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제 2 장

인생의 봄시절은 흘러갔어도

8

(1)

 

시험호동을 나선 송영숙은 또다시 무대우에서 멋진 연기를 마치고 휴계실에 들어선 배우의 심정이였다.

벌써 두번째 연기였다. 처음 공장에 와서 뜻밖에도 정의성을 만났을 때 지배인이며 청년직장장 그리고 그곳 관리공앞에서의 연기였고 오늘은 서정옥이와 리봄순앞에서의 연기였다.

그 연기는 사소한 실수나 어색한것이란 조금도 없는 세련되고 성공한 연기였다. 그러나 돌이켜볼수록 송영숙의 마음은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무대》에는 두사람이 나섰는데 자기만이 열심히 연기를 하였을뿐 정의성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송영숙을 비웃고 조롱하는듯 하였다.

(나는 왜 사람들앞에서 자기의 감정을 숨기는가? 기사장의 체면때문에? 하다면 나에겐 정동무에 대한 좋은 감정뿐인가? …)

어느덧 그의 걸음은 새끼오리입사준비로 들썩한 새끼오리호동으로 향해졌다.

새끼오리에게 줄 첫 먹이를 조리하는 관리공들의 경쾌한 칼도마소리와 록음기에서 울리는 흥겨운 음악으로 호동안은 명절분위기였다.

잠시후 누군가 《새끼오리가 온다!》하고 소리쳤다.

관리공들과 수리공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알깨우기직장쪽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자동차가 호동앞에 멎어서자 모두가 새끼오리가 바글바글한 상자들을 내리여 호동안으로 들여갔다.

알에서 까나와 처음으로 푸른 하늘을 보며 호동에 실려온 병아리들은 어리둥절 놀랍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지 《좋구나! 삐용삐용…》, 《참, 좋지! 삐용삐용…》하면서 자기들의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바닥이 따끈따끈한 호동안에 수천마리의 병아리를 들여놓은 관리공들은 첫 먹이를 뿌려주었다. 노란 털이 포시시한 대가리며 몸뚱이에 무엇인가 떨어지자 병아리들은 조건반사를 일으키며 뾰조롬한 주둥이로 그것을 쪼아먹었다.

맛있는 먹이를 처음으로 먹어본 병아리들은 또다시 《맛있다! 뿅뿅…》, 《더 먹자! 뿅뿅…》하며 청고운 노래를 합창하였다.

명절분위기로 흥성거리는 호동안의 분위기는 송영숙의 생각을 가금과의 인연을 맺게 해준 머나먼 그 시절로 이끌어갔다.

어느 한 전연구분대 군의의 막내딸로 태여난 송영숙은 어릴 때부터 집짐승들을 무척 고와하였다.

아버지의 학구적이고도 진취적인 성격에 북관녀인인 어머니의 강한 승벽심과 열정적인 성격을 다같이 물려받은 어린 계집애는 남달리 고집이 센데다가 꿈도 많았다.

그에게는 처녀시절 유치원교양원이였던 어머니가 발풍금을 타며 들려주는 《도레미… 형제》들의 색갈고운 음악보다 돼지며 닭, 오리와 누렁이의 울음소리가 더 좋았다.

점점 커갈수록 그에게는 맛있는 닭알과 오리알을 낳는 가금들의 세계가 더더욱 신기하기만 하였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닭알이 아니라 사과나 배처럼 큰 알을 낳게 할수는 없을가? … 하루에 한알이 아니라 아침에도 저녁에도 계속 알을 낳는 그런 닭은 정말 없을가? …)

남다른 꿈과 포부를 안고 자라난 소녀는 학교를 졸업한 다음 부모가 바라는 음악대학이 아니라 수의축산대학으로 떠났다.

그는 희망대로 가금학부에 당당히 자기의 이름을 올렸다.

대학교정에서 처녀의 꿈은 더욱 커갔다.

《가금의 성장촉진제!》

생산성과 알낳이률을 높일수 있는 성장촉진제는 그가 대학시절부터 연구를 거듭하여온것이였다.

송영숙은 3대혁명소조생활을 시작한 그 다음해에 이 성장촉진제를 완성하고 현실에 도입하여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고 드디여 론문으로 발표하였다.

그런데 한 연구사청년으로부터 래일이 없는 구세기의 론문으로 락인되여 기각당하게 될줄이야. …

처음 송영숙은 절벽에 이마를 쪼은듯 눈앞이 아뜩해졌다. 그다음엔 분노 그리고 수치감…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연구사청년의 론거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그리고 오늘의 시대적인 높이에 올라서서 과학과 기술을 대하는 청년의 학구적인 자세와 함께 그의 명석한 두뇌와 랭철한 판단력앞에 무력해지는 자신을 느끼였다.

사람은 결코 부드럽고 따뜻한 말에서만 신뢰를 느끼는것이 아니라 가혹하고 무자비한 말에서도 신뢰를 느끼는 법이다.

송영숙의 마음속에서는 점차 그 청년에 대한 존경심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주 만나 학구적인 이야기를 나누군 하였다. 《전자시계》로 불리우는 그와 함께 래일의 축산업과 가금업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고 새 책을 주고받으며 독후감도 토로했다.

지내볼수록 정의성은 시대를 보는 눈이 높았고 리상도 꿈도 많은 청년이였다. 취미며 습관도 모두 훌륭하였고 매혹적이였다.

송영숙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전자시계》와 친숙해졌고 떨어질수 없는 사이가 되였음을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정의성이 뜻밖에도 그가 있는 알깨우기직장으로 찾아왔다.

《래일은 일요일인데 우리 같이 바다가에 놀러가지 않겠소?》

《바다가에요?》

송영숙의 큰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였다.

규칙적이고 정돈된 생활을 추구하던 정의성이 정해진 독서시간에 찾아온것도 놀라운 일이였지만 그가 내놓은 제안 또한 놀라운것이였다. 유희나 오락과는 등을 돌리고 독서와 실습, 실험밖에 모르던 이 《전자시계》가 갑자기 꺼꾸로 돌기 시작하였나?

깜짝 놀라서 쳐다보는 처녀앞에서 총각은 매혹적인 손동작으로 멋지게 앞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동무가 싫다면 할수 없지요. 그리구 바쁘다면야…》

그제야 송영숙의 눈동자가 반짝이였다. 그는 재빨리 머리를 끄떡이였다.

《바쁜건 사실이예요. 하지만 제때에 휴식하는 사람이 많은 일을 한댔어요. 좋아요! 가자요!》

처녀는 정열적으로 호응해나섰다. 자기들 두사람의 일요일계획이 수정을 노엽힐수 있다고 생각한것은 그후였다.

《흥! 날 쏙 빼놓구 너희 둘만 바다에 간다는거지? 알만해!》

수정은 팩해서 돌아앉았다.

송영숙은 속상해서 그만 울상이 되였다. 언제나 그림자처럼 떨어질줄 모르던 그를 무슨 말로 리해시켜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였다.

《다음엔 꼭같이 가자꾸나. 그 동무의 오토바이는 2인용이 아니니? 그러니 어떻게…》

하지만 수정은 어거지 센 아이처럼 홱홱 머리를 내저었다.

《됐어! 됐어! 이젠 알만해!》

그러나 다음날 새벽에는 일찍 일어나 이것저것 음식감을 마련해주었다. 하면서도 그냥 톨톨거리며 눈을 할기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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