긴장해할것은 없고 요새 동무들이 현장에서 밤을 새우며 수고들 하는데 시원한 농마국수를 내자고 그럽니다. 신동무는 국수를 남달리 좋아하니 아예 점심을 굶고오는것도 좋겠습니다. 하하하…》

그이께서 송수화기를 내려놓으시는데 기다렸던듯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선것은 방금전에 전화를 련결해달라고 교환수에게 부탁하셨던 로일수부국장이였다. 그가 들어서자 집무실안에는 싱싱한 풀냄새같기도 하고 구수한 흙냄새같기도 한것이 엇섞여 풍기였다.

《아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나는 전화를 걸어달라고 했는데…》

로일수는 뜻밖인듯 의아한 표정으로 굳어졌다.

《저는 금방 전연에서 돌아오는길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깨도가 되신듯 밝은 웃음을 지으시였다.

《나는 지방에 나갔다가 오자마자 동무를 찾았는데 동무는 또 전연에서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찾아왔으니 우린 서로 통하는데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 전연형편은 어떻습니까?》

그이께서 의자를 권하시였으나 로일수는 앉을념을 하지 않고 군인다운 목소리로 씩씩하게 대답올렸다.

《적들이 끝내 수그러들기 시작했습니다. 3일전에 노루봉근방에서 소총사격을 몇번 하고는 지금까지 조용합니다. 전연에 증강되였던 미군부대들과 괴뢰군 야전사단들도 모두 철수하였습니다. 이번에 당보에서 〈EC-121〉호사건과 관련한 적들의 고의적인 전쟁도발책동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또 외무성에서 외교활동을 적극적으로 벌려 세계 각국의 언론들을 불러일으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이번에 허담동무랑 수고한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승리의 근본원인은 인민군대의 위력입니다. 힘이 안받침되지 않은 외교란 결국 구걸에 지나지 않는것입니다. 허담동무도 이번에 우리 군대가 적들의 도발에 강력한 대응조치를 취하고 든든히 뻗쳤기때문에 배심이 든든해서 적들을 되게 다불릴수 있었다고 몇번이나 이야기했는지 모릅니다. 총정치국동무들도 이번에 수고가 많았습니다.》

로일수는 과찬의 말씀이라고, 이번에 총정치국일군들이 전연에 나가 정치사업을 좀 하느라고 하였지만 최현민족보위상과 오진우총참모장보다 한걸음 뒤떨어졌다고 솔직히 고백하였다.

《정말 이번에 항일투사들의 정신세계에서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들이 사무실에 앉아 정치사업방안을 토의하고 지도사업요강이나 작성하고있을 때 투사동지들은 벌써…》

진심이 어린 겸손이였다. 무관답게 시원시원하면서도 항상 어깨를 낮추고 생활하는 로일수의 인간됨이 새삼스럽게 미더워나시였다. 안영환이 건강상리유로 병원에 입원한 다음부터는 총정치국의 모든 사업을 도맡아안고 뛰여다니면서도 언제 한번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다.

《옳은 말입니다. 우리는 늘 투사동지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혁명에 대한 충실성과 헌신성에서는 그들을 따를만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나는 부국장동무의 그 말을 총정치국의 반영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로일수가 보고드리는 전연에서의 정치사업정형과 일부 편향들, 현재 전연군단들의 정황에 대하여 주의깊이 들으시다가 문득 이렇게 물으시였다.

《그러니 지금 21군단동무들도 평시 동원상태로 이전했겠습니다?》

《1제대보병과 민경군인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진지에서 철수하였습니다. 군단참모부에서는 이번에 리오송정치위원의 예비대가 큰 은을 냈다고 하면서 군단적으로 강행군훈련을 드세게 내밀 작정을 하는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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